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슬픈 위로

2016년 6월 8일culturalaction

메탄올 실명 파견노동자가 구의역 참사 하청노동자에게 보내는 포스트잇

“좋은 곳으로 가세요. 좋은 기억만 가지고. 하늘에서는 좋은 일만 있을 꺼에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이런 일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메탄올 실명 피해자 드림.”

6월 6일 저녁, 2호선 구의역 7~10번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포스트잇 사이에서 발견한 추모글이다. 위로받는 사람은 구의역 9-4번 승강장에서 안전문을 고치다 달려오는 전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열아홉 청년 하청노동자이고, 위로하는 사람은 올해 초 삼성전자 갤럭시 부품을 만들다 메탄올에 중독돼 실명한 파견노동자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눈을 잃은 비정규직이, 죽은 비정규직을 위로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위로다.

5월28일 스러져간 김군을 추모하는 발걸음이 연휴 마지막 날에도 구의역 승강장에 가득했다. 국화꽃을 놓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묵념을 한 젊은이들이 촛불을 들고 행진을 시작한다. 손을 잡고 함께 촛불을 든 연인과 두 딸아이와 함께 걷는 엄마, 김군 또래의 젊은 청년들, 또래의 아이들을 두었을 법한 중년들이 함께 걷는다. 이내 도착한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김군의 유족은 억울함을 풀어주셔서 고맙다며 눈물을 쏟아낸다.

구의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은 낯설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무심한 사회였다. 남의 불행에 고개를 외면하고 세월호 참사를 지겹다고 말하는 무리들이 날뛰는 사회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온라인에서만 넘쳐난다.

구의역 참사는 처음이 아니다. 2013년 1월 성수역, 2015년 8월 강남역에서 똑같은 사고가 벌어졌다. 올해 초 삼성전자 부품회사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 4명이 메탄올에 중독돼 실명하고 치명적인 뇌손상을 입었다. 배를 만드는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가 그라인더에 허벅지를 갈아서 죽는 등 올해에만 현대중공업에서 7명, 삼성중공업에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6월 1일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이 폭발 붕괴해 죽은 네 명의 노동자도 포스코건설 하청노동자였다. 일터의 하청화, 죽음의 외주화로 연일 하청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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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청년, 가방에 든 컵라면, 생일 전날 당한 사고…. 김군의 사연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나아가 시민들은 김군에게서 우리 사회를 봤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며 참사 현장을 찾았고, “그의 죽음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고 외쳤다.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이며 우리 동생, 자녀들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시민들이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주의조차 군사정권 시절로 되돌아가버린 박근혜 정권 3년 동안 침묵하고 있던 사람들이 총선 이후 연이어 터진 강남역 살인사건과 구의역 참사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당당히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간 대기업에서 시작한 ‘일터의 하청화’와 ‘죽음의 외주화’가 한국사회를 하청공화국으로 만들었다. 급기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공공부문까지 정규직 일자리를 하청으로 팔아넘겼다. 안전문 수리, 전동차 정비, 구내운전, 역무원까지 하청업체에 팔아넘겼다. 지난 2011년 다섯 명의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코레일 자회사 코레일테크는 비정규직 비율이 95%를 넘는다. 하청공화국을 바꾸지 않는다면 구의역 참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날 전동차 경정비를 맡고 있는 서울메트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가지회견을 열었고, 구의역 행진에 참여했다. 비정규직 당사자들과 시민들의 연대는 하청공화국을 안전한 나라로 바꾸는 출발점이다.

 

  • 박점규 _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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