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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5] 석 자인 내 코를 빼 그물코를 잇다 – <강정의 코> 이어붙이는 뜨개모임

2018년 2월 12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연재35는 민중언론 참세상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했습니다.

2013년 3월 대한문에 자리 잡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24명의 죽음을 위로하고 추모하던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화재가 발생했고 화재로 소실된 천막이 있던 자리, 그 자리에 다시 천막이 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구청직원과 경찰은 정체성 없는 화분으로 공간을 메워버렸다. 정체성 없는 화분을 보다가 문득 이 공간을 우리의 추모 꽃동산, 우리의 정원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몇몇 활동가가 모여 농성정원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한 기획을 했고 그 결과 테이블도 만들고, 화단도 만들고, 텃밭도 만들고, 뜨개물로 분향소를 꾸미기도 했다. 분향소가 많은 이의 공간으로 소통하길 원하는 마음이었다. 조금씩 바뀌는 대한문 분향소는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매주 일요일마다 대한문에 모이는 이들이 생겼다. 뜨개질과 수다 그리고 다과의 시간은 쌍용차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연대의 마음을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으로, 소통의 장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구청과 경찰은 이 공간의 모든 것을 단 몇 시간 만에 쓰레기차에 싣고 사라졌으며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쓸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대형 화단을 설치하고는 24시간 경찰이 지키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다시 한 주, 두 주 후 다시 뜨개질로 모인 이들이 대한문에 돗자리를 깔았다. 억울함이 연대의 마음을 만들었고 한 땀 한 땀 코바늘에 코를 꿰어 나가게 한 것이다. 뜨개질 모임은 뜨개물로 제작한 현수막도 걸고 흉물스러운 화단주변의 나무들을 감싸기도 했다. 그러던 중 몇몇의 활동가들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에 다녀왔고 이들의 제안으로 <강정의 코> 이어붙이는 뜨개모임이 만들어졌다.

<강정의 코>는

눈 뜨고 코 베어갈 세상, 내 코는 석 자. 당신도 입니까? 요즘 코는 석 자가 평균 사이즈인가봐요. 우리의 코가 석 자씩 길어졌다니, 그 코를 밑천 삼아, 씨실 날실 삼아 강정을 덮을 이불 한필 만들면 어떨까요. 그럼 베어가기 힘들지 않을까요. 바다바람에 햇볕에 침묵에 낡고 바랜 현수막을 한코한코 손으로 지어봐요. 강정의 돌들, 나무들, 강정천의 다리를 알록달록 감싸요. 석 자 빠진 코를 주워다 이어 붙이고 덧붙여요 해군전쟁기지공사장 앞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싸우느라 너덜너덜해진 이들을 덮어줘요.

우리는 자기 코가 석 자라서 연대의 바늘을 들어요. 바늘을 들고, 손을 움직여 알록달록하게 깁고 잇고 뜨고 짓고 삼아서 강정에 사랑의 정표를 만들어요. 강정을 생각하면서 만들고, 강정을 이야기하면서 모여서 만들어요. 뜨개 바느질 행동단 <강정의 코>가 되어서 평화의 냄새를 맡아봐요.

뜨개 편물의 기본단위를 “코”라고 부르는 것, 그물망 같은 연대에 하나하나의 그물”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강정의 코>라고 우리스스로를 이름 짓고 다른 사람에게도 강정의 코가 되자고 독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어떤 연대와 공동의 문제해결이 필요한 사회 문제, 타인의 문제들에 우리 스스로가 “내 코가 석 자”라는 핑계로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코가 석 자쯤 빠진 것은 당연한 사회이니 그 코들이 모여서 연대하자는 중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강정의 코>가 되기로 했습니다.

 

대한문에서 쌍용차해고노동자를 연대하는 마음을 담아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모임을 갖고 강정에 보낼 뜨개물을 만들어 갔다. 오가는 사람들의 관심은 늘 질문을 동반한다. “뭐 하는 거예요?” “왜 여기에서 뜨개질을 해요?” 라는 질문에 우린 답하기로 했다. 작은 게시판을 만들었고 모임이 있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대한문 한 귀퉁이에서 뜨개농성을 이어 나갔다. 길을 가다 멈춰 서서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함께 배워도 되느냐며 아예 주저앉아 함께하는 이들도 있고, 집에서 떠왔다며 작은 뜨개물을 부끄럽게 전달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매주 진행하는 뜨개농성은 개인들의 SNS를 통해 조금씩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간 대한문의 뜨개농성은 정리되고 있었다.

서울 마포, 과천, 덕소, 완주, 서산, 제주 등 전국에 자발적인 소모임이 만들어지고 이들은 서로서로 자신들의 모습과 만들어지는 뜨개물을 공유하며 격려와 지지를 이어나갔다. 어떤 이들은 모양 뜨기 방법을 물어오기도 하고 그 물음에 답을 하는 이미지를 공유하기도 했다. 또 어떤 모임은 뜨개물 기계를 제작하여 공유하고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한문을 시작으로 뜨개모임은 점점 늘었고 개인 참가자들의 수도 늘기 시작했다.

대한문에 모인 뜨개농성 활동가들은 제주도에 설치할 날짜를 12월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로 정하고, 강정으로 뜨개물을 보내달라는 웹자보도 만들어서 각자의 SNS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날짜는 다가오자 과연 얼마나 뜨개물이 모일지 걱정이 많았다. 뜨개모임은 뜨개농성으로 불리기도 하고, ‘강정의 코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강정의 코들은 제주 강정마을에 편지를 보냈다. 뜬금없이 찾아가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고 사전에 강정마을과 충분한 소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강정의 코가 되어 제주도에 가는지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마음을 담아 보냈다. 그리고 다시 1달여 시간이 지나고 제주도에 뜨개물이 도착하기 시작했다고 연락이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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