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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차기13호_한달+댓글]농구의 전설 이상민 은퇴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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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전설 이상민 은퇴

'젊은 후배를 위해 선배는 무대를 내주어야 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라임라이트>의 서막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앞날을 예견하는 그의 쓸쓸함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위대한 업적을 뒤로하고 후배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주려는 또 하나의 이가 있습니다. 바로 프로농구에서 십 수 년 동안 황제의 자리를 누려왔던 이상민 선수입니다.

4월 22일 오전, 수많은 팬들의 아쉬움 속에서 이상민 선수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은퇴소식을 알렸습니다. “허리부상으로 힘들었고 체력적인 부담까지 느껴 은퇴를 결정했다"며 "이제는 후배들에게 길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그는 90년대부터 늘 제왕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농구대잔치 최초의 대학팀 우승 견인, 트리플더블 제조기, 소속팀의 2년 연속 통합 우승과 수차례 우승 등의 화려한 이력서는 ‘컴퓨터 가드’ 이상민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특히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준결승전에서 보여준 극적인 3점슛 버저비터는 언제 뒤돌아봐도 짜릿함을 느끼게 되죠. 9년 연속 올스타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던 그 다운 명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38세의 나이는 그의 재능을 시기해 허리부상이라는 고통을 안겨주었고, 체력의 한계로 은퇴를 거론하게 만들었습니다. 여전한 감각으로 팬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는 더 큰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고 겸손하게 물러납니다. 그래도, 전설의 사라짐이 그렇게까지 아쉽지 않은 건, “이것이 끝이 아니다.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다.”라는 그의 말 때문일 겁니다.

모비스 우승의 주역 유재학 감독

2010년 4월 11일, 울산 모비스와 전주KCC의 결승전. 1쿼터부터 7실점만 내준 모비스는 우월한 전력을 선보이며 최종성적 4승 2패로 프로농구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2009~2010프로농구 정규리그에 이어 플레이오프까지 석권한 모비스는 통합우승 3회라는 쾌거도 동시에 이루어냈지요. 걸출한 가드 양동근과 챔피언결정전MVP 함지훈,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 불리는 테렌스 레더의 활약 앞에선 KCC의 ‘농구천재’ 허재 감독도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돋보였던 건 팀을 우승으로 이끈 명장 유재학 감독의 노련한 작전술이었습니다. 체력과 수비에 중점을 두고 짜임새 있게 코트를 휘어잡는 그는 만 가지 수를 가졌다는 뜻의 ‘만수(萬數)’ 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지요. 다양한 패턴의 수비,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날카로운 공격 작전은 최근 6년 간 4회 우승이라는 업적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는 그만의 독창적인 리더십에 더욱 집중해있습니다. 특출한 능력 대신 기본기를 강조하고, 학연에 얽매이지 않으며, 끊임없는 성실함을 강조하는 그의 리더십은 이렇다 할 스타가 없던 모비스를 우승으로 끌고 가는 견인차 역할을 했지요.

어느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타 선수를 무시하는 스타는 특A급 선수라도 쓰지 않는다.”라고 한 일례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스포츠에 있어 중요한 건 타고난 재능보다는, 묵묵한 인내와 흘린 땀방울의 양(量)임을 확인시켜주는 유재학 감독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합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타계

2010년 4월 21일, 올림픽계의 거목이었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이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81년 9월 30일 밤, 88서울올림픽 개최의 꿈을 현실화했던 “쎄울, 코레아!”의 장본인인 그는 1980년 7대 IOC위원장에 당선된 뒤 국제스포츠계에 수많은 영향력을 끼쳐왔습니다.

서구권과 동구권의 대립으로 올림픽마저 냉전의 영향을 받고 있을 때 쯤, 사마란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을 없애는 현실적인 전략으로 올림픽의 흥행을 이끌어내었고, 스폰서십과 올림픽중계권료 등의 도입으로 IOC의 재정을 탄탄하게 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는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세계올림픽을 개최할 기회를 만들었고,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의 채택을 성사시켰으며, 특히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남북 공동 입장이라는 평화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올림픽의 위상을 드높인 그의 공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과 역사로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뇌물 스캔들을 받아 ‘올림픽 마피아의 대부’라는 별명까지 얻은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상실케 하고 스포츠의 상업화를 주도한 점은 두고두고 고민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정신마저 잡아들이고 있는 현대에 스포츠까지 무사할 수는 없었겠지만, 지나친 상업화의 견제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의 보호까지 주도했더라면 더욱 빛나는 그가 되었지 않았을까요? 남은 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니만큼, 지금은 사마란치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재영/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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