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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체육문화위원회 5월 포럼 : 스포츠와 영화-각별한 인연의 시작
체육문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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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문화위원회의 5월 월례포럼은 “스포츠와 영화”라는 제목으로 2011년 5월 27일 금요일, 민중의 집에서 개최되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서현석 교수님의 발제로 진행된 이번 월례포럼은 발제를 맡아주신 서교수님의 꼼꼼한 준비와 차분한 강의 그리고 포럼 참여자들의 열정적이면서도 진지한 모습이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서교수님의 발제내용은 ‘스포츠와 영화’라는 제목으로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개인적 소회를 조금 풀어보면, 처음 ‘스포츠와 영화’라는 포럼명을 들었을 때 필자는 스포츠 장르 영화들의 변천사를 일별하는 시간이 되거나, 최근 부쩍 제작 빈도와 열기가 높아지고 있는 한국 스포츠 영화들에서 특정한 쟁점을 취해 논의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여기에, 스포츠 사회학의 관점에서 스포츠의 이데올로기성과 장르 영화들의 이데올로기성이 교섭하고 접합되는 양상에 대한 통찰이 덧붙여 지면서 말이다. (물론, 이는 주관적인 편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서교수님의 발제는 이런 필자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근본적인 존재론의 차원에서 영화와 스포츠가 맺는 관계는 무엇인가?’ 아니 어쩌면 그보다는 ‘인간 신체, 그 신체의 움직임이 영화와 맺는 관계란 무엇인가?’ 서교수님의 발제가 제기했던 화두는 이와 같은 것이었고, 따라서 준비해오신 시청각 자료 역시 초창기 사진과 영화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제멋대로 한번 이름을 붙여보면 ‘영화-신체가 맺어온 관계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 정도가 될 것 같다.

발제를 진행하면서 서교수님이 특히 강조하신 부분은 ‘초기 영화의 활력’이었다. 즉, 환영주의적인 영화적 재현의 힘 이전의 영화적 쾌락. 다시말해 인물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직선적이고 연대기적인 내러티브의 범주에 종속시키기 이전에 영화가 갖고 있었던 미지의 가능성 말이다. 서교수님은 관객의 몰입과 동일화로 대표되는 서술적 전략 이전에 영화가 갖고 있었던 잠재성을 ‘신체의 즉물성’을 독특하게 포착하고 가시화하는 데에서 찾고 있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교수님이 직접 사례로 드셨던 영화의 형성과 발전과정상의 4가지 계기에 주목해보자. 첫 번째 계기는, 사진에서 활동사진인 영화로의 발전에서 과도기적 형태로 존재했던 ‘연속사진’이다. 주지하다시피 19C 말 사진촬영에서의 긴 노출시간이 줄어들면서 기술적으로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동물이나 인간 등의 움직임을 정확히 기록하고 관찰하고자 하는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예컨대, 1878년 에드워드 머이브릿지는 12대의 카메라를 이용하여 경마장에서 말이 달리는 모습을 연속사진으로 촬영했다. 일화에 따르면 머이브릿지는 말이 달리는 중에 네발이 모두 공중에 떠있는 순간이 있는지의 여부를 두고 내기를 했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도 짐작 할 수 있듯, 당시 연속 사진술을 촉발시킨 핵심적 동기는 ‘신체의 움직임에 대한 정확한 관찰’이었다. 즉 육안으로는 정확한 관측이 불가능한 신체의 움직임을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정밀하게 포착해내는 것이었다. 두 번째 계기는, 내러티브의 요소가 담기기 이전의 초창기 영화이다. 많은 연구들이 입증하듯 초창기 영화들이 가졌던 매혹의 성격은 ‘촉각적’이었다. 그러니까 이 때의 영화적 쾌락은 거대한 스크린에서 넘실대는 파도의 질감이나 갑작스레 플랫폼에 당도하는 열차가 자아냈던 경이로움이지, 결코 이야기의 요소가 아니었다. 이 경이로움은 움직이는 대형이미지가 심적 실재로서의 ‘이미지’와 물리적 실재로서의 ‘운동’ 사이의 구별을 파괴하며 사람들의 심리적, 지각적 평형상태를 깨는 데에서 근거했다. 이런 집단적 경험을 벤야민은 ‘충격의 경험’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세 번째 계기는 영화 테크놀로지를 통해 장대하고 유려한 신체의 스펙터클을 조직했던 레니 리펜슈탈의 <올림피아>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전 종목 경기를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 필름은 지금의 눈으로 봐도 놀라울 정도로 신체의 역동적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양식화하고 있다. 물론, 정치를 예술적 레토릭의 형태로 실현하려고 했던 나치의 지향에 리펜슈탈은 가장 탁월하게 부합하는 예였다. 신체에 대한 미적 매혹으로 공동체의 감각을 소환하고 있는 이 작품은 실제로 나치의 정치선전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 현재까지도 나치부역의 혐의를 두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리펜슈탈의 작품들은 영화-신체의 관계문제를 생각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계기이다. 네 번째 계기는 동시대 영화인 더글라스 고든과 필립 파레노의 <지단: 21세기의 초상>(2006)이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축구경기가 진행되는 90분 동안 볼의 방향과는 관계없이 17대의 카메라로 포착한 지단의 모습으로 일관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관객들은 경기 내내 클로즈업으로 잡힌 지단의 모습에서 각종 미디어에 의해 드라마타이즈된 축구경기와는 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그의 거친 호흡, 비오 듯 쏟아지는 땀, 욕설, 발을 구르는 습관, (뛰지 않고) 걸어다니는 모습 등에서 ‘작위적으로 연기되지 않은 삶의 단상’ 같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순수한 시청각적 이미지에 의해 제공됐던 초기영화의 ‘충격의 경험’을 특유의 방식으로 되살리고 있다.

영화-신체 그리고 우리의 지각경험이 맺는 관계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촉구 했던 서교수님의 발제는 “영화와 스포츠가 맺는 관계란 무엇인가?” 혹은 “그 각각이 우리의 경험적 삶과 맺는 관계란 무엇인가?”를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서 질문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런 근본적 질문들은 그 관계들에 대한 도식화된 비판에 머물지 않고 대안적 실천에 바로 연결시킬 수 있는 문제의식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사고를 자극하고 단초를 제공한 포럼 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월례포럼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약간의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서교수님의 논의는 선형적 내러티브로 대변되는 현재 영화의 지배적 관습에 순수한 시청각적 이미지에 의해 조직되는 ‘원시적 매혹’을 이분화해 단순한 대립구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 <지단: 21세기의 초상>이 부가하는 영화적 쾌락이 경기승패의 내러티브에서 분리된 이미지의 진정성이라고 단언 할 수 있는가? (리뷰를 작성하는 중에 떠오른 것들이라 현장에서 여쭤보지는 못했다.) 이런 의문들은 발제에서 언급하셨던 각 계기들 사이의 연속성과 단절성에 대한 설명을 통해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음 기회에 이 부분에 대한 새로운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한번 좋은 강의를 들려주신 서현석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후기를 마친다.

- 최일규(문화연대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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