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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문화위원회 뉴스레터 "돌려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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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차기13호_칼럼]‘박찬호 키즈(kids)’ 그들이 달린다!!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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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한국청소년야구대표팀은 캐나다에서 벌어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는 이승엽(당시 경북고, 현 요미우리 자이언츠)과 김건덕(당시 경남상고, 현 부경고 코치)이 주축이 되어 우승을 한 1994년 이후 6년 만으로 통산 3번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2000년 우승의 주축 멤버들은 현재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자신의 역량을 다하고 있는 추신수(당시 부산고, 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김태균(당시 천안북일고, 현 지바 롯데), 이대호(당시 경남고, 현 롯데 자이언츠), 정근우(당시 부산고, 현 SK 와이번스) 등이었다.

멈추지 않고 질주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추 트레인’ 추신수!!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추신수. 그는 2001년 연고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의 유혹을 뿌리치고 태평양을 건너 시애틀 매리너스의 품에 안긴다. 하지만 미국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적응의 문제였다. 언어와 음식 그리고 차별, 이에 따른 외로움 등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하지만 그는 ‘포기는 없다’를 외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이를 악물고 배트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지만 그에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2005년 추신수는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진출에 성공하지만 2006년 시즌 중 클리블랜드로의 이적을 맞이해야했다. 이제 시작이라 생각했던 그에게 클리블랜드로의 이적은 충격으로 다가 왔고 이내 부상의 악령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어진 기나긴 재활의 시간들. 추신수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2008년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94경기에 출장, 타율 0.309를 치며 14홈런에 66타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추추 트레인’ 별칭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오랜 기간 동안 그를 괴롭혔던 낯선 문화와 부상을 한순간에 실력으로 뛰어 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한국 야구를 세계 준우승으로 이끌며 시작한 2009년. 비로소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자리매김하며 완벽하게 클리블랜드의 얼굴로 떠오르게 된 추신수. 156경기 175안타 타율 0.300, 20홈런에 86타점 그리고 87득점, 21도루를 기록하는 기쁨을 누렸고 20-20 클럽 달성은 보너스였다. 추신수는 이번 시즌을 완벽하게 치르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국가의 부름을 기다릴 것이다.

‘김별명’ 김태균

2000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추신수, 이대호와 함께 중심타선으로 출전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김태균. 프로야구 선수 중에서 인터넷의 가장 큰 혜택을 얻은 선수가 바로 김태균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김태균보다 별명을 많이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김별명’이 되었을까!! 이렇게 김태균은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팬들에게 어필되는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네티즌에게 희화화된 김태균은 실력으로 말하는 대한민국 대표 타자였다. 그는 천안북일고 재학 중에 ‘박찬호 장학금’의 수혜자였다. 즉, 누구보다 박찬호 선배를 동경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거기에 박찬호와 김태균은 동향이기까지 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였을지 모른다.

2001년 고향팀 한화이글스에 입단한 김태균은 그해 신인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프로에 데뷔한다. 그리고 착실히 자신만의 이미지와 실력을 쌓았고 2010년 FA 자격을 얻으며 현해탄을 건너 일본 진출에 성공을 한다. 시범경기와 시즌 초 불같은 방망이를 휘두르며 성공적인 일본 적응을 하고 있는 김태균. 선배 이승엽이 그랬던 것처럼 김태균은 일본 열도를 방망이로 뜨겁게 달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선배 박찬호에게 받았던 것을 후배들에게 되돌려주려 한다. ‘김태균 장학회’를 설립하여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그의 후배들은 김태균이 박찬호를 보며 그랬던 것처럼 김태균을 동경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한발, 한발 전진할 것이다. 우리 야구의 미래가 밝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들이 태평양 건너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던 2000년. ‘코리안 특급’ 박찬호(당시 LA 다저스, 현 뉴욕 양키스) 역시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최고의 한해를 보내고 있었다. 34경기에 나와서 18승 10패 탈삼진 217개,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어땠을까? 박찬호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1994년. 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들이었다. 그리고 박찬호가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본격적인 활약을 펼치고 최고의 전성기를 지낸 1990년대 후반에 이들은 꿈 많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미국의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배를 바라보며 동경의 대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묵묵히 기량을 닦고 훈련에 정진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박찬호 선배와 같은 큰 무대에 서리라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2010년. 추신수는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5툴 플레이어’로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투수 박찬호’에 이은 ‘야수 추신수’의 새로운 신화에 도전하게 된다. 또한 일본 정벌에 나선 김태균은 어마어마한 거금을 안긴 소속팀 지바 롯데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며 선배 이승엽에 이은 또 하나의 신화에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선배 박찬호가 눈물로 내놓은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고 대표 팀의 부름을 받으면 언제든지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뛸 각오를 다지고 있을 것이다. 이들 ‘박찬호 키즈’가 브레이크 없이 달릴 때 한국야구는 세계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박찬호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수
1994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 진출하여 1996년부터 본격적인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자리매김하였다. 2010년으로 메이저리그 17년차가 되었고 2009년까지 통산 423경기에 출전하여 120승 95패 19홀드 2세이브를 기록했고 1929.1이닝을 던졌으며 1663탈삼진을 잡아내며 통산 방어율 4.35를 기록하고 있는 코리안 특급. 현재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팀인 뉴욕 양키스에서 핵심 불펜으로 활약하고 있다.


[여정권/충남대학교 스포츠사회학실 실장, 대전MBC 프로야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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