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20대 국회 문화 관련 상임위에 바란다

2016년 5월 24일culturalaction

논평

20대 국회 문화 관련 상임위에 바란다

5월 19일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6월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제 20대 국회에서는 상임위원회 개수를 늘리지 않되 약간의 분리 통합 조정을 꾀할 것이라 한다. 구체적으로는 교육문화위원회에서 교육위원회를 독립 분리하고, 문화체육관광과 여성가족을 한데 합친 새로운 위원회를 만드는데 여야가 잠정적 합의를 보았다고 밝혔다. <문화연대>는 올 봄 총선을 앞두고 <20대 국회에 제안하는 20대 문화정책 제안서>를 통해 교육과 문화관련 상임위의 분리를 주장한 바 있다. 상임위의 명칭과는 달리 교육과 문화 간 균형 있는 논의나, 둘 간의 연계를 감안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교육이 주가 되고 문화가 종이 되는 난맥상을 오랫동안 지켜보아 온 까닭에 그 같은 제안을 한 바 있다. 잠정적 합의안과 우리의 제안을 비교해보면 절반만큼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나머지 절반 즉 여성가족위와 통합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하면서는 양가적인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각종 상임위에서 제외되어 소외당해왔던 청소년, 청년 문제까지 다룰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여성과 가족을 문화라는 울타리 내에서 잘 다룰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반면 너무 많은 사안을 한데 구겨 넣어 초점 잡힌 논의를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있다. 지금까지의 보도 내용과 잠정적 합의가 20대 국회의 상임위 구성 과정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문화연대>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국회 연설, 토론, 입법 전 과정에 걸쳐 의원 누구든 마이크 앞에 설 때면 문화를 입에 떠올리기를 즐겨한다. 상임위의 성격과 관계없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말의 성찬에 비해 문화가 국회에서 대접받는 모습은 처참할 정도다.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나 식견 없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논의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한류 등과 같은 인기 항목에 업혀 돈벌이의 전위대 같은 대접하기 일쑤다. 예술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문화 논의가 마무리되는 듯한 장면도 빈번히 연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음에도 그것을 단순히 신문과 방송의 사안으로 축소시켜 버리는 무지는 차라리 귀엽게 봐 줄 정도다. 특정 영화제가 정치적 개입을 꾀하는 지자체장에 의해 신음을 할 때도 지방의 일이거나 행정의 사안으로 넘기며 방기하기도 했다. 인디 예술가의 생활고에 의한 죽음에 대한 무관심도 여전하다. 이 같은 문화영역에 대한 홀대와 오해는 비전문성에서 비롯된다. 전문적 식견 없이 이미 적혀진 원고를 읽고, 관련 기구에 호통을 치는 식이야말로 상임위의 이름과 거꾸로 가는 반문화적인 정치 행태라 하겠다. 원구성 시작부터 전문성을 구할 수 없는 일이고 보면 꾸준한 학습과 연구는 불가피하다. 의원실 내부의 세미나는 물론이고, 의원실 간의 포럼, 토론을 통해 전문성을 갖추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더구나 더 늘어난 사안을 묶어내고 관련 부서에 맞는 입법을 행하자면 예전과는 대비되는 학습 그리고 전문성 제고는 필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깨고 손 벌릴 일을 꾀하면 신설 통합위원회는 일감의 대양을 만나게 된다. 앞서 요청한 학습과 전문성 제고만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만큼의 부담일 수도 있다. 이럴 때 협치(governance)는 필수적이다. 오랫동안 전문성을 닦아오고 여러 형태로 정책 제안을 해오며, 직접 시민과 만나며 실천을 해온 시민사회와 마주 앉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다. 이는 그동안 노력해온 시민사회에 대한 예우이며 학습의 다른 형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한다. 두 번의 권위주의적 정권을 만나면서 한국의 시민사회는 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도 위축되었다. 대신 돈 몇 푼에 현혹되어 움직이는 급조된 정치행동단체들만 양산되어 그들이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양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모두의 미래에 먹칠을 할 불행의 씨앗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문화관련 상임위에서는 다른 상임위에 비해 더 빠르게 나서서 시민사회의 전문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그들과 협조하며 협치의 모범을 만들어내길 요청한다. 기왕에 존재하던 시민사회의 전통과 전문성을 무시하며 벌인 행정 탓에 ‘부산국제영화제’가 망가지는 모습을 반면교사 삼으며 시민사회에 희망을 불어넣고, 협치를 약속하며, 그들의 전통과 전문성을 제대로 챙길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융복합의 시대가 왔다고 모두가 떠들지만 막상 자신의 영역이 침해당한다고 느낄 때 누구든 발끈하는 한심한 제 영역 지키기의 시대를 아직 살아가고 있다. 국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청소년 문제를 교육상임위가 전담해야 하고, 지역문제를 행안위가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여성가족은 사회악으로부터 그를 지켜야 한다는 보호주의 담론을 만들어왔고, 문화예술영역은 표현의 자유를 진작시키기 위해 자유주의 담론을 펴왔다. 그리고 그 둘은 좀체 화해하지 않았다. 청소년 보호 논리와 게임산업의 논리가 부딪쳐왔지만 그 둘이 마주 앉아 정책, 입법을 논의한 적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어찌 별개의 사안일까. 더구나 이번에는 여성가족과 청소년, 문화영역이 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당연히 영역주의를 벗어나야 하고, 서로 달라 보이는 사안을 한데 묶어 파악해야 한다. 대학에서도 해내기 힘들다는 융복합적 사유를 하고, 또 실행으로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지적한 전문성에 보태어 영역주의를 탈피하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 어떤 것도 단독으로 고고히 존재할 수 없다는 복잡계적 사유를 펴야 한다. 교육 분야가 떨어져 나갔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청소년이 있고, 그들이 문화예술 교육을 받아야 하고, 방과 후에는 수많은 문화적 활동을 해야 함을 인정한다면 그 분야는 떨어져 나갔다기보다는 같이 논의될 수밖에 없는 숙명적 가족적 유사성의 안건일 수밖에 없다. 안건에 대한 태도를 열고, 언제든 연결되어 있다며 사유를 더 개방하며 열린 입법 활동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주문을 신설 상임위에 던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동안 문화관련 사안들이 다른 사안에 눌려 왔는바 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성, 협치성, 개방성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번 상임위에 배정되는 의원들은 그런 점에서 더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깊이 있게, 그렇지만 호연한 열림으로 입법 활동에 임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어떤 때보다 국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 여소야대라는 정치 공학적 셈법에 기대어 하는 말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오랫동안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적 정치 세력장 안에서 제대로 운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다시 신발 끈을 조여매고 큰 발걸음을 디딜 때다. 그 큰 시작에서 20대 국회 그 중에서도 문화관련 상임위에서가 큰 발걸음의 주인공이 되어주길 간곡히 요청한다.

2016년 5월 24일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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