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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개각진


[정희준] 골프의 대중사회학
국위선양과 출세의 몽환적 만남
문화연대  
조회수: 28486 / 추천: 153
“한국에 또 오고 싶어요.” 5월 초 한국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1000만 달러의 소녀’ 미셸 위가 전용기 편으로 하와이로 떠나며 한 말이다. 방한 기간 순대, 떡볶이도 먹고 처음으로 남자대회의 컷을 통과하고 40억 가까운 돈도 챙겼으니 당연히 또 오고 싶을 것이다. 어느 부동산개발업체와의 광고모델 계약금은 역대 최고액이란다. 그의 체류기간에 한국사회는 예의 그 ‘쏠림현상’이 나타났다. 언론은 그녀의 스케줄을 우리에게 중계방송하듯 알려줬고 그가 결국 처음으로 남자대회 컷통과를 달성하자 ‘우리 일’처럼 감격하며 ‘내 딸’이 해낸 것처럼 자랑스러워했다. 5일의 경기에 그를 보기 위해 구름과도 같은 만여명의 갤러리가 몰렸단다. 한국골프 초유의 관람객으로 미국에서도 보기 힘든 경우라 한다. 어린이날의 일인데 그 많은 분들이 자녀와 손주는 어떻게 해결(?)하고 나왔을지 궁금하다.
미셸 위가 만들어 낸 사회적 열기는 4월에 방한했던 하인즈 워드의 그것과 같고도 달랐다. 이들이 부자라는 것 외에 같은 점이라면 스포츠로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구석도 많다. ‘워드신드롬’의 경우 그의 최고의 경기력 외에도 출생과 성장의 배경, 헌신적이고 검소한 어머니, 그 어머니와의 약속, 한국사회 혼혈인 문제 등을 드라마화하고 뻥튀기 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그 구조는 꽤 복잡하다. ‘사회적 반성’까지 이야기하는 분위기에서 정치인들도 혼혈인과 관련된 ‘이벤트성’ 정책 제안을 내놓아야만 했다. 사실 워드신드롬은 언론이 “여러분, 쟤도 한국사람이에요~” 하며 워드를 세워 놓고 ‘자랑스러운 한국의 피’를 증명하고 말초적 ‘반성’을 요구하는 신파극조의 드라마였고 동시에 한국인됨과 순혈주의에 대한 다분히 가식적인 사회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그는 ‘흑인’이었나보다. 당시 광고계가 들썩이는 것 같았지만 아직까지 어느 기업도 그와 광고모델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아직도 우리들은 TV를 통해 검은 피부를 보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미셸 위의 경우는 상당히 다르다. 사실 그는 ‘한국인’이라기보다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러나 그의 피부색과 외모는 워드의 경우처럼 ‘피’를 가지고 계속 강조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었고, 또 된장찌개와 족발을 먹어야 힘이 나고 송승헌, 동방신기를 좋아한다니 그의 ‘한국사랑’을 새삼스럽게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자랑스런 우리 한국인’이 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말이 유창하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발음하는 걸 따라서 퍼터를 ‘빠따’라고 말한다는 기사에 골프 좀 아는 많은 사람들은 “허허, 그래그래” 하고는 만나는 사람과 ‘빠따’를 이야기하며 흐뭇하게 웃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 딸,’ ‘귀여운 손녀’가 된 미셸 위가 다음에 또 와서 돈을 한보따리 싸가도 우리는 마냥 ‘오냐오냐’하며 대견해 할 것이다. 게다가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미셸 위가 타이거 우즈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면 우리는 이를 ‘대한민국’의 경사로 여길 것이다.

골프, 그리고 국위선양의 한국적 공식

과거 극소수 정치권력집단과 자본가들만의 여가활동으로 김지하의 〈오적〉에까지 등장하여 ‘공공의 적’으로 여겨지던 골프가 이렇듯 강력하게 대중에게 소구할 수 있게 된 연유를 이야기하자면 역시 박세리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98년 미국 LPGA에서 4개 대회 우승으로 신인왕에 오른 그의 센세이셔널한 데뷔는 국내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IMF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 국민적 희망이 되었다. 그는 ‘대한의 딸’이었고 당시 박찬호와 함께 단군 이래 최고의 ‘상품’이었다. 사실 최초로 미 LPGA를 우승한 이는 구옥희였다. 일본프로무대에서 성공한 그는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대회에 임박하여 불참하는 선수들 대신 출전하는 대기선수 생활 끝에 1988년 스탠다드레지스터클래식에서 우승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분위기는 골프에 대한 사회적 호감을 드러낼 수 없던 시기였고 또 집 떠나 외국을 떠돌며 운동하는 여성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시절도 아니었기에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다. 따라서 골프가 점차 대중화되던 시기이자 국가적 위기와 침체의 시기였던 1998년의 박세리의 쾌거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그러나 미국무대에서 선전하는 최경주나 한국 낭자군의 연이은 업적이 창조하는 사회적 현상은 골프가 단순히 ‘국위선양’하는 스포츠라는 단순논리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우리의 맹목적 애국심과 미국사회에 대한 동경, 그리고 미국인들의 한국 여자골프에 대한 조소와 시기와 인종차별적 태도 등에 겹겹이 쌓여 있다. 여자선수들의 연이은 선전은 많은 이들이 새벽잠을 설치면서까지 골프중계를 시청하게 했고 국민들은 돈을 벌러 미국으로 간 이들을 국가대표로 여겼다. 그러나 언론, 그리고 우리의 태도는 편협하고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박세리가 그 유명한 ‘맨발투혼’으로 US오픈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그가 자신의 캐디, 그리고 상대 선수와 악수를 나누기도 전에 그린 위에 난입해 자신을 딸이라고 부둥켜안고 흔들어 대며 독점해버린 그의 아버지와 이들을 따라들어와 그린 한복판을 차지했던 SBS 카메라맨의 추태는 국제적 망신거리였음에도 국내에서는 언론도 골프인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또 IMF로 민심이 흉흉하던 당시 정부수립 50주년을 기념하기가 어색했던 공보부는 ‘제2의 건국’을 타이틀로 그녀의 US 오픈 경기장면을 내보냈다. 솔직히 연장전의 위급한 순간 신발, 양말 벗고 공을 친 그 어느 구석이 ‘투혼’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광고는 ‘꼴푸’와 ‘상록수’를 짝 지워버린, 참으로 기가 막힌 광고였다. 이는 골프 즐기는 고위 공무원들만이 창출해낼 수 있는 절묘하고도 골 때리는 ‘오바’였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낭자군이 국위선양의 첨병이라고들 여기지만 그게 꼭 그렇게 ‘오토매틱’인 것만은 아니다. 태극전사들이 유럽 국가들을 연파하며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는, 말 그대로 기적을 이루는 바람에 유럽에 있던 한국 유학생과 교민이 곤란에 처했던 것처럼 항상 ‘영광’ 뒤에는 ‘난처함’도 있게 마련이다. 한국선수들이 미 LPGA대회의 리더보드를 휩쓸게 되면서 LPGA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한국선수들 때문에 백인, 특히 미국선수들의 우승이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마치 중국선수들 때문에 난감한 한국탁구처럼. 스웨덴의 소렌스탐이나 호주의 캐리 웹까지는 모르겠는데 전혀 다른 피부와 외모의 한국선수들은 조금 달랐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주류이자 최대 소비집단인 와스프(WASP)에 의존해왔던 LPGA 대회가 한국선수들의 경연장으로 변하자 대회 스폰서가 빠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열심히 경기에 임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한국선수들의 잘못이라 볼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 한국선수들과 그 보호자(아버지!)들의 태도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LPGA대회에는 보통 100~150명의 선수들이 출전하는데 이제까지 한국선수들은 많게는 24명까지 출전했다. 그만큼의 미국선수들이 출전자격을 잃는 것으로 이는 미국선수들의 생계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어느 대회에선 우승 포함 6명이 10위 내에 들 정도가 되다보니 최고수 소렌스탐조차 무수한 한국선수들과 홀로 버거운 싸움을 벌이게 되었고 한국선수들은 시기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런 와중에 영어와 미국문화에 익숙치 못한 한국선수들이 그들끼리만 몰려 다니는 데다 미국에서 ‘골프 대디’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한국 아버지들이 경기 중 딸에게 수신호와 한국말로 코치하는 등의 규정위반을 하고 또 이를 문제 삼는 외국 선수들과 시비를 벌인 것이다. 2003년 골프 100대 뉴스에는 한 중견골퍼와 에티켓 논쟁을 벌인 미셸 위의 아버지 위병욱이 46위, 한국의 골프 대디가 48위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미국선수 잰 스티븐슨이 “아시아선수가 투어를 망친다”고 한국선수들을 비난했고 LPGA는 한국선수들에게 코스에서 부모와 한국말로 이야기하지 말라는 권고를 해 인종차별 시비에까지 휩쓸리게 된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목격되는 것이지만 우리는 종종 승리에 매몰되어 그 승리를 놓고 온갖 논리비약을 시도하게 되면서 그 과정에 대한 성찰을 곧잘 잊게 된다.

‘바지바람’: ‘가문’을 위하여

한국 여자골프는 사실상 세계최강이다. 2진을 내보내도 적수가 없을 한국 양궁과 쇼트트랙처럼. 꿈나무도 세계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미국 아마추어골프에서 랭킹 1, 2위를 다투는 2세들은 이미 꽤 되고, 호주에서, 뉴질랜드에서도 무럭무럭 크고 있다. 뉴질랜드 여자아마추어 챔피온십에서는 한국인이 2연패했고 다섯 명이 10위 내 입상했다. 호주에서는 유학생 양희영이 호주에서 열린 유럽여자골프투어에서 유럽 여자골프 역사상 22년만에 아마추어로서 우승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중고생 골프선수들은 다달이 500만원을 들이고 겨울철엔 필리핀과 태국으로 원정훈련까지 보내며 아이들에게 골프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이제는 ‘어차피 고생할 바에야’ 하는 각오로 미국 못지않은 여건에 비용도 적게 드는 호주와 뉴질랜드로 아이들을 유학 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안락한 노후마저 담보로 내놓는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이 있다. 과거엔 극심한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기 위해 운동을 했던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중산층인 부모가 자식의 성공을 위해 골프를 시킨다. 혹자는 한국 여자골프의 성공요인으로 젓가락질이나 섬세한 손놀림을 꼽는데 이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양궁을 잘 하지만 사실 활이야 전세계인들이 다 쐈고 우리라고 옛날에 특별히 잘 쏜 것도 아니다. 또 우리가 쇼트트랙 강국이지만 얼음 위에서 해 봤던 건 팽이치기와 동란 후부터 탄 썰매 정도이지 딱히 쇼트트랙과 연결시킬만한 문화양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국 골프의 발전은 전적으로 부모들의 무조건적 헌신과 혹독한, 때로는 가혹한 훈련에 기인한다. 자신의 노후까지 걸었기에 부모들은 집착하게 되고, 또 혹독하게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부모가 나서는 게 낫다. 내 새끼 내가 패는데 누가 뭐랄 것인가. 그래서 골프장이나 연습장에서는 자녀에게 손찌검하는 아버지, 그리고 부모가 ‘패서라도 제대로(?) 가르치라’며 전권을 위임한 코치의 구타를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전과목 A를 받기도 한다는 미셸 위와 달리 이들은 공부와는 담을 쌓게 된다.
그런데 부모들이 유난히 딸들을 골프에 입문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한국사회의 성차별적 구조와 IMF 이후의 사회변화와 맞물리는 듯 하다. 우선 한국에서 여성들의 사회진출 통로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한 남성들은 여성이 중간관리자 이상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그나마 여성이 최고를 다툴 수 있는 곳은 예술, 문화, 스포츠 등 일종의 ‘프리랜서’영역에 제한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딸자식의 미래를 자유직에서 찾게 된다. 그런데 딸에겐 ‘예쁜 것’만 시켜야 했던 과거엔 음악, 미술, 무용이 선호됐지만 점차 스포츠가 대중화되면서 여자선수들의 성공을 보게 되고 특히 골프를 즐기게 되는 아버지가 늘어나면서 1990년대 들어 나이 어린 여자 골프 입문생들이 빠르게 증가하게 된다. 특히, 예뻐 보이기만 하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들다는 교수가 되는 것 외엔 장래성도 별로 없어 보이는 예술보다는 미디어를 통해 부와 인기를 얻은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 스포츠영역이 더 선호되기 시작했다. 또 그 중에서도 개인종목이면서도 비접촉운동인 골프는 바람직한 여성성을 침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수와 그 가족의 ‘품위’도 높여 주니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IMF 이후 불어온 교육과 직업에 대한 태도의 변화의 영향도 받게 된다. 지금은 계급간 구분이 고착화되는 듯 하지만 과거 한국사회는 신분의 상하 이동이 극심한 사회였는데 신분 상승의 발판은 역시 교육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못 살았던 시절 물론 아들에 한정된 것이지만 많은 부모는 소와 땅을 팔아서라도 대학을 보내려 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1960~70년대에는 은행에 취직하거나 공무원 되는 것이 멋있는 것이었고 80년대부터는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아버지 최불암이 아들 안성기에게 채근하듯 ‘종합상사’에 취직하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IMF는 이러한 직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재벌기업의 믿겨지지 않는 도산과 유혈이 낭자한 구조조정, 즉 정리해고는 기업이 더 이상 우리의 안식처가 아니라는 생각을 낳게 되었고 많은 젊은 사람들이 자유업을 찾게 만들었다. 또한 IMF 직전 목격한 ‘중졸’ 서태지의 센세이셔널한 성공과 전 삼미 부회장에서 양식당 웨이터로 변신한 서상록 등의 이야기 등은 강고한 성곽과도 같던 교육과 직업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허물기 시작했다. 모든 스포츠에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골프선수들도 대학을 악세사리 쯤으로 여기게 되었고 골프선수라는 직업도 꽤 괜찮은 직업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 골프선수들의 아버지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들은 왜 직업을 관두면서까지 스스로 나섰을까. 왜 그 많은 코치들 놔두고 딸을 직접 가르치려들까. 사실 이는 어느 종목, 어느 나라에나 있다. 대표적 극성 아버지라면 우리나라에서는 투수 최동원의 아버지가 그 시초로서 유명하다. 그는 경남고 다니던 아들의 어깨를 50십만원에 보험에 들어 당시로서는 해외토픽감 뉴스거리를 제공했고 아들을 경기장으로 실어 나르는 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선동렬, 허재의 아버지도 꽤 유명했었다. 외국에도 타이거 우즈 외에도 농구의 코비 브라이언트, 테니스의 마리아 샤라포바, 윌리엄스 자매, 마리 피어스 등의 아버지는 유명하고 그 중 상당수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골프 대디들이 외국 언론의 입방아에까지 오르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이다. 사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부모의 눈에 차는 변변한 코치가 없었다. 한국의 골프는 역사도 짧고 선수 수도 소수였기 때문에 몇몇 이름있는 선수는 있어도 권위 있는 코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 코치라고 해 봐야 어차피 싱글 수준인데 역시 싱글 수준의 아버지라면 당연히 자기가 더 낫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는가. 결국 골프 대디들은 자식의, 그리고 자기 가족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사명감에 손수 딸을 가르치려 들게 되고, 스폰서계약도 직접 챙기게 되고 또 이역만리에서 대륙횡단하며 대회에 출전해야 하는 딸을 위해 핸들도 손수 잡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선수건, 코치건 과거엔 골프장 직원 출신 아니면 학력도 보잘 것 없는, 출신 배경도 의심스러운(?) 이들이 많았기에 자식 맡기기에는 맘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딸자식인 다음에야.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박세리의 아버지도 세계 최고의 골프코치라는 데이비드 리드베터가 딸에게 지도한 스윙을 ‘내 딸은 내가 안다’며 바꿔 버리고 딸의 매니지먼트도 너무 열성적(?)으로 하는 바람에 갈등을 빚다 결국 리드베터와 결별하게 된다.
한국에서 자식에게 골프를 시킨다는 것은 사실상의 투자다. 일단 골프의 길에 발을 들여 놓게 되면 그 곳에는 ‘사생결단’만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족의 희생을 요구하게 되고 오직 승리를 위해 학업은 포기하고 ‘골프기계’가 된다. 이는 결국 사실상의 도박이다. 어린 나이의 자식의 미래를 오직 하나에 고정시키고 그 외 자녀의 감수성이나 취향, 그리고 다양한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탐색은 일찍이 포기하고 모두 배제시켜 버린다. 그리고 스포츠가 상업화되면서 아이의 미래는 부모의 욕망과 등치된다. 자식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미래 브레드위너의 역할을 부여한다. 선수들이 프로인 이상 그들을 비난할 수 없고 이러한 현상이 전무후무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여자골프는 위의 설명의 오차 범위 내에 자리한다.

가진 자들의 ‘돈지랄’

골프의 대중화라고들 이야기한다. 허수가 포함된 것이기는 하지만 국내에 골프 인구가 300만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200여개 정도인 골프장을 재경부와 문광부가 합심해 대폭 늘리겠다 하고 많은 지자체가 골프장 건설을 추진한다. 새만금 간척지에는 540홀, 즉 18홀 골프장 30개를 건설하는 계획이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대중화되고 국가가 권장하는 스포츠인데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의 실세 총리였던 이해찬을 골프는 단번에 날려버렸다. 골프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일까.
골프는 운동이다. 즐거움을 위해, 건강을 위해, 친교를 위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그러나 골프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종 잡을 수 없다. 양면적이다. 이 총리의 삼일절 골프의 논란이 한창일 때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등산, 낚시는 괜찮은데 왜 골프는 안 되냐며 이 총리를 옹호했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 정서에 그런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서울의 동작대교 건설 당시 다리의 강북 끝은 곧장 뻗어 나가지 못하고 T자 형으로 설계가 변경되면서 강변북로로의 진출입만 허용되는 요상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유는 곧게 뻗을 경우 용산 미군기지 내 골프장을 가로지르게 돼 미군 측이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사전에 그에 대한 고려 없이 설계가 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지만 어쨌든 그 당시 미군에 대한 반감이 들끓었다. 어느 신문 사설은 뉴욕에 일본군영을 생각할 수 없을진데 하물며 서울 시내 복판에 미군 골프장이 말이 되냐고 미군을 비난하기도 했다. 내 아무리 미국을 싫어해도 체육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러한 비난은 여가활동으로서의 스포츠를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이다. 레저스포츠는 그들 생활의 불변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일정 크기 이상의 시설이나 기업은 꼭 그에 상응하는 체육시설을 갖춰야 하고 여기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체육시설이 들어선다. 건물 지을 때 화장실 들어서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 체육시설이다. 우리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 때문에 골프라 해서 등산이나 낚시와 다르게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골프의 성장은 ‘생활체육’의 성장이 아닌 정치분위기의 변화와 맞물리며 진행됐다. 우리나라에 본격적 골프장이 들어선 것은 미군이 골프 치러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을 알게 된 이승만 대통령이 골프 때문에 안보에 문제가 생기겠다 싶어 지금의 서울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골프장을 건설한 때이다. 그러나 장기집권한 박정희도 골프를 좋아하지 않아 70년대까지의 골프는 소문 없이 하는 게 원칙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도 즐기긴 했지만 그들은 그들은 업무상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었고 고위직 포함 일반 공무원들에게는 골프를 사실상 금지시켰다. 골프 치다 적발되면 맘 편히 골프만 치게 해 주겠다고 경고한 서울시장도 있었다. 김영삼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들의 기강을 다잡아야 하는 경우나 국민들에게 뭔가 신뢰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때면 공무원 골프단속령을 내렸다. 그러나 문민정부 때 국회의원과 경제인들은 맘껏 치러 다닌 듯 하다. 특히 이전에는 요정정치가 주를 이루었지만 YS시절 요정정치에 대한 수요가 없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필드정치’로 넘어가게 된다. YS와 JP가 5공청산에 합의한 것도, DJP연합도 골프가 길을 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그 외 정말 많은 정치 협상이 골프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정치 좀 한다하는 정치인들은 골프를 멀리하고는 정치를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또 정치인들이 가는 곳에 경제인들 뿐 아니라 브로커, 로비스트가 다 몰려들게 마련이고, 또 이들 가는 곳에 기자 안 갈 리 없다. 이런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니니 골프장도 이들을 배려하며 또 로비를 한다. 결국 이 다양한 집단들이 합종연횡, 이합집산하며 골프를 치면서 정보를 주고받고 돈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골프를 국민들이 좋아할 리 없다. 대중의 일상과는 그 어떤 접점도 찾을 수 없는 그네들만의 ‘돈지랄’일 뿐이다. 그리고 사실 골프는 아마도 모든 운동 중 가장 비효율, 비생산적인 운동이다. 운동에만 네시간, 옷 갈이입고 씻는데 한시간, 자동차로 이동하는 데 두세시간이다. 골프장에 내야 할 돈은 20만원이 넘고 연장 사는데 기백만원이 들어간다. 매달 연습하는 데 몇 십만원이 든다. 그리고 그 놈에 ‘폼’ 때문에 사야하는 것, 써야하는 돈은 왜 또 그리 많은지. 그리고 룰은 엄청나게 복잡하다. 프로선수들, 대회진행요원도 모르는 룰이 많아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명칭들은 왜 또 그리 제각각인지. 그냥 마이너스 원, 플러스 투 하면 될 걸, 보기, 버디, 이글 등 정체불명의 용어들이 차고도 넘치니 이들을 다 외우기는 역부족이다. 그런데도 우리 선수 중 누가 우승이라도 하면 메이저신문들은 컬러 그림까지 크게 그려놓고 군사용어에 암호 같기만 한 단어를 마구 써대며 그래서 이 승리는 극적이었고 따라서 감동적이라고 몇 번을 주장한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골프가 본격적 대중스포츠로 탈바꿈한 것은 박세리의 공도 크지만 역시 나랏님이 중요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인천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골프의 대중화를 선언했다. 골프랑 어울리지도 않는 그가, 골프 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 그가 취임 초기 국민에게 생뚱맞게 골프대중화를 주창한 것이다. 국민에게 운동을 권장하는데 어떻게 팔굽혀펴기, 쪼그려뛰기를 건너뛰고 골프를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가. 역시 스포츠는 정치적이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의심을 떨쳐 버리지 않았던 보수 기득권세력에게 일종의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이다. 무색무취하면서도 대단히 정치적인 활용이다.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권의 핵심들도 취임 초기부터 골프를 열심히 쳤고 사적 골프모임도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언론이 골프를 키워주고 정치경제의 주요인물들이 골프를 함께 즐기게 되면서 골프는 점차 도구화되어 갔다. 동시에 상류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신분을 증명하고 또 이에 근접하려는 다수의 사람들이 골프에 참여하면서 골프는 점차 ‘대중적’이라는 인식을 번식시키기 시작한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기반으로 해서 참여정부는 드디어 골프공화국을 지향하게 된다. 2004년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250개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고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은 200가 아니라 2000개라도 지어야 한다고 화답한다. 2005년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골프장 건설규제완화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현장 조사하라는 지시를 하달했고 올초 문광부는 2010년까지 50개 골프장을 새로 건설하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나 필자가 아무리 경제 개념이 없더라도 우리나라 경제가 골프장 건설로 좌우될 정도의 구멍가게(?) 수준인지 궁금할 뿐이다. 또 그로 인한 사회적, 도덕적 영향까지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누구의 말대로 룸살롱을 경제부문에 끌어들여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공공정책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이는 세수 확대를 노리면서 손도 안대고 코를 풀려는 지자체와 골프장을 부동산 투자로 여기는 자본, 그리고 환경과 지역주민은 안중에도 없는 개발업자의 이해관계를 정부가 대변하는 것이라 볼 수 밖에 없다. 또 30만평 땅에 500억원 이상을 들여 36홀 골프장을 지어봐야 고작 200여명, 그나마 정규직은 50여명일 뿐이고 비정규직도 점차 용역회사 인력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상황을 모른다면 그것은 공부도 안 하는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로비가 난무하는 정경유착의 놀이터가 바로 골프장이다. 그러니 하루 10만 시민이 휴식을 취하고 가족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공원 대신 오직 하루 240명을 위한 난지도 골프장이 그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것 아닌가. 또 힘 있는 사람도, 기자도 같은 편이니 전국의 골프장 여기저기에서 캐디들이 수많은 위협과 협박 속에서도 그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도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당하는 것 아닌가. 이런 삐딱한 이야기 다 집어치우고 우리의 일상을 둘러보자. 시내를 가로지르는 고가다리 위를 달리며 주변을 보면 뾰쪽탑 십자가만큼 많아 보이는 게 초록색 철골구조물이다. 도대체 탁구치기, 테니스치기가 골프치기보다도 어려운 나라가 어쩌다 ‘우리나라’란 말인가. 이게 말이 되는가! 하여튼, 나는 골프가 싫다.
정희준(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위원장, 동아대 스포츠미디어학과 교수), "황해문화51호"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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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업 - 이성순 11/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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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업 - 이성순 12/1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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