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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1] 밀양 넓은 벌판위에 바람을 가르는 붓 소리 – 밀양 희망버스와 <밀양의 얼굴들>

2018년 1월 12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2013년 가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대한문 투쟁은 출구 없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 옆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바느질을 하고 이어붙이는 뜨개농성<강정의 코>팀은 12월 제주도 강정마을을 가기 위한 뜨개농성을 매주 하고 있었다. 경찰의 눈초리는 따가웠지만 오가는 시민들의 관심으로 우린 강정마을 해군기지 이야기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일상의 연대는 작게 느껴지고 미미하게 보이겠지만 이러한 작음이 모여 때로는 큰 힘이 된다는 믿음으로 한 주도 쉬지 않았다.

밀양 송전탑 반대를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던 할매할배의 소식이 간간히 들려오고 있던 늦은 가을 어느 날. 쇠사슬로 온몸을 칭칭 감고 마을을 지키고 있는 할매들과 연대를 위해 희망버스를 준비했다. 1박2일 밀양희망버스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보라마을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보라마을입구 오른쪽 들판은 송전탑이 건설될 예정지고 그곳은 2012년 1월 16일 마을 주민이던 이치수 어르신이 한국전력과 용역의 폭력과 싸우다 분신한 장소였기에 추모의 의미를 담아보기 위해서였다. 밀양 희망버스 기획을 함께한 필자에게 밀양대책위 이계삼은 보라마을에 상징적인 설치물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밀양희망버스의 홍보를 준비하면서 가장 우선되는 작업은 이미지다. 이윤엽 판화가에 요청을 하고 받은 이미지로 웹자보, 현수막, 손수건 등 모든 이미지를 생산했다. 이윤엽의 작업은 늘 놀랍다. 송전탑을 움켜쥔 할머니의 모습이 힘차 보이기도 하고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희망버스의 취지와 딱 맞는 이미지였다. 이 이미지를 시작으로 파견미술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시간을 맞추어 작업을 하기로 하고 수시로 전화를 하며 아이디어를 모았다.

이윤엽은 안성 시내에서 조금 들어간 시골마을에 산다. 그가 늘 보던 농부들의 풍경 속에 볏단이 보였나 보다. 늦은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부들은 알곡을 털어낸 볏짚을 돌돌 말아 잘 삭히기 위해 약품을 처리하고 하얀 비닐로 덮어 축산농가로 보낸다. 숙성시간과 보관을 위해 농지 여기저기에 하얀 휴지처럼 커다란 볏짚 단들이 놓여 지는데 이것을 눈여겨보았던 이윤엽은 아이디어를 냈다. 밀양의 어르신들을 한 명 한 명 그림으로 그리고 그린 얼굴을 탑으로 쌓아 송전탑이 놓이기로 예정된,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신 바로 그 장소에 세우기로 했다.

11월 30일, 희망버스가 출발하기 이틀 전 파견미술팀은 밀양으로 갔다. 보라마을 마을회관에 짐을 풀고 마을주민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작업할 장소로 이동했다. 늦은 가을 허허벌판의 칼바람은 작업하기 매우 힘든 조건이었다. 각자 출력해온 밀양어르신의 얼굴을 보며 붓을 잡았고 각자 자신의 개성대로 그림을 그렸다. 누군가는 물감으로, 누군가는 스프레이로 그리기 시작한 얼굴들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볏짚 단 한 덩어리의 크기는 대략 높이 1.5미터 폭 1.5미터 정도의 큰 캔버스 크기로 한 장 한 장 40여장의 이미지를 그려야했다. 다행히 신주욱의 속도가 엄청 빨랐다. 동시에 20여 장의 스케치 작업을 한 시간 안에 해내는 신들린 손이다. 자기 작업이 없던 작가들은 모두 신주욱 작가의 작업에 힘을 보탰다.

해가 지고 어느 정도 작업을 마무리한 파견미술팀은 마을 회관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었다. 온종일 추위에 얼어버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배부르고 따뜻하니 눈이 절로 감기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뿐 아니라 이웃 마을 할매들도 파견미술팀에게 힘을 주신다며 모여 주셨고 밀양의 투쟁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투리가 얼마나 심한지 처음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계속 듣고 있으니 조금씩 익숙해져서인지 말귀가 트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다시 벌판으로 나간 파견미술팀은 어제와 같은 작업을 했고 볏 짚단을 탑으로 올리기 위해 고민했다. 크레인을 부르고 위치를 정하고 순서를 정해야 했다. 서울에서 5시간 달려온 송이 작가는 야무지게 그림 두 개를 완성하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새벽에 전미영과 나규환 작가가 도착했다. 천군만마라고 해야 하나? 일정이 안 맞아 늦게 오게 됐지만 그런 작가들이 어찌나 고마운지. 드디어 희망버스가 밀양에 오는 날 아침. 크레인 기사와 이리저리 위치를 잡고 탑을 올리기 시작했다. 벌판이 워낙 넓어서인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아 보이는 탑이 완성됐고 작아진 탑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일정상 마무리해야 했다.

희망버스 문화제 준비를 위해 밀양시내로 이동한 필자는 행진단과 함께 밀양 시내를 돌았고 마지막 밀양역 문화제를 준비했다. 밀양 할매들의 합창, “내 나이가 어때서~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인데~.” 감동과 서글픔과 희망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다음날 희망버스 마지막 장소인 보라마을에 도착한 희망버스 승객들은 이치우 어르신의 뜻을 기리는 추모의 마음을 모았다. 파견미술팀이 설치한 설치물 아래 모여 사진도 찍고 그 공간의 의미도 이야기하며 마무리를 했다.

10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파견미술팀이 만든 <밀양의 얼굴들>탑은 허물어져 논밭에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어느새 송전탑이 세워졌고 <밀양의 얼굴들> 일부는 밀양대책위에 의해 용회 마을 입구에 다시 설치됐다. <계속>

 

비닐로 싼 짚단 더미에 그려진 ‘밀양의 얼굴들’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분신한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고 이치우 씨의 논에 흩뜨려져 있다. 뒤로는 한국전력이 송전탑 공사를 진행하려 세운 철제 담장이 보인다. 지난해 12월1일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온 2000여명은 평화를 염원하며 이 상징물을 쌓았다.(<한겨레> 2013년 12월2일치 1면) 그로부터 100여일 뒤인 지난 12일 누군가 상징탑을 허물어뜨렸다. 안개가 고요히 덮인 ‘밀양의 얼굴들’ 위로 조용히 봄비가 내린다. 눈물 같다.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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