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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33] 붓 들고 투쟁 – 밀양 송전탑반대 사랑방 만들기 프로젝트(1)

    2018년 1월 29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2013년 12월 2일 밀양 상동면 고정마을에선 곡소리가 요란했다. 유한숙 할아버지가 음독 자결하셨다. 할아버지의 소원은 송전탑 전류가 흐르지 않는 내 고향에서 그저 살아온 그대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을 여기저기 대형 트럭과 포클레인이 요란하게 돌아다니고 하늘에선 헬리콥터가 특유의 소음을 내고 구름을 휘저으며 날아다녀 마치 전쟁터가 연상됐다.

    10개월이 지난 2014년 10월 22일 유한숙 할아버지는 차가운 냉동고에서 따스한 장지로 옮겨졌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송전탑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갔고 세상은 경악스러운 일들로 더 시끄럽기만 했다. 할매꽃의 죽음이, 노오란 개나리들의 죽음이, 풍성했던 젊은 나무들이 모두 모두 억울하게 죽어가는 동안 국가는 치졸한 변명과 무관심, 그리고 폭력으로 답하고 있었다.

    밀양 싸움이 한창일 즈음 청도에서도 송정탑건설반대 투쟁을 하고 있었다. 청도에서는 송전탑 건설반대를 위한 사랑방 만들기를 시작했다. 컨테이너를 세우고 그림을 그리고 할매들이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한다. 옛 마을로 치면 마을회관 같은 것인데 어르신들의 사랑방으로 쓰여야 마땅한 공간이 이제는 전쟁을 치르기 위한 진지와 같은 공간으로 쓰인다. 언제 편안하게 담소를 나눌 시간이 올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밀양에서도 사랑방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2014년 6월 행정대집행이라는 명분으로 할매들의 움막을 강제로 철거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어르신들이 다치고 기절하고 심지어 질질 끌려 나오기까지 했다. 사실 이런 모양새는 밀양 송전탑건설을 하는 마을에서는 늘상 있는 일이기도 했지만 움막이 하루 반나절 만에 모두 사라지기는 처음이었다. 국가의 폭력은 나날이 심해졌다. 밀양전국대책위에서는 폭력에 저항하는 방식에 변화를 원했고 사랑방 프로젝트는 그 변화의 한 방식이었다.

    밀양대책위는 농성천막에서 끌려나온 이후 ‘밀양은 끝까지 투쟁!’ 시즌2를 준비했다. 그 첫 시도가 사랑방 만들기 프로젝트다. 7개 마을 송전탑건설기지로 향하는 길목에 컨테이너를 세우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이 공간은 사랑방이자 연대의 공간이다.

    2014년 7월 3일간 파견미술 행동을 조직했다. 강제 철거된 움막 농성장을 대신하기 위해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등 7개 마을에 사랑방 농성장을 새롭게 설치하기로 했다. 이 농성장은 지난세월 지켜왔던 움막형식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사랑방이 되고 주민들이 키운 먹거리를 판매할 수 있는 장터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밀양대책위 이계삼은 작가들과 함께 시즌2 사랑방 공간을 새롭게 꾸며달라고 요청했다. 공간의 형식은 대부분 컨테이너였고 빈 컨테이너 외벽에 색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문화연대는 그림 작업을 할 작업인력을 확대하기로 하고 무작위로 SNS에 웹자보를 만들어 뿌렸다.

    “밀양 할매들과 함께 그림 그려요!!”

    “붓 들고 투쟁!!”

    늘 현장에서 함께 그림을 그렸던 파견미술가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활동가들에게도 연락했다. 기본적인 인원 5명이 확인됐지만, 7개 마을에 9개의 컨테이너를 작업하기엔 부족한 인원이었다. 2박 3일로 일정을 길게 잡았지만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인원에 마음 졸이던 차에 SNS를 통해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혼자가도 되는지, 가족과 함께 아이들이 가도 되는지, 학생들이 엠티를 그리로 가도 되는지, 직장인인데 하루만 참석해도 되는지를 묻는 참가들의 정성에 어찌나 흥분이 되는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연인원으로 대략 70여 명의 참가자가 모였고 작업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오히려 많은 참석자들이 마을에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참가신청자들 중 시각미술을 전공한 학생들의 연락은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홍대 미술대학 학생들 20여 명이 단체로 합숙하며 작업할 수 있겠냐는 문의와 대구대 회화과 친구들 6명의 참여로 작업준비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밀양사랑방 작업에 대한 상황을 공유하고 마을별 학생들을 중심으로 팀장을 정했다. 7개의 마을을 인원수로 나누고 각 마을에 작업 팀장을 정했다. 팀장은 팀원과 디자인 아이디어를 모아 아이디어 스케치를 했고 의견을 나누었다. 밀양대책위와는 마을별 연락책을 정하고 작업팀장과 연결시켰다. 이후 개별참가들은 7개조 팀별 인원수에 맞게 나누어 작업장소를 안내하는 방식으로 70여 명의 참가자 배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밀양의 싸움을 멀찍이서 바라봤지만 어떻게 힘을 보태야 할지 몰라 어영부영 고민만 했다. 그러던 중 6월 11일의 행정대집행이 나를 포함해 밀양을 지켜보던 친구들에게 불을 지폈다. 분노했고, 눈물을 흘렸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밀양의 소식을 카톡방으로만 돌려보던 어느 날, ‘붓 들고 투쟁하러 가요’라는 홍보물을 보고 미대생인 우리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고 느꼈다.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공유하고 다른 카톡방에도 알리자 많은 친구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2박 3일간 회화과, 조소과, 예술학과 등 나를 포함한 미대생 20명은 그렇게 밀양으로 떠나게 되었다. 우리 외에도 전국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 홍익대 참가자 박은미

    밀양행정대집행의 소식은 이 땅의 젊은 작가들에게도 고민을 주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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