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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Reds

문화운동에 대한 급진적 상상력과 실천.성찰, 탐구, 놀이를 통한 문화운동의 새로운 실험.
| by 빨간도둑


우파 파브릭, 대안적인 삶에 대한 실험은 계속된다!
이원재  
조회수: 9035 / 추천: 88
1.
“문화도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용어이다. 문화도시라는 개념, 용어에 대해 익숙해지기도 전에 이미 문화도시는 유행처럼 남한 사회를 뒤덮고 있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공간에 대한 찰나의 고민도 없이 추진되고 있는 정부와 자본의 문화도시, 문화공간 정책은 사실 거대한 소비정책이자 지속가능한(?) 막개발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문화공간에 대한 열풍은 (정치꾼들이 영화와 사진 속에서 보아왔던) 서구 근대도시들의 이미지를 무차별적으로 소비하는 정책이고, 또 다른 경제우선주의식 신개발일 뿐이다. 낡디 낡은 정치꾼들의 입에서 “문화”, “예술”, “디자인” 등이 거침없이 토해져 나오고 있지만, 이는 거대한 토건 자본의 음흉한 얼굴을 가려줄 가면에 불과하다. 문화도시는 난발하고 있지만 문화는 없다. 문화공간은 유행하고 있지만 문화 공공성은 초대받지 못하고 있다.


2.
우리 주위에서 문화공간의 코미디, 아니 잔혹극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누워있는 인공폭포이자 어항에 불과한 청계천, 잔디 광장 위 스케이트장이라는 기상천외한 운명에 직면한 서울시청 광장, 패션 타운을 위해 사라지게 될 근대문화유산 동대문운동장...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혈세가 정치꾼들의 새로운 소비 패턴 때문에 비명횡사하고 있다.
시민의 문화권리, 공간의 사회적 정의와 공공성, 생태적이고 지속적인 도시 등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최소한 자본주의의 상식에서조차 용납될 수 없는 막개발과 유치찬란한 전시행정이 도시와 공간을 잠식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꾼들의 전시행정에서 빠지지 않는 코너가 바로 “해외 사례”이다. 문화도시, 문화공간이라는 새로운 소비패턴을 권장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정치꾼들은 언제나 성공한 해외도시라는 메뉴판 혹은 상품목록을 들이민다. 그 도시의 맥락과 주민들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정치꾼들에게 꾸리지바, 구마모토, 빌바오, 글래스고, 두바이 등은 그저 자신들의 새로운 막개발을 위한 알리바이일 뿐이다.
정치꾼들이 해외도시의 성공 과정을 소개하면서 반드시 생략하고 감추는 것이 있다.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 없는 도시빈민, 작업실 없는 예술가, 일자리 없는 실업자... 정치꾼들은 해외도시의 성공사례를 화려한 이미지와 수치로 도배하지만, 사실 그 도시, 그 공간이 성공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살기 좋아졌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살기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기 좋아진 데에는 어느 날 갑자기 천사 같은 행정 관료와 천재적인 기획자가 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둘러 싼 끊임없는 열정과 투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정치꾼들의 입은 그곳에서 침묵하고 정치꾼들의 눈은 그것을 볼 수 없지만, 성공한 도시와 공간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몸뚱이에서 시작된다.


3.
베를린에서 마주하게 된 “우파 파브릭 ufa fabrik”은 문화도시, 문화공간이야말로 화려한 행정이 아니라, 오래된 삶의 흔적과 기억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우파 파브릭은 예술가, 주민들의 점거와 실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공간이며, 지배권력의 개발주의와 경제우선주의에 저항하며 생존해 온 공간이다.
지금은 이 공간들을 답사하기 위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정도로 유명한 공간이 되었지만, 그래서 많은 전문가, 언론, 심지어 행정 관료들까지도 우파 파브릭을 언급하지만, 화려한 성과 이전에 지금의 우파 파브릭이 있기까지 수많은 예술가와 주민들의 열정과 실험 그리고 저항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진1] 우파 파브릭의 초기 개념도들


우파 파브릭은 예술가, 주민들의 자발적인 공동체 형성 과정이 지역사회는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얼마나 의미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어느새 자립주거 공동체를 넘어 이웃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우파 파브릭은 생태, 예술 공동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살아있는 모델인 동시에 예술의 사회적 실험 그 자체이다.
특히 우파 파브릭의 생태, 주거, 교육 등을 둘러 싼 문화적 실험은 문화가 부차적이고 향수적인 대상으로 전락한 현대사회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새로운 삶의 실험이라 할 수 있는 우파 파브릭의 예술가, 주민들의 도전은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고, 그 삶이 지역사회에서 충분하게 존중되고 소통되며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다.

[사진2] 우파 파브릭 입구에 설치된 전체 안내도


4.
우파 파브릭은 18,566 m²의 면적을 차지한 베를린 도심 내 문화생태마을이자 공동체이다. 현재 우파 파브릭이 있는 공간은 과거 1920년대 베를린 남쪽 포츠담 템펄호프 지역에 있던 필름영화제작소가 지원하는 필름현상소 자리였다. 1961년 베를린장벽이 생기면서 현상소는 동베를린에, 촬영소는 서베를린 지역으로 나뉘어졌다. 독일의 분단으로 인해 두 시설은 공동 작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현상소는 방치되고 버려진 공간이 되었다.
68혁명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절에, 독일의 많은 젊은 세대들이 군 면제 혜택 등을 계기로 베를린으로 이주해왔다. 그 당시 베를린에는 빈 공장를 비롯하여 유휴공간이 많았는데,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공간들에 모여 노동자(수공업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고 변화시키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갔다.

[사진3] 우파 파브릭의 곳곳에는 다양한 작업들이 삶의 흔적처럼 녹아있다.


우파 파브릭 역시 그러한 공간 중의 하나로, 젊은 세대들의 변혁적 에너지가 점거, 공동체 운동 등과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온 공간이다. 초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기존의 예술만이 아니라 삶의 실험을 모색하였고, 이는 생태문화적인 주거뿐만이 아니라 스포츠, 수공업 등과 결합되면서 국가 권력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해 나갔다. 이곳에서는 아시아 무예를 배우고, 음악을 감상하며, 자전거를 빌리거나 도자기를 만드는 등의 다양한 생활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당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 1978년에 공장 문화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3개월 동안의 축제는 하나의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수많은 예술가, 건축가, 주민들이 도심 쓰레기와 쓰지 않는 물건 등을 새로운 재료삼아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진행했다. 에너지 분야에선 세계 최초의 태양열 목욕탕을 개발하기도 했고, 물을 내리지 않는 자연발효 화장실도 개발했다. 그리고 생태문화적인 주거와 삶을 위한 수많은 연구와 실험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들이 축적되면서 혁명가나 예술가들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 공장 주인 등으로부터 다양한 공동 작업과 지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진4] 우파 파브릭의 주요 시설들 (체육관, 카페 실내, 어린이 놀이공간, 게스트 하우스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5.
1979년 6월 9일 사람들은 “To think another way and change llfe”라는 선언과 함께 이곳에 우파 파브릭이라는 이름을 지으며 공식화하였다. 1965년부터 버려진 공간이었던 필름현상소 자리에 우파 파브릭이 만들어졌고,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실험하기 위해 100여명이 이주를 시작한 것이다. 초기 우파 파브릭에 모인 사람들은 스스로의 주거와 노동을 위해 직접 시설을 리모델링하고 레스토랑, 빵집 등을 만들어갔다. 재정 자립을 위해 길드를 형성하고, 공동체 안의 각종 시스템을 스스로 구축하였다.
대안적인 삶에 대한 실험으로 시작한 점거 공동체 우파 파브릭은 이제 국제문화센터, 연극공연장, 문화교습소, 체육관, 카페, 레스토랑, 빵공장, 유기농 식품점, 게스트하우스, 동물원, 어린이 서커스학교, 프리스쿨 등을 운영하는 공동체 마을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우파 파브릭의 “자립센터 NUSZ”는 이웃들을 대상으로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 건강, 가정문제에 대한 격려와 지원을 실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가족 지원 서비스, 탁아소와 학교, 상담과 갈등중재 등을 진행하며, 지역 커뮤니티와 다른 지역들을 위한 정기적인 마켓과 축제를 개최한다.

[사진5] 우파 파브릭의 건물들은 친환경에너지 시설과 생태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에너지 시설 표시(왼쪽)와 공연장의 생태지붕(오른쪽)


6.
물론 우파 파브릭의 실험과 삶이 결코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재정 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대안을 모색해 왔다. 현재 전 세계에서 연간 25만~30만 명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고, 우파 파브릭이 2006년 1년 동안 이웃에게 제공한 일자리만 210개에 이르지만, 우파 파브릭에서 대안적인 삶을 지속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화도시, 문화공간이 전시행정을 통해 유령처럼 떠도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삶의 축적을 통해 만들어진 “과정이 있는” 문화주거공동체 우파 파브릭의 실험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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