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비자는 가능한가?

2016년 9월 1일culturalaction

서른 살이 되던 해, 결혼을 앞둔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날짜와 나라가 정해지고 나는 자신만만하게 모든 스케줄을 짜겠노라 공언했다. 한참 화제가 되던 공정 여행, 착한 여행을 가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뭐냐”고 불안해하는 친구들에게 “일단 가보면 알게 된다”고, 다른 패키지나 에어텔 상품에 비해 1.5배도 넘게 비싼 가격도 다 이유가 있으니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했다. 4박 6일, 말레이시아로 떠난 우리의 공정여행은 결론적으로 실패였다. 이상과 현실은 전혀 달랐다. 국립공원 안에 있다는 숙소는 ‘자연친화형’이라는 설명답게 에어컨이 없었고, 3명이 자는 방에 선풍기가 1대였으며, 전원 콘센트도 하나뿐이어서 카메라 충전을 거의 하지 못했다. 심지어 너무 좁아서 가방을 놔둘 데가 없었다. 현지인을 고용한다는 원칙에 따라 그곳에서 오래 산 현지인 아저씨를 가이드 삼아 산에 오른다는 계획까지는 좋았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더운 열대우림을 걷는 것도 쉽지 않은데, 중간중간 가는 내내 영어로 대화하고, 생소한 식물들의 이름을 통역해야 했다. 중간쯤 오자 친구들은 아예 듣기를 포기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걸어왔고, 나는 아저씨의 성실한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느라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힘들기만 했다. 공정 여행을 직접 체험해보겠다는 내 야심찬 시도는 앞으로는 ‘공정’이나 ‘착한’이 들어간 여행상품은 고르지 않겠다는 친구들의 원성과 함께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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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성격의 어떠한 소비도 주변에 권하지 않는다. 강권하다시피 체험한 경우 반감을 사거나 오히려 안 좋게 끝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생협 이용이 그렇다.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취준생 후배에게 생협 물품은 ‘비싸고 사기 어려운 제품’일 뿐이다. 실제 소비자의 한 사람인 나에게도 생협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일단 9시 전에 장을 보러 갈 수 있어야 하고, 식재료를 일정하게 구매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뭔가를 정기적으로 해 먹는 생활 패턴이 갖춰져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만든 요리를 먹어줄 2인 이상의 구성원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도 주문일로부터 1주일 이상의 시일이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계란이 떨어져서 주문했다가, 다음 주에나 그 계란이 도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물론 배송일이 언제인지 정확히 체크하지 않고, 늦어도 모레쯤 오겠다고 지레짐작한 내 탓도 있다). 결국 슈퍼에서 계란을 사왔는데 그 계란을 다 먹기도 전에 주문한 계란이 또 와버렸다. 갑자기 많아진 계란을 먹어치우느라 꽤 노력을 했는데도 절반 이상이 유통기한을 넘겼다. 그 경험을 하고 나니 인터넷 주문도 쉽게 하지 않게 된다. 평일 오전에 열리는 조합원 모임이나, 유아를 동반한 가족에게 적합한 생산지 탐방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다. ‘가능하면 생협 제품을 이용’하려고 애쓰는 나 같은 소비자에게도 생협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하물며 빠르고 값싸게 당장 한 끼를 때우는 것이 급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멀 것인가. 윤리적 소비가 개인에게 당위적인 선택이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이 되지 않는다면, 확산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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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는 소설을 쓰기 위한 조사차 하루종일 도살장을 찾아가 견학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 처참한 도살 광경을 보고 난 뒤라야 고기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고기를 먹어도 그만큼의 부담을 의식 속에 걸머진 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리얼리스트 미셸 투르니에의 윤리다. 나는 어떤가? 참혹한 공장식 축산의 현장을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몇 편이나 보고도, 항생제를 잔뜩 맞고 태어난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도축되었을 닭고기로 만든 치킨을 시켜먹는다. 현실에서 ‘치킨을 먹고 싶은 나’의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하면서…

그렇다면 개인은 어떤 선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걸까?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패션을 입지 않고, 유기농을 선택하고,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삼성, 이랜드, 남영, 옥시, 폭스바겐코리아, 금복주, 생탁, 콜트콜텍, 피존… 반대하고 불매할 기업은 많지만, 내 선택이 어떻게 다름을 만들어낼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개인의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대체 내 한 표가 얼만큼의 효과가 있는지 의문스러운 한국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는 대신 업사이클링 디자이너 레트 아우스의 말을 상기하고 싶다. “제가 청바지 한 벌을 아끼는 동안 10,000벌이 새로 재봉되고 10,000벌이 새로 팔리고 10,000벌이 또 버려질 겁니다. 대량 생산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어요.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 알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파악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소비자로 살면서 내 선택이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고민이 무력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업사이클링이 “디자인을 정해놓고 옷을 만드는 대신 옷감을 보고 그걸로 뭘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으로 개념을 바꾼 것처럼, 버려진 원단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은 것처럼, 윤리적 소비에도 다른 접근이 필요할 때다.

* 정지은 _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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