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대중정치

2016년 6월 28일culturalaction

해외의 이슈가 한국에서도 화제다. 미국의 트럼프 돌풍과 유럽의 브렉시트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국 대선이 한국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항상 있던 일이지만 트럼프가 일으키고 있는 바람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의 태도나 성격부터 그가 내뱉는 언어까지, 도저히 대통령의 자질을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대선후보로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그는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었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민주주의적 정치가 안정적으로 이룩되고 있다고 배웠던 그 미국에서 말이다. 혹자는 반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이 증대되었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반지성주의가 널리 퍼졌다고도 한다. 어느 곳이나 정이 있으면 반이 있기 마련이지만 미국에서 반민주주의나 반지성주의가 논란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이 논란에서 주목할 것은 민주적 시민의 태도이다. 결국은 미국 시민이 반민주적이고 반지성적 성향이 널리 퍼졌음을 한탄한다. 브렉시트도 비슷하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잔류와 탈퇴 사이에 표차는 크지 않았다. 찬반이 팽배했던 만큼 그 진통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그 결과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다. EU를 탈퇴하자는 측의 이유는 이민자의 증가가 부담스럽다거나 영국의 EU부담금에 비해 혜택이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탈퇴를 지지한 이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담아 무지한 이들을 나무라고 있다. 미디어는 이들이 EU탈퇴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탈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파운드는 폭락할 것이고, 영국의 청년들은 암울한 미래를 예약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EU가 무엇인지, EU의 나라들 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탈퇴를 지지했다고 말하며 그들의 무지를 지적한다. 시기심과 질투, 그리고 무지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원인이고 현실이라는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내에서 EU와 관련해 구글에서 많이 검색한 질문>

그렇다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이나 EU탈퇴를 지지했던 이들이 어떤 이들인가? 그리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정서는 무엇인가?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지겹게 비판했던,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끝판을 보여줄 것이라던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세상에 대한 공포이다. 세계화되는 금융에 대한 공포, 국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에 대한 공포에 대한 반응이 애석하게도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즉 오늘의 정의가 만들어낸 공포가 우리가 진보적 가치, 혹은 정치적 올바름이라 불렀던 무언가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한편으로는 규율에 대한 저항이 야만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낱 어릿광대라고 치부하던 트럼프의 성공이나 무지함의 결과라고 통용되는 영국의 EU탈퇴는 우리가 지금 달려가고 있던 골인지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대중을 상대로 한, 흔히 풀뿌리라 불리는 전략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어차피 제대로 된 풀뿌리 전략이 부재하였던 시점에서 감수할 것이 적은 지금이 수정의 적기일 수도 있다. 도시에 문화공간을 늘리고 착한이라는 레토릭을 붙인다고 해서 마을이 정치적 공간으로 탈바꿈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의 부재 했던 것이 아니다. 지금의 사회적 관계가 유발한 결과들에 대한 그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과연 사적 소유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그리고 나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이 위기를 돌파할 다양한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마을운동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마을사람을 구성해가는 운동이라 믿는다.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와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이다. 그러나 마을에 공방을 만들고, 기업을 만들고, 또 모호한 관계에 집착하는 것이 나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특히나 문화를 통해 민주적 경험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화 이전에, 가능한 정치가 과연 무엇인지를 상상하기가 너무 어렵지 않은가 싶다.

  • 맹기돈 _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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