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한광호를 지우려는 사람들

2016년 5월 31일culturalaction

이 글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오진호님의 기고글입니다.

2016년 3월 17일,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다니던 노동자 한 분이 스스로 목을 매었다. 그의 이름은 한광호. 1995년 현대차 하청부품업체인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입사해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 소속 조합원으로 가입했고 1999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대의원 생활을 하던 성실한 노조 간부였다. 그는 현대차와 유성기업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매 자결했다.

열사가 돌아가신지 75일이 되었건만(5월 30일 기준) 아직 장례를 치루지 못한채 열사는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있다. 더 이상 이 사태를 두고 볼 수 없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서울로 상경해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을 지키고 있다. 오늘도 현대차 본사 앞은 전쟁이다. 한광호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범이자 책임자인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책임을 묻는 유성기업 지회(민주노조) 노동자들과 정몽구 회장을 지키려는 ‘정몽구 지킴이’ 사이의 전쟁. 5월 17일, 노상에 분향소를 차리고 농성에 들어간 후 일주일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47명이 연행되었다.

사본 -5월18일현대차본사를막고있던정몽구지킴이

75일이 지났건만 치루지 못한 열사의 장례

유성기업은 현대차 엔진의 피스톤 링을 만드는 회사다. 유성기업 지회는 “회사는 정규직의 업무를 파견, 용역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단체협약으로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지켜왔고, 2009년 야간노동을 없애기 위한 주간연속2교대제를 2011년부터 도입할 것을 합의했다. 현대차 완성차 회사에서도 시행되지 못했던 주간연속2교대제는 이후 현대차를 비롯한 곳곳에 큰 파장을 일으킬만한 것이었다. 그러자 회사는 2011년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고, 유성기업 지회 노동자들은 쟁의행위에 들어갔다. 쟁의행위에 들어간 5월 18일, 유성기업 사측은 일방적인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깡패를 회사에 불러들였다. 5년간 이어진 ‘노조파괴’의 시작이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MB까지 나서서 ‘귀족노동자들의 파업’이라 비난했던 유성기업 지회 노동자들의 파업은 6일 만에 공권력에 의해 진압되었다. 경찰은 500여명의 조합원 전체를 연행했고, 현장으로 복귀한 노동자들에게는 ‘어용노조’와 징계‧차별‧고소고발‧임금삭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회사 관리자들의 주업무는 ‘유성지회 조합원 감시’로 바뀌었다. 공장 곳곳에 콘센트와 비상등을 가장한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었고, 일부 관리자들이 “나는 CCTV가 아니다.”라며 회사를 그만둘 만큼 감시는 일상화 되었다. 어용노조 위원장은 전기충격기까지 들고 다니며 유성지회 조합원들을 협박했고, 관리자들은 폭력, 성추행을 일삼았다. 회사는 갖은 핑계를 들어 유성지회 소속 노동자들을 징계했고, 임금을 삭감했다.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노동자들의 삶은 망가졌다.

2011년부터 5년, ‘노조파괴’ 전쟁

“올 것이 왔구나.” 한광호 열사의 죽음 이후 조합원들이 내뱉은 한마디다. 한광호 열사는 2011년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고소고발을 당했다. 전부 회사관리자들과 어용노조 간부들이 건 고소고발이었다. 두 차례의 징계를 받았으며, 관리자들에 의해 집단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회사는 징계위원회 직전 단계인 사실관계조사 출석요구를 받기도 했다. 이런 탄압 속에서 한광호 열사는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우울증이 의심되어 상담치료까지 진행한 바 있다. 유성기업 지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집단 정신건강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합원들의 정신건강은 우울고위험군, 사회심리스트레스, 외상 후 스트레스 등이 일반 시민보다 6배나 현저히 높았다. 전쟁 피해자마냥 몸과 마음이 멍들어 있었던 것이다.

현대차와 유성기업의 목적은 간단했다. 유성기업에 어용노조를 설립해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탈퇴시키고 어용노조에 가입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숨통을 조일지를 고민하고 실행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회사에 출근해 선전전을 하면 20m 떨어진 곳에서 회사가 선전전을 하고 있다. 식당에선 어용노조가 또 선전전을 한다. 회사는 출근시간이 몇 시 몇 분 몇 초인지, 화장실 몇 번 갔는지, 핸드폰을 몇 번 보는지를 감시한다. 유성기업 지회 조합원들이 화장실에 가면 바로 관리자들이 찾아온다. 경고장이 경고장을 낳고, 해고로 이어진다. 그렇게 해고된 이들이 5년간 30명이 넘는다. 그러나 정작 회사는 노동조합 파괴와 관련한 위법행위에 대해 단 한건도 처벌받지 않았다.

사본 -비오는날양재동농성장

5년이 지난 지났지만 멈추지 않는 노조파괴

유성기업에서 벌어진 노동조합 말살시도는 유성기업의 원청인 현대차와 유성기업, 그리고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 회사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의 합작품이다. 현대차-유성기업-창조컨설팅은 1주일에 1회 이상의 정례회의를 갖고,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어용노조 조합원 수가 늘어날 때마다 유성기업은 현대차에 보고했고, 현대차는 더 높은 목표를 제시하며 유성기업을 압박했다. 121차례에 걸쳐 현대차 본사가 있는 서울과 유성기업 아산공장 근처에서 회합을 가졌으며, 수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며 노조파괴 상황을 공유했다.

유성기업이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비용을 대기 위해 현대차는 이해할 수 없는 부품단가 인상을 한 바도 했다. 노조파괴가 절정으로 치닫던 2011년 유성기업의 부품단가는 23.3% 인상했다. 다른 부품사들의 부품단가가 7.9% 인하할 때다. 그 해 유성기업의 매출액은 362억이 증가했고, 순이익은 89%가 증가했다. 부당한 부품단가 인상을 통해 현대차가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다. 현대차는 노조파괴 기금을 자동차 부품값 올리기로,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지원한 것이다.

지역경찰, 검찰,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 등과 같은 국가기관이 그들의 심각한 범죄 행위를 조장하고, 보조를 맞췄다. 2011년 5월 21일 경찰이 작성한 파업대응 문건에서 경찰은 ○노조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 조속한 발부로 지속압박, ○사측 대상, 손해배상 청구 유도 지속적 노측 압박, ○공장 단전·단수, 가스차단 등을 대책으로 제시한다. 경찰이 직장폐쇄 기간 중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묵인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지시한 것이다. 이외에도 노동부와 검찰은 유성기업의 불법적인 직장폐쇄와 노조파괴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유성기업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기소하지도 않았다.

현대차-유성기업-창조컨설팅, 합작하여 노동자를 괴롭히다

이제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5월 17일, 현대차 정몽구 회장을 만나기 위한 양재동 농성에 들어갔다. 이 싸움은 대한민국 최대재벌 현대차라는 골리앗의 책임을 묻는 다윗들의 싸움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우리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노동인권을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다. 열사의 장례를 치루고, 그를 추모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현대차와 유성기업이 저지른 노조파괴는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살인교사 행위임과 동시에 노동자들이 지켜온 가치를 부수고, 한국사회의 노동인권을 벼랑 끝으로 내몰려고 했던 사회적 범죄로서 처벌받아야 한다.

  • 오진호 _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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