냉장고 없는 삶에 대하여

2016년 7월 5일culturalaction

냉장고가 없는 곳이 로도스라고? 

몇 해 전, 어떤 이가 냉장고 없는 삶에 대해 쓴 글이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는 그 글에서 “자본주의적 삶의 폐단은 모두 냉장고에 응축돼” 있으며, “냉장고의 폐기, 혹은 냉장고 용량 축소! 여기가 바로 로도스”1) 라고 주장했다. 그 글은 수많은 욕을 먹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냉장고 없이 살라니, 그것이야말로 반자본적 실천이라니. 허황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 글을 읽고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아이고, 선생님. 그래서 선생님 댁에는 냉장고가 없으시고요?”라고.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 글을 쓴 사람의 집에는 여러 대의 냉장고가 있을 것이다. 대용량 양문형 냉장고, 김치 냉장고, 와인 냉장고, 화장품 냉장고 등등.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냉장고 한 두 대는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말이다.

 1) 강신주,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괴물, 냉장고」, 《경향신문》, 2013.07.21.

한 여름에 냉장고 없이 살기 

냉장고 없이 2주 동안 살아본 결과, 냉장고가 없는 곳은 로도스가 아니다. 그곳은 단지 치열한 삶의 전장일 뿐이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냉장고 하나 없는 것이 삶의 전장이라니, 무슨 멍멍이 소리냐고 따져 물으면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만, 냉장고 없이 2주를 넘게 살다본 입장에서, 매순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고 있기에 그런 말을 썼다. 하루나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썩어가는 반찬들이나, 곰팡이가 피어나는 야채나 과일들……. 날 것 그대로의 세계에서 마주치는 어떤 처절함들과 매순간 싸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치열한 삶의 전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더욱이 한 여름에 냉장고 없이 살다보니, 그 처절함이나 치열함은 더 크게 느껴진다.

냉장고 없는 삶을 나 역시 상상한 적이 없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이건 분명히 나의 예상에서 벗어난 일이다. 약 10개월 전부터 나는 공동거주를 하고 있다. 흔히 쉐어 하우스라고 부르는 공동거주. 넓은 집 한 채를 여러 명이서 함께 쓰는 생활이다. 방은 한 칸 씩 쓰고,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은 함께 쓴다. 거기에 딸린 가구며 비품 같은 것들도 함께 쓰는데, 얼마 전 한 분이 나가게 되면서 냉장고가 같이 사라졌다.

한여름에 냉장고 없이 산다니. 이 이야기를 주변사람들에게 말하면, 다들 아연한 반응을 보인다. 어떻게 냉장고 없이 사냐고, 그것도 한 여름에. 어떤 이들은 중고 냉장고를 하나 사라고 권하기도 한다. 당연히 합리적인 조언이지만, 다음 달이 되면 중고 냉장고가 하나 생길 예정이라서, 사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한 여름, 한 달 동안 냉장고 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냉장고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에는 나 역시 아연했다. 아니, 한 여름에 냉장고가 없다니. 집에서 음식을 먹지 말라는 말이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그렇게 아연한 일은 아니었다.

몇 가지 애로사항은 있다. 예컨대, 구매한 식료품은 되도록 바로바로 조리해 먹어야 한다. 조리한 음식은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다 먹어치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상하거나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아이스크림을 몇 개 (한 박스에 4개가 든 아이스크림으로, 하나에 110g씩 440g이었다.)를 사왔는데, 냉장고가 없으니 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아이스크림 몇 개를 꾸역꾸역 먹었다. 엊그제는 아침으로 토마토 2개와 참외 한 개를 먹었는데, 그날따라 식욕이 없어서 참외를 다 먹기 싫었다. 그렇지만 냉장고가 없어서 먹기 싫은 것을 참고 꾸역꾸역 다 먹어버렸다.

만약, 냉장고가 있었다면 당장 먹기 싫은 마음이 드는 음식을 꾸역꾸역 억지로 먹지 않았을 것이다. 냉장고에 넣어 버리면 당장에 먹는 일을 유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장고가 없으니 지금 먹는 일을 다음으로 미룰 수 없었다. 얼마 전에는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야채를 조금 남겨놨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자 곰팡이가 피어 버려 다 버리게 되었다. 반찬의 경우도 2-3일을 넘기기가 어렵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음식을 버려야할 때가 생기고, 그때마다 가슴이 약간 쓰렸다. 오늘도 누군가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을 텐데, 나는 이렇게 음식을 버리다니. 그런 생각들이 죄책감을 갖게 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한여름에 상온으로 보관하면 음식은 쉽게 상한다. 오늘은 상온에 며칠을 둔 된장이 상해버린 걸 확인했다. 장류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처럼 음식이 쉽게 상하고, 그래서 버리는 음식이 다소 간에 많아진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냉장고 없는 삶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냉장고가 있어도, 냉장고 안에 음식을 쌓아두기만 하다가 언젠가 상당량의 음식물을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면, 이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냉장고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어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냉장고 없는 삶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냉장고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냉장고 없이 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아아, 우리는 안 해본 것에 대해 쉽게 공포를 느끼구나.’ 라는 생각 말이다. 익숙한 삶의 자리에서, 익숙한 것들만 하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기 어려워한다. 냉장고 없는 삶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이 상상의 빈곤에서 비롯한 과도한 공포일 뿐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냉장고 없는 삶을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냉장고가 있으면 냉장고가 있는 대로, 냉장고가 없으면 냉장고가 없는 대로, 당신 앞에 주어진 음식들에 감사하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냉장고 있는 곳이 로도스가 아니듯이, 냉장고 없는 곳이 로도스도 아니다. 냉장고 없는 곳은 냉장고 없는 곳일 뿐이고, 냉장고 있는 곳은 냉장고 있는 곳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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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없으니 보관을 조금이라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사진은 그 중 한 예이다.”

생명이었던 음식을 생각함 

그런데도 나는 냉장고 없는 삶이 좋다. 무엇보다 냉장고 없는 삶은 음식에 대한 관계성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가 된다. 나는 그것이 좋다. 냉장고가 없으니 내게 주어진 음식 앞에 감사하게 된다. 음식이 상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그 음식들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냉장고 없는 삶은 음식은 썩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그것은 음식이 음식 이전에 생명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수많은 음식들을 먹거나 버리면서, 수많은 생명들에 빚지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하루하루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내 입에 들어가는 생명들에 부끄럽지 않은가, 라는 생각들. 불교에서는 식사를 하기 전에 공양게송이라는 것을 읊는다. 공양게송은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식사 전 기도이다. 불교의 공양게송은 다음과 같다. “이 음식은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치료하는 약으로 알아 보리를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이 음식이 음식 이전에 생명임을 기억하고, 다른 생명들에 빚지고 있음을 잊지 않으며, 그리하여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의 의미라고, 나는 이 게송을 해석한다.

정말이지, 냉장고 없는 삶은 여러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식재료와 음식들이 조금이라도 덜 상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냉장고가 있었을 때, 나는 별 생각 없이 그것들을 냉장고에 처박아버렸다. 하지만, 냉장고가 없으니 그럴 수 없다. 이 음식과 식재료가 조금이라도 덜 상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갖은 노력을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 젖은 수건을 덮어준다거나, 스티로폼 박스 등으로 열을 줄인다거나 하는 노력을 한다. 이렇게 보관하는 게 더 나은지, 저렇게 보관하는 게 더 나은지 이리저리 검색도 해보고, 다른 이들과 토론도 한다. 조금이라도 덜 상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썩어가는 음식들과, 다행히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들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한다. 내가 이 생명들을 먹어치워도 괜찮을 만큼 잘 살아가고 있는지.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어쩌면 냉장고 없는 곳은 로도스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말이다.

  • 박범기 _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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