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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개각진


[정희준] 집나간 축제를 찾습니다
새로운 월드컵 응원문화를 기대하며
문화연대  
조회수: 23970 / 추천: 150
축제 맞다. 많은 국민이 환호했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축제라고 다 같은 축제는 아니다. 우리는 전두환 정권 시절의 ‘국풍81’을 바람직한(?) 축제로 보지 않는다. 이 국풍이란 축제는 광주혁명 1주기를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고 학원문제를 축제 속에 매몰시키려는 여론호도용 관제축제였다. 사실 전두환은 문화적 소양을 지닌 독재자였다.
그가 그람시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을 지배하는 데 탁월한 효용을 지닌 문화의 가치를 그는 제대로 보았다. 그래서 독재정권에 대학생들이 탈춤과 풍물로 저항하자(카운터-헤게모니) 또다른 전통문화인 씨름을 선택해 맞불을 놓으며(카운터-카운터-헤게모니) 전통문화를 통해 정통성을 내세우려 한 바 있다.
국풍이 가져다 준 축제분위기 속에 많은 이들이 즐거워했다. 5천년 역사상 처음 보는 거대한 축제였다. 청와대 정무비서관 허문도가 아이디어를 낸 국풍81은 신문협회가 주최하고 KBS와 MBC가 진행을 맡았다. 국풍의 기획자는 바로 방송사였고 그 기획에 참여를 거부한 당시 KBS PD 임진택은 회사에서 쫓겨나 마당극 소리꾼에 전념하게 된다.
그 기간 TV는 국풍을 지겹게 틀어댔다. 2002월드컵에 윤도현이 등장한 것처럼 조용필의 맞수 이용도 그때 탄생했다. 신문도 이 관제축제를 1면부터 대대적으로 다룸으로써 화답했다. ‘우리의 미래’라며 젊은이들을 떠받들어 줬고 ‘선진조국,’ ‘국운상승,’ ‘민족문화창달’을 떠들어 댔다.
그러나 이 국풍이란 축제는 낭떠러지로 밀어 절명케 해야 할 축제였다. 그래서 임진택은 국풍은 밑으로부터의 자발적 움직임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했고 역시 참여를 거부했던 탈춤 1세대 채희완 교수는 국풍이 계속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대목시장 만난 호객꾼들이 넘쳐난 월드컵축제
이 땅의 2006년 전반기를 뒤덮었던 월드컵광기에서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지금 월드컵이란 축제를 다시 곱씹어본다. 우선 이 월드컵은 엄청난 대목시장으로 변해버렸고 호객꾼들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규모도 동네 포장마차 수준이 아니다. 또 7일장도 아닌 4년장이니 얼마나 치열했겠는가.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모든 기업이 뛰어들었다. 농협은 독일원정간 응원단 먹여야 한다며 농협김치 보내겠다 방을 써 붙이고 우체국도 한국팀의 성공을 기원한다며 좌판을 벌였다. 특히 이 땅의 유이한 공영방송 KBS와 MBC는 서로 자기네 좌판으로 오라고 계속 자막을 내보내고, 양대 통신사 SKT와 KTF 역시 우리를 ‘뜨겁게’ 하려고 갖은 애를 다 쓴다. 눈물까지 짜낸다.
이 와중에 프랑스와의 경기 전 서울광장(KBS 주관)과 상암경기장(MBC 주관)의 응원행사를 TV를 통해 봤다. 대종상 시상식인 줄 알았다. 양복 입은 손범수와 김제동이 드레스 입은 꽃다운 여자 아나운서들과 함께 청중들의 호응을 끌어내려 노력한다. 사실 그 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무대 위에서 애쓰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럽다. 호응이 시원치 않으면 순발력으로 마무리 하고 가수에게 바통을 넘긴다. 그 와중에 카메라는 시청 뒤 프레스센터 꼭대기의 ‘서울신문’ 네온사인을 두둥실 떠있는 달을 담듯 홀연히 화면에 담는다. 아, 맞다. KBS랑 서울신문이랑 같은 편(SKT컨소시엄)이었다.
거리응원이 가져다주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서울광장 응원을 기획한 SKT의 팀장이 강변하는 것처럼 지금의 월드컵은 상업적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검은 양복들이 하라는 대로 자리에 각잡고 앉아 정해진 식순에 따라 박수치고 환호해야 했다. 자본과 미디어가 축구팬을 쑈프로 방청객으로 만들어 용역직원을 동원해 통제하는 응원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그리고 시민의 공간을 차지하고서는 자사 직원들만의 공간을 따로 만들어 시민의 출입을 통제한 SKT 측의 행태는 고쳐져야 한다.
이렇듯 공적 공간에 기득권이나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점에서 붉은악마도 다시 생각할 점이 있다. 거대자본과 방송사가 이미 완벽하게 기획한 ‘응원식’들 속에 갈 곳이 애매해진 붉은악마가 그들의 출생지인 광화문으로 돌아간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 앞 가장 좋은 자리에 그들만의 ‘전용구역’을 따로 만들어 붉은악마 회원 아닌 붉은악마들(?)의 출입을 가로막은 것은 그들이 한달여 전 앞으로 기업과 거리를 두겠다며 발표한 ‘신선언문’의 취지를 퇴색케 하는 것이다.

월드컵 ‘쑈’, 마초들의 축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풀뿌리축구에서 클럽축구까지의 연속성과 공적 서비스로서의 교육적 가치를 축구의 특징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실천(practice)이 중시되던 축구가 볼거리(spectacle)로 변해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번 월드컵은 저변도 별로 없던 한국의 축구를 볼거리로 고착화시켜 버렸다. 미디어의 지나친 개입이 2002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4년 전 거리응원에선 가족의 모습, 장년층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응원은 방송사들이 주도하면서 우리의 응원문화는 현격하게 저연령화되었다. 특히 SKT와 계약한 용역사 직원들은 서울광장을 통제하면서 시민들의 항의를 묵살하면서까지 ‘나이트클럽 기도’가 ‘화면빨’ 잘 받을 여성들만 앞자리에 집중배치한 것은 거리응원이 ‘쑈’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물관리’ 끝에 방송사 카메라는 주로 젊고 ‘월드컵 옷차림’을 한 여성들을 내보낼 수 있었고 사진기자들은 특히 예쁘거나 노출 심한 젊은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담아서 살포했다. 엘프녀, 시청녀가 그 결과이고 여기에 네티즌까지 가세해 ‘토섹녀’까지 등장했다.
WBC야구대회 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 방송사의 카메라는 가족의 모습, 할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들의 모습, 특히 파울볼을 잡으려는 꿈(?)에 글러브를 끼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열심히 포착한다. 그러나 한국의 방송사들은 젊은 여성들을 열심히 중계하며 정반대로 갔다. 한참 말이 많았던 기존 지상파의 음악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다. 이렇듯 스포츠를 대하는 이들의 시각차는 극명하다.
결국 2002년의 거리응원은 여성이 억눌려왔던 욕망을 광장에서 표출하고 그래서 객체 아닌 주체로서 인증 받았던 상징적 공간이었던 데 반해 지금의 월드컵은 여성을 다시 볼거리로 되돌려 놓았고 관음증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 대 토고전 이후 거리에서 벌어졌던 광란의 모습은 일방적이고도 폭력적인 마초문화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젊은 남성 이외의 집단은 모두 주변부로 몰아내 버리거나, 그들의 일방적 ‘하나됨’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헹가레를 빙자한 성추행이나 ‘짝짝 짝짝 짝’에 경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자동차 흔들기가 예이다. 월드컵은 이들에게 ‘즐겨도 된다’가 아니라 ‘막나가도 된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듯하다.
매우 특이한 점은 이러한 경우, 그리고 자동차 지붕에 올라가 파손하는 경우도 언론은 이를 ‘축제’로 포장해 소개한다는 것이다. 2002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분명 거기엔 공포에 질린 사람도 있고 며칠간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택시기사들의 분노도 있을텐데 언론은 이 모습을 기발하고 신명나게 노는 축제 속의 젊은이들로 소개했다. 그들의 머리 속에 무엇이 꿈틀대는지 궁금하다.

월드컵 싹쓸이 편성이 국민의 요구였다고?
언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월드컵 싹쓸이편성과 지면도배는 온 국민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히 ‘미디어’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언론’이라면 대중의 즐거움이나 재미만을 쫓아서는 안 된다. 언론은 사회적 공기로서 의제설정(agenda-setting) 기능을 수행해야 하고 사회적 이슈를 적절한 시간, 적절한 빈도, 적절한 분량으로 다루어야 한다. 특정 이슈를 의제로 설정한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사회적 이슈가 밀려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 목격했듯 방송사들이 앞 다퉈 월드컵을 첫째, 줄째, 셋째 의제로 줄줄이 설정해 버리는 바람에 한미FTA협상 등 많은 긴급하고도 명백한 사회적 현안이 뒤로 밀렸을 뿐 아니라 이달 말을 끝으로 강제 퇴거 당하게 되는 평택 대추리 주민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아예 흔적조차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온 국민이 월드컵을 원한다는 언론의 주장은 의심스럽다. 주변인들이나 네티즌들, 그리고 식당 종업원이나 택시 기사들은 방송이 너무 심하다거나 월드컵 빨리 끝나야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온 세상이 월드컵을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듯 개인적 경험과는 정반대되는 분위기가 어떻게 하나의 진리처럼 굳어졌는가.
미디어 이론 중엔 침묵의 나선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적 고립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자신의 생각이 지배적 여론과 일치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목소리를 높이고 그 반대의 경우엔 침묵을 지킨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판단할 때 미디어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새해 벽두부터 ‘월드컵의 해가 밝았다’며 모든 매체가 작심하고 월드컵으로 도배를 하는 상황에서 월드컵에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이 소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그다지 ‘소수’가 아닌데도 연합군을 형성한 언론은 초반부터 위력시위를 통해 대세를 장악하고 이들을 존재도 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한 국가의 모든 지상파 방송이 한 경기를 중복중계하고 하루 24시간 중 15시간에서 20여 시간을 월드컵으로 싹술이편성하는 경우는 한국 뿐이다. 국민을 응원시키겠다고 방송사가 나서는 경우도 외국에서는 찾을 수 없다. 또 응원 뒤 청소하는 모습을 중앙의 언론사들이 판에 박은 듯 대견하다며 큼직하게 보도하면서도 그 수많은 불상사는 모른 척 하는 경우도 참으로 한결같다. 그야말로 분위기 띄우기 좋은,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내보내는 데에는 선수들이다. 외신도 어쩜 그렇게 자랑스러운(?) 것들만 골라 증거로 내세우는지... 이 와중에 오직 승리만을 쫓는 왜곡된 응원문화만 자라났다.

서커스는 끝났다. 이제 월드컵의 ‘진국’을 홀가분하게 즐길 때
이미 30년전 우리에겐 거리응원이 있었다. 거리의 전파상 유리 너머 진열대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며 흥분했고 환호했다. 버스기사마저 차를 세우고 보곤 했다. 축구나 복싱 세계타이틀전이 있을 때면 다방이 미어지기도 했다. 커피값이 조금 올려받긴 했지만 담배연기 자욱한 가운데에서도 한가득 사람들이 열광했다. 동대문운동장에서의 대표팀 축구나 고교야구 때면 3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신명나는 응원전이 벌어졌다. 변변한 응원가도, 집어 던질 휴지도, 막대풍선도, 야광뿔도 없었지만 지금의 응원보다 단 한 치의 부족함도 없었다.
방송은 이번에 ‘본전치기’ 밖에 못할 거라 하는데 다음엔 더 ‘오버’ 하지 않을지 겁난다. 안 그랬으면 한다. 월드컵에 이렇게 목매달아 한다는 것이 소문이 나니 FIFA가 만만히 보고 2010월드컵 중계권료로 1억 달러를 내놓으라 하지 않았겠는가. 세 방송사가 사이좋게 돌아가며 얌전하게 경기중계만 하면 2014월드컵 때면 중계권도 내려가기 마련이다.
축제란 무엇인가. 그 대전제는 지역주민 또는 참여자들간의 소통이다. 전국에 축제가 넘쳐나고 ‘축제공화국’이란 비판까지 있는데도 정작 ‘축제는 없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인가. 주민과 참여자는 배제하고 지역의 힘센 사람들이 주도하는 가운데 하나 같이 어느 가수를 불러 공연을 채우나 하는 고민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참여자가 중심에 서지 못하는 축제는 문제가 많은 축제다. 2006월드컵이 나쁜 선례가 되지 않기 바란다. 2010엔 자본의 점령구, 방송사 스튜디오가 아닌, 시민의 해방구에 내 두발을 딛고 싶다.
마지막으로, 스포츠를 도구화하려는 이들이 너무 많다. 기업, 언론, 국가가 돈과 시청률과 국익을 위해 민족과 애국심까지 팔아가며 축구를 이용한다. 선수들까지 이제는 돈에서 더 나아가 병역면제를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너무 지저분해졌다. 그래서인가. MBC가 ‘축구는 오늘... 죽었다’고 했다. 전혀 아니다. MBC가 원하는 월드컵 특수만이 죽었을 뿐이다. 이제부터 축구팬 여러분들은 월드컵 ‘진국’을 홀가분하게 즐길 일만 남았다.
서커스는 가고 지금부터가 진짜다. 비바 월드컵!
* 필자 : 정희준(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위원장, 동아대 교수),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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