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사유하기]북한에 나부낀 태극기의 의미(27호)

2013년 10월 2일culturalaction
북한에 나부낀 태극기의 의미
정재영(문화연대 활동가)
지난 9월 14일, 작은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사건’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다시 경색 국면에 접어든 북한과의 관계의 측면에서 본다면 일상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 ‘사건’으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북한에 펄럭인 것이다. 물론 이는 정치적 통로가 아닌, 스포츠를 통하였기에 가능했다.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 입장식에서 한국 선수단은 태극기를 높이 들며 북한의 땅에 안착했다.
이 사건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먼저 사실 관계 확인이다. 분단 후 ‘최초’로 라는 수식어는 이 사건에 맞지 않는다. 1945년 광복 후에도 북한은 태극기를 사용했으며, 1948년 소련의 입김이 반영된 인공기가 공식적으로 사용되면서부터 북한에서의 태극기는 전면 금지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몰랐던 것인지, 독자들을 낚기 위해서 ‘최초’를 집어넣은 것인지는 몰라도, 어찌됐건 평양 한복판에서 태극기가 펄럭인 일은 역사상 ‘최초’가 아니다.
두 번째는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다. 이번 사건은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요즘과 같이 ‘종북담론’이 활개를 치는 때에 태극기가 북한에 나부낀다는 것은 스포츠가 정치와는 무관한 위치(이해관계 너머에) 있기 때문에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9월 중순의 시기가 경색 국면이 아닌 대화의 장을 모색하는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이 스포츠를 계기로 태극기를 허용하며 남북관계를 저울질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듯, 무관한 듯 보이는 스포츠의 특성 때문에 정치에 보다 더 적합하게 되는, 스포츠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사실 스포츠가 아니면 북한에 태극기가 게양되는 일은 거의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치적 수에 따라 판단되는, 어찌보면 스포츠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북한에 대해 가지는 이중적 감정을 볼 수 있다. 주지하듯이 한국에서 북한은 ‘주적’이다. 그러나 그런 주적의 땅에 태극기가 펼쳐지면 감동한다. ‘종북’이라는 단어가 신종 메카시즘으로 활용되어 공안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북한은 ‘한민족’이라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북한을 끊임없이 증오하는 한국사회에서 ‘그래도 통일’이라는 이중적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 건 분단국가의 애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이번 사건이 한국사회에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다면, 일회성으로 감동하지 않고 남북스포츠교류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종북’과 ‘빨갱이’ 담론과 같은 유치한 근대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는 것이 선결 과제다. 북한의 체제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적어도 태극기가 북한 땅에 게양되는 것에 감동받는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스포츠를 통한 외교 해법을 찾아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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