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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3] 투쟁시작과 문화예술인 행동 –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와의 연대기(4)

2018년 4월 16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2012년 7월 미술가들이 콜트 부평공장을 점거하며 공장 전시를 진행. 문화예술계와 언론의 커다란 주목을 받는 일이 생겼다.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텍展>. 성효숙, 전진경, 정윤희, 상덕, 황승미 등의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오랫동안 이 공장 안에서 생활하고, 노동자들과 일상을 함께 하며, 때로는 부당한 간섭이나 용역에 의한 공장 침탈에 저항하면서, 조금씩 작업을 이어온 결과물이다. 부평 콜트 공장. 경비원이 돌아간 밤이면 예술가들은 작업을 시작한다.

맨 처음 공장에 작업실을 연 전진경 작가는 조용히 자신의 작업을 했고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무섭지 않느냐고, 힘들지 않느냐고. 전진경 작가는 처음 입주할 당시 고민이 많았다. 공장을 팔아넘긴 박영호가 아니라 공장을 사들인 새 주인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공장의 새 주인도 박영호의 인맥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전작가의 작업실이 입소문이 나서인지 작가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공장 안 작은 방들은 개성 넘치는 20여 명의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업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공장에 작업실을 만들고 입주 작가로 생활하던 초기에는 건물주가 직접 와서 수시로 나가라고 윽박지르고, 용역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전진경 작가는 말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예술가입니다. 나는요, ‘공생’을 위해 이곳에 왔어요. 누굴 못살게 굴고 괴롭히려는 건 아닙니다.…몇 년째 텅 비어있는 공장은 먼지와 곰팡이를 닦아줄 사람이 필요하고, 자본가는 그들의 미친 탐욕에 제동을 걸어줄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공장에 작업실을 낸 입주 작가들은 각자의 작업을 모아 전시를 기획하기로 했다. 작가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전시 기획을 준비하던 중 콜트.콜텍 투쟁 2000일 소식을 듣게 되었고, 작가들은 일정을 맞추어 전시기획을 조정했다.

<콜트.콜텍기타노동자 투쟁 2000일 공동행동>은 100여 개가 넘는 단체들이 참여했고 ‘삼계탕 파티’, ‘열어라 공장! 야단법석 파티’, ‘예술과 노동의 연대를 위한 토크콘서트’ ‘공장 락페스티발’등 다양한 연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공장 앞마당은 시끄러웠고 왁자지껄했으며 공장 안 전시는 무겁게 현실을 그리고 있었다. 작가들의 공장 전시는 언제 끝이 날지 정해지지 않은 전시였다. 공장의 운명과 함께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2000일이 지나가고 있었고 공장건물을 산 새 주인은 농성자들과 예술가들을 불법점거 등의 이유로 고소했다. 불안한 나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운명공동체. 서로가 서로를 연대하고 의지하는 상황이다. 시각미술 작가들이 공장에 자리를 잡은 그 날부터 노동자와 예술가는 구분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투쟁하는 동지의 모습이다. 노동자는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문화행동을 배우고 함께 했으며 그들의 작업을 존중했고, 예술가는 노동자의 삶과 함께하며 그들의 작업 안에 노동자의 삶을 담아냈다. 시각미술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지켜야만 하는 정당성이 생겼고 자신의 작업을 지키는 일이 되었다. 누군가의 투쟁이 나의 투쟁으로 만들어지는 중요한 지점이다.

2013년 2월 1일 금요일 아침 8시, 부평 콜트 공장에서 농성 중이던 콜트콜텍기타노동자4명은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과 용역들에게 사지가 들려 공장 밖으로 던져졌다. 누군가와의 인터뷰에서 이인근 지부장은 그때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자고 있었어. 웅성거리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나와 봤더니 용역 150명 정도가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집행하러 왔다’ 그 한마디 딱 하더니 ‘끌어내’ 그러고는 우리 4명(이인근·임재춘·장석천·김경봉) 다 똑같이 대여섯 명한테 번쩍 들려서 나왔어. 별로 얘기할 만한 상황이 없어. 그냥 들려 나와 가지고. 그게 다야, 그냥. 10분도 안 걸렸어. 그게 다야….”

사전에 계고장 같은 것도 없었다. 지난 몇 년간 쌓아온 작업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노동자의 노동력과 예술가의 노동력이 만들어낸 노동의 집약적 구조였던 콜트 꿈의 공장.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의 해고 투쟁은 노동운동 안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문화예술인들과 끈끈한 연대를 자랑한다. 문화예술인들은 폐허가 된 빈 공장에 천막을 치고 다양한 설치물을 생산해 냈었다. 매주 화요일 진행하던 야단법석 프로그램을 통해 연대한 사람들과 워크숍을 하며 하나하나 만들고 창작해 온 것들이 공장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점거형식의 전시를 통해 개별 작가들의 작품들이 공장안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저들의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쓰레기였다. 노동의 가치, 창작의 가치를 그냥 불도저로 밀어 버리듯 내던지고 부숴버렸다. 작가들은 기를 쓰고 용역과 경찰을 피해 공장 안으로 들어갔고 망가진 작품들을 보며 분노했다. 밤 새 공장과 작업을 지키기 위해 10여 명의 활동가와 작가들 그리고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은 공장 문을 잠그고 스스로 고립되었다. 경찰들은 도리께와 망치를 들고 와 문을 부수고 이들을 모두 연행해갔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과 작가들 그리고 연대 활동가들은 포크레인으로 공장이 파괴되는 것들을 눈뜨고 지켜봐야 했고 공장 주변에 높은 휀스가 쳐지는 것 또한 바라만 봐야 했다.

우리는 지치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는 공장을 빼앗긴 후에도 계속되었다. 작가들은 공격을 준비했다. 휀스에 씨앗폭탄도 던지고 물감풍선도 던졌다. 일종의 분풀이 이자 사측에 던지는 경고의 행동이었다. 씨앗폭탄이 발아해 휀스를 넝쿨로 덮어버리기를 소원했다. 물감풍선이 남긴 분노의 문장을 읽어내길 바랬다. 헛된 꿈으로 끝나버린 하루투쟁. 사측은 다음날 모든 것을 뽑아버리고 분노의 흔적으로 남겼던 물감풍선도 모두 지워버렸다. 그래도 지치거나 좌절하지 않았고 다시 시작했다. 무너진 공장 길 건너편에 천막을 치고 또 새로운 노숙농성이 시작됐다. 무한 반복되는 새로운 시작이다. 천막에서 다시 새롭게 야단법석 프로그램을 돌렸고, 매일 저녁 문화제를 하고, 텃밭도 만들고 꽃도 심으며 다시 새로운 연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뚝이 같다. 문화예술인들은 처음으로 돌아가 작업을 시작했다. 누군가의 투쟁이 아닌 자신의 투쟁으로 연대를 이어가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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