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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9] 뜨개질 투쟁과 바느질 투쟁 – 농성장연대는 또 다른 연대를 만든다

2017년 12월 11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쌍용자동차 대한문 분향소 농성현장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구청과 경찰은 농성장 주변에 커다란 화분을 놓으며 농성을 방해했고 우리는 그 화분을 이용한 농성정원을 만들었다. 다시 경찰과 구청은 화분이 아닌 화단을 조성하기로 했다며 농성장을 침탈했다. 우리의 바느질 현수막도, 농성정원도 모두 부서지고 버려졌다. 농성정원은 시민들에게 호응이 좋았고 지나가는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경찰과 구청은 시민의 관심을 끄는 농성정원이 눈엣가시처럼 보기 싫었는지 그마저도 없애버린 것이다.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고 연대한 사람을 강제로 연행한 뒤 구청직원들이 몸으로 둘러싼 분향소 자리엔 화단을 만들겠다며 커다란 트럭이 흙을 싣고 와 부어버렸다. 흙더미는 마치 노동자의 무덤 같았다. 파견미술팀은 그런 흙더미를 노동자의 무덤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정리해고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들의 영정을 만들어 흙더미에 올려놓고 분향물품을 설치했다. 이 과정도 결코 녹록지 않았다. 경찰들은 영정하나 올리면 바로 빼앗아 갔고 나무에 끈 하나 거는데도 작전이 필요했다. 이윤엽과 필자는 그림자 영정을 만들었다. 24개의 영정은 대한문이 죽음의 공간, 폭력의 공간임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파견미술팀은 현장에서 긴급하게 작업할 경우가 많다. 직감력이 뛰어난 작가들이 모이다 보니 급하게 뭔가를 뚝딱거리며 현 상황을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생각하고, 급박한 상황에서 그런 직감력과 순발력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렇게 분향소 침탈사건 이후 경찰은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교대 조를 짜고는 관(官)이 만든 화단을 지키기 시작했다. 분향소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다고는 하지만 시민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분향소를 해치우듯 박살 내버린 곳에 화단을 지키는 경찰은 더더욱 오가는 시민의 통행을 방해했다.

싸우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뜨개로 싸우는 우리는 여전히 뜨개로 농성장을 지키기로 했다. 거대한 꽃 무덤이 되어버린 화단을 지키는 경찰 옆에 조그만 돗자리를 펴고 바늘과 실을 잡았다. 매일 조금씩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조금씩 그 수가 늘어갔고 화단을 다시 우리의 공간으로 바꾸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4월 28일 일요일 오후 1시부터 대한문에서 뜨개농성 함께해요. 혹시 못 오시는 분들은 가로세로 30센티 직물을 보내주세요. 천, 뜨개, 실 뭐든 이어 붙일 수 있는 것이면 됩니다. 가능하면 예쁜 손뜨개 보내주시면 좋구요, 대한문으로 오셔서 함께 하면 더 좋아요. 대한문에 100여 명이 모여 뜨개농성 상상만 해도 즐거워져요^^”

웹자보를 만들어 돌렸다. 사무실로 한 장 한 장 뜨개 편물이 도착했고, 4월 28일 대한문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누군가는 수십 장의 천을 가져왔고, 누군가는 집에 묵혀두었던 뜨개실을 가져왔다. 어둑해진 밤쯤 완성된 바느질 현수막은 경찰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매일저녁 진행되던 미사 시간을 이용해 걸었다. 나무 덮개로 만든 뜨개도 크게 충돌은 없었지만 한 땀 한 땀 긴장감에 전투태세를 갖추며 바느질을 했다.

이렇게 모이기 시작한 ‘바느질 뜨개 행동단’은 매주 요일을 정하고 대한문 길바닥에 앉아 바느질을 했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제주도 강정마을 공사현장으로 뜨개질 편물을 보내달라고. 서울에서, 쌍용차에서 강정을 이야기하고, 강정에서 다시 대한문 쌍용자동차와 연대하는, 투쟁하는 모두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의 바느질 투쟁을 2013년 내내 진행했다.

대한문에서 조금만 가면 서대문역 인근에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조의 농성 천막이 있다. 대한문 쌍용자동차 농성현장에 연대하면서 인연이 생긴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조의 이야기는 길고도 힘겹다. 파업을 시작하고 농성을 한 지 300일이 다 지나도록 특별한 연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파업 300일이 다 되고 있었고 농성프로그램으로 대한문 농성정원 같은 다양한 만들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 찾아간 농성장은 여느 농성장과 다르지 않았다. 빨강 파랑 노랑의 색색의 천이 성황당스럽게 농성천막 앞 도로변에 널려있었고 농성천막에는 커다란 구호와 요구사항이 즐비하게 써 있었다. 농성천막 안에는 침낭과 선전물품들로 뒤엉켜 있었고 최소한의 식량인 라면과 커피믹스가 놓여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은 그저 퉁명스럽게 농성을 하는 곳이구나 라는 태도로 오갔다. 이들의 요구가 무엇이고 왜 이렇게 농성을 하는지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늘 농성장에 대한 고민 중 하나는 이곳에 사람이 있고 이들은 왜 이러고 있는지 궁금해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심을 끌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고 그 장치의 하나로 농성장을 새롭게 단장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주변에 지인들을 끌어모았다. 대한문에서 함께 한 목공작가. 판화작가. 뜨개질 고수님들, 그림 그리는 사람들. 모두에게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의 파업이야기를 전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사 회장에게 메시지를 전해야 했고 사회적 투쟁으로 확산되기를 원했다. 이윤엽에게 내용전달 후 이미지를 받았다. 이름이 주는 이미지가 강해서 인지 상징 이미지 작업은 금방 나왔다. 이 이미지는 웹자보와 문화제 걸개 이미지로 만들어졌고 다시 바느질 팀에게 전달되어 노조조합원들과 함께 바느질현수막 제작을 했다. 판화교실을 열고 자신들의 요구를 판화로 찍어내기도 했고, 농성장 공간 정리를 위해 필요한 목공작업도 함께했다. 뭔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연대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힘을 받는다는 조합원들의 이야기에 연대한 우리 모두 힘이 났다.

농성장 300일 문화제를 마치고 조금씩 연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을 즈음 회사 회장이 유상감자를 실행했다. 사무금융노조 이근재의 요청으로 ‘감자 옷’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감자를 갈아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유상감자의 실상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미싱 작업이 미흡했던 필자는 바느질의 대가 차강 선생에게 요청해서 감자 옷을 만들었다. 조합원들은 이 옷을 돌려가며 입고는 좋아라했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의 투쟁은 우여곡절 끝에 일시 정지 상태로 몇 년이 지났고 2017년 최근 다시 유상감자를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간간히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 이 글을 통해 함께했던 시간을 이야기하자니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일시적인 연대가 반짝 힘을 받기는 하겠지만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연대에 대한 고민을 갖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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