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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4]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 밀양 송전탑반대 사랑방 만들기 프로젝트(2)

2018년 2월 5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7개 마을 9개 동의 컨테이너 작업은 많은 고민이 필요했고 많은 아이디어를 모아야 했다. 컨테이너 벽면은 총 4면으로 한 개 컨테이너에 최대 이미지 4장이 필요했다. 9개의 컨테이너는 대략 30여 장의 이미지 작업을 해야 했다. 팀별로 마을을 정하고 마을별 이미지는 각자 고민하여 공유하고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미지 고민부터 밀양 작업의 시작인 셈이다. 함께한 미대 학생의 후기를 보면 고민의 흔적이 잘 드러난다.

“여러 의견이 나왔다. 당연히 송전탑을 넣은 구상이 많았다. ‘송전탑을 뽑는다. 송전탑을 오려낸다….’ 그런데, 한 친구가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면서 송전탑을 그리는 건 문제 아니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곳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우리가 이해하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결정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결정을 유보한 채 몇가지 안을 준비한 상태로 밀양으로 향했다.” / 홍익대 참가자 박조은미 (오마이뉴스)

사전준비가 완료된 7월 4일 밀양으로 그리고 다시 동화전마을, 용회마을, 평밭마을, 여수마을, 위양마을, 고정마을, 고답마을로 나뉘어 이동했다. 7개 마을 곳곳에는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조심스러웠던 마음도 잠시 컨테이너 그림을 그린다는 소식을 듣고 사랑방에 모인 마을 어르신들은 정감으로 맞이해주셨고 맛있는 식사를 2박 3일간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셨다. 중간 중간 간식도 보내주시고 따뜻한 잠자리도 내주셨다. 작업하는 현장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할매들의 진심어린 잔소리도 들렸다.

동화전마을 사랑방 작업은 판화가 이윤엽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대추나무와 밤나무가 많다는 주민의 이야기에 일단 나무를 그리기로 했다. 그림 그리는 우리 옆으로 마을 주민은 포클레인을 끌고 왔다. 간이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서란다. 이윤엽은 화장실 문에 똥을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복똥’ 이라고 썼다. 모두 한바탕 웃으며 작업은 재미있게 진행됐다. 맛있는 밥을 제공해주신 주민은 개집을 들고 와 예쁘게 그림을 그려달라고도 했다.

고답마을 사랑방 작업은 대구대 회화과 학생들이 중심이 됐다. 이들은 할매들이 힘을 내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아 ‘할매 마징가Z’가 송전탑을 날려버리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는 작가들 옆으로 꼬마친구들도 붓을 잡았다. 기찻길 옆 작은 학교 학생들이다. 여수마을 사랑방 작업은 홍대 회화과 학생들이 중심이다. 청와대, 한국전력, 국회를 그리고 그 위에 송전탑을 그렸다. 함양에서 온 작은 아이들도 함께한다. 궁금한 마음에 주변을 오가던 주민분들은 다양한 의견을 주셨다. 송전탑이 지긋지긋하니 그리지 말라는 분들과 송전탑을 깨부수는 그림을 그려 달라는 분들. 오가며 던지듯 말하는 마을 주민의 이야기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짠한 여운을 던지기도 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이 그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소망같은 말들이기 때문이고, 그동안의 힘겨움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위양마을 사랑방은 컨테이너 위로 비닐하우스가 쳐있다. 비닐하우스 작업은 이윤엽과 여러 참가자들이 함께 진행했고 비닐하우스 안쪽 컨테이너는 홍대 학생들이 맡았다. 위양마을은 이팝나무가 유명해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올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컨테이너 위에 하얀 이팝나무를 그리기로 했다. 실내 작업을 하다 보니 페인트 냄새와 더운 열기로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비닐하우스 위로 쳐진 까만 차양 막은 밀양으로 농활을 온 녹색당 학생들과 함께 걷어냈다. 넓은 논바닥 위로 걷어낸 차양 막을 펼치고 그 위에 이윤엽은 하얀 물감을 묻힌 붓을 들고 ‘765kV OUT’ ‘우리 다시 시작’ 두 문구를 크게 썼다. 주변에 연대 온 사람들 모두는 글자를 뺀 나머지 여백에 각자가 하고 싶은 말과 그리고 싶은 이미지를 자유롭게 그렸다. 컨테이너 작업에 대한 고민으로 내려갔던 밀양. 비닐하우스 안쪽에 설치된 컨테이너 사랑방에 사실 고민이 많았다. 밖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비닐하우스 작업까지 해보자. 그래서 시작한 작업이었고 연대온 사람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공동의 작업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용회마을은 컨테이너를 놓지 않았고 그동안 사용하던 공간을 리모델링하기로 해서 딱히 작업할 곳은 없었다. 사랑방 앞 긴 휴게 의자에 꽃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평밭마을에는 할매·할배들의 얼굴을 그렸다. 사랑방에 오는 이들을 반기는 주민의 얼굴이다. 할매들은 자신과 이웃의 얼굴이 그려진 컨테이너를 보며 닮았다 안 닮았다 진지하게 의견이 오갔다. 당사자인 할매는 내 평생에 이런 멋진 그림은 처음이라며 당신의 그림 앞에서 멋지게 포즈를 잡아주시기도 했다. 작업하는 동안 전투경찰은 무리 지어 지나다녔다.

고정마을 사랑방은 마지막 작업마을이었다. 컨테이너가 담벼락 위쪽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작업이 매우 힘든 곳이다. 사다리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모내기하듯 송전탑을 휘어잡은 할매의 손에는 낫이 들려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꽃을 가꾸는 할배의 모습이 그려졌다.

“밀양 할매들과 지내는 동안, 나는 뭐라 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꼈다. 첫날, 작업하러 갈 준비를 하는 우리들에게 지나가던 할매가 건네준 갓 딴 듯한 오이와 방울토마토, 때마다 챙겨주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는 밥…. 그토록 고된 싸움을 이어오고 있으면서도 연신 밝게 웃으며 우리를 품어주는 할매들의 모습이 너무나 따뜻해서 오히려 낯설 정도였다. 밀양의 품은 체계적으로 파편화된 삶들을 다시 추슬러 모았다. 그저 함께 지키고 싶기 때문에 생겨나는 우리의 연대와 조건 없는 사랑은 얼마나 따스한가. 헤어질 땐 할매를 꼭 안아드렸다. 할매가 웃었다.” / 홍익대 참가자 박조은미 (오마이뉴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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