늠름하고 다정한 그라운드 – 언니들 축구대회
함은주|문화연대 집행위원
아, 나도 공 차고 싶다
언니들 축구대회가 열리는 이천 세계로 풋볼클럽에 다다랐을 즈음 눈앞에 보이는 파란 천막 지붕들에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경기장에 도착해 주차를 하는 동안에도 공 차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면서 나를 안달나게 했다.
그러다 불쑥, 공 차는 소리나 호루라기 소리 등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하는 사람 중에 여성은 몇이나 될까 생각하니 머쓱하면서도 안타깝다. 공이 차일 때마다 심장이 차이는 것 같은 행복한 뻐근함, 그 벅찬 느낌이 경기장의 다양한 소리에, 형언하기 어려운 공기에 묻어 있다. 나도 공 차고 싶다.
지난 6월 3일, 위밋업스포츠((We meet up Sports)가 주최하는 <언니들 축구대회>가 이천 세계로 풋볼클럽에서 열렸다. 위밋업스포츠는 여성과 아동을 위한 스포츠 프로그램 서비스 플랫폼회사로 은퇴 여성선수들이 모여서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언니들 축구대회>는 여자축구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인 대표가 축구를 즐기는 중년 여성들에게 경기 참여의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올해 5회를 맞이한 대회는 2018년 1회 대회 이후,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2020년 한 차례 건너 뛴 것을 제외하고는 매년 개최되었다.
은퇴한 여성 선수들이 주최하는 축구대회
남성들의 생활체육 축구 대회는 20대, 30대에서 60대, 7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별로 개최되어 다양한 연령대 동호인의 경기 참여가 가능하다. 반면 여성 축구대회는 연령 구분 없이 개최되다 보니 40대 이상의 언니들은 열심히 연습하고 열정을 불살라도 실력과 체력이 우세한 동생들에게 밀려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위밋업스포츠의 신혜미 대표는 언니들의 축구 열정을 응원하고 언니들이 맘껏 축구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또 그것이 은퇴한 여성 축구 선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언니들이 축구대회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언니들 축구대회는 언니조(1981년 이전 출생자)와 동생조(만 18세 이상)가 나뉘어 진행된다. 특히 언니조는 경기가 무승부일 경우 각 팀 출전선수의 나이를 합산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대회에도 나이합산으로 승패가 결정된 경기가 많았다.
인터뷰 중에 참가자들이 대회 본부로 와서 몇 살이냐고 묻는다. 무승부 경기가 나와 상대팀의 합산 나이를 묻는 것이다. 신혜미 대표는 인터뷰를 중단하고 나이 합산 및 경기 결과를 고지한다. 승리를 가져간 한 팀의 합산나이는 308세, 평균 나이가 61.6세다. 이 정도면 패배한 팀은 “니들은 뭐 하느라 나이도 고것 밖에 안 먹었니?”라며 어린 이들(?)을 타박할 만하다.
60대 언니가 플레이 콜링을 하고 골대 앞에서 골을 막아낸다. 아, 늠름하고 든든하다. 골대 포스트를 손으로 짚고 서서 다른 한 손으로는 경기장을 가리키며 두터운 소리로 콜링을 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포스가 시쳇말로 쩐다. 나의 60대도 저 언니 같았으면 좋겠다.
늙는다면 저 언니들처럼! 늠름하게, 다정하게
여성이라서 축구하는 것이 특별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전체 축구 동호회 중 10%도 안 되는 여성축구 동호회 혹은 축구 클럽에서 어렵게 그리고 끈질기게 축구를 하고 있는, 그리고 그 어려운 길은 먼저 닦아 놓은 언니들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이 담긴 것뿐이다.
‘먼저 산 여성은 뒤에 태어난 여성의 이름을 불러 주려고 언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언니들 축구대회에서는 축구인의 삶을 먼저 시작한 언니들이 동생들을 불러주고 말로 서로의 눈이 되어 주며 그라운드를 넓고 크게 쓸 수 있도록 알려 준다.1)
동생들의 경기장에 한 선수가 쓰러져 있다. 상대팀 선수와의 몸싸움 끝에 부상을 입은 듯 했다. 동료가 쓰러지자 같은 팀 선수들이 모여 들어 선수의 얼굴 위로 상체를 숙여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쓰러져 있는 선수에게 쏟아지는 햇볕을 가려 보호해 주는 것이다. 다정하다. 축구가 이리 다정한 스포츠였던가? 몸이건, 마음이건 부상을 입은 동료에게 없는 그늘도 만들어 보듬어 주는 다정함이 그 팀의 저력일 것이다.
여성이 축구하는 예능프로그램<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이 시작한 지 2년이 지났고 프로그램 회차로도 100회가 넘었다. 골때녀의 영향으로 축구하는 여성이 증가했고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도 꽤 높아진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이 축구하기가 쉽진 않다. 시설이나 장소, 강습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찾기 어렵다.
60세 남성이 축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60세 여성이 축구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특이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축구하는 늠름하고 다정한 언니들 곁에서 나도 그들처럼 늠름하고 다정한 운동으로 운동하는 언니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1) 정세랑 외 19인.(2021).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창비. 중에서 임지은 작가와 김혼비 작가의 글을 일부 차용함.
늠름하고 다정한 그라운드 – 언니들 축구대회
함은주|문화연대 집행위원
아, 나도 공 차고 싶다
언니들 축구대회가 열리는 이천 세계로 풋볼클럽에 다다랐을 즈음 눈앞에 보이는 파란 천막 지붕들에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경기장에 도착해 주차를 하는 동안에도 공 차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면서 나를 안달나게 했다.
그러다 불쑥, 공 차는 소리나 호루라기 소리 등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하는 사람 중에 여성은 몇이나 될까 생각하니 머쓱하면서도 안타깝다. 공이 차일 때마다 심장이 차이는 것 같은 행복한 뻐근함, 그 벅찬 느낌이 경기장의 다양한 소리에, 형언하기 어려운 공기에 묻어 있다. 나도 공 차고 싶다.
지난 6월 3일, 위밋업스포츠((We meet up Sports)가 주최하는 <언니들 축구대회>가 이천 세계로 풋볼클럽에서 열렸다. 위밋업스포츠는 여성과 아동을 위한 스포츠 프로그램 서비스 플랫폼회사로 은퇴 여성선수들이 모여서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언니들 축구대회>는 여자축구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인 대표가 축구를 즐기는 중년 여성들에게 경기 참여의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올해 5회를 맞이한 대회는 2018년 1회 대회 이후,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2020년 한 차례 건너 뛴 것을 제외하고는 매년 개최되었다.
은퇴한 여성 선수들이 주최하는 축구대회
남성들의 생활체육 축구 대회는 20대, 30대에서 60대, 7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별로 개최되어 다양한 연령대 동호인의 경기 참여가 가능하다. 반면 여성 축구대회는 연령 구분 없이 개최되다 보니 40대 이상의 언니들은 열심히 연습하고 열정을 불살라도 실력과 체력이 우세한 동생들에게 밀려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위밋업스포츠의 신혜미 대표는 언니들의 축구 열정을 응원하고 언니들이 맘껏 축구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또 그것이 은퇴한 여성 축구 선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언니들이 축구대회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언니들 축구대회는 언니조(1981년 이전 출생자)와 동생조(만 18세 이상)가 나뉘어 진행된다. 특히 언니조는 경기가 무승부일 경우 각 팀 출전선수의 나이를 합산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대회에도 나이합산으로 승패가 결정된 경기가 많았다.
인터뷰 중에 참가자들이 대회 본부로 와서 몇 살이냐고 묻는다. 무승부 경기가 나와 상대팀의 합산 나이를 묻는 것이다. 신혜미 대표는 인터뷰를 중단하고 나이 합산 및 경기 결과를 고지한다. 승리를 가져간 한 팀의 합산나이는 308세, 평균 나이가 61.6세다. 이 정도면 패배한 팀은 “니들은 뭐 하느라 나이도 고것 밖에 안 먹었니?”라며 어린 이들(?)을 타박할 만하다.
60대 언니가 플레이 콜링을 하고 골대 앞에서 골을 막아낸다. 아, 늠름하고 든든하다. 골대 포스트를 손으로 짚고 서서 다른 한 손으로는 경기장을 가리키며 두터운 소리로 콜링을 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포스가 시쳇말로 쩐다. 나의 60대도 저 언니 같았으면 좋겠다.
늙는다면 저 언니들처럼! 늠름하게, 다정하게
여성이라서 축구하는 것이 특별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전체 축구 동호회 중 10%도 안 되는 여성축구 동호회 혹은 축구 클럽에서 어렵게 그리고 끈질기게 축구를 하고 있는, 그리고 그 어려운 길은 먼저 닦아 놓은 언니들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이 담긴 것뿐이다.
‘먼저 산 여성은 뒤에 태어난 여성의 이름을 불러 주려고 언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언니들 축구대회에서는 축구인의 삶을 먼저 시작한 언니들이 동생들을 불러주고 말로 서로의 눈이 되어 주며 그라운드를 넓고 크게 쓸 수 있도록 알려 준다.1)
동생들의 경기장에 한 선수가 쓰러져 있다. 상대팀 선수와의 몸싸움 끝에 부상을 입은 듯 했다. 동료가 쓰러지자 같은 팀 선수들이 모여 들어 선수의 얼굴 위로 상체를 숙여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쓰러져 있는 선수에게 쏟아지는 햇볕을 가려 보호해 주는 것이다. 다정하다. 축구가 이리 다정한 스포츠였던가? 몸이건, 마음이건 부상을 입은 동료에게 없는 그늘도 만들어 보듬어 주는 다정함이 그 팀의 저력일 것이다.
여성이 축구하는 예능프로그램<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이 시작한 지 2년이 지났고 프로그램 회차로도 100회가 넘었다. 골때녀의 영향으로 축구하는 여성이 증가했고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도 꽤 높아진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이 축구하기가 쉽진 않다. 시설이나 장소, 강습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찾기 어렵다.
60세 남성이 축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60세 여성이 축구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특이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축구하는 늠름하고 다정한 언니들 곁에서 나도 그들처럼 늠름하고 다정한 운동으로 운동하는 언니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1) 정세랑 외 19인.(2021).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창비. 중에서 임지은 작가와 김혼비 작가의 글을 일부 차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