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하나 믿고 한번 가보자고!”



“몸 하나 믿고 한번 가보자고!”

윤성희|프리랜서 사진가, 기자



미화부 언니들의 신나는 배구 수업


 

올해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예능 중 하나가 바로 <사이렌: 불의 섬>일 것이다. 경찰, 운동선수처럼 ‘몸 쓰는 직군’의 여성들이 가상의 섬에서 몸으로 부딪히고 경쟁한다. 이들은 육체적 능력, 성취욕과 승부욕, 직업인으로서의 전문성을 보여주면서 고정된 여성성을 전복했기에 주목받았다. 예능이라서 가능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그것을 배구수업에서 배웠다. 한 주에 딱 하루, 그것도 40분만 열리는 수업이었다.

 

수업은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체육관에서 시작되었다. 수강생들은 호기심과 어색함, 기대감이 섞인 얼굴로 코치님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배구수업과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수강생들이 서강대 소속 여성 청소노동자들이라는 것이다. 수업시간은 매주 금요일 정오부터 12시 40분까지, 수강생 언니들의 점심시간이었다.

 

이 수업은 문화연대 대안체육회가 진행하는 ‘호호체육관’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취지는 이랬다. “서강대학교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나 자신을 위해 노동할 힘을 키우는 운동 프로그램입니다. 늘 바닥을 보며 일해야 하는 언니들과 함께, 운동할 때만큼은 하늘을 보며 하하호호 웃고자 합니다.”

 

수업 참관을 신청했지만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내가 지금껏 보아 온 나이 든 여성 노동자들의 운동이란 요가나 댄스, 에어로빅 정도였는데 갑자기 배구라니? 이 딱딱한 공을 저분들이 맨손으로 쳐서 날린다고? 어깨나 손목에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과연 잘될까? 하지만 그건 언니들의 체력과 끈기, 성취욕을 몰랐을 때 얘기다.

 

 사진 윤성희 기자


배구로 깨운 몸의 기억과 감각들

 

언니들은 수업시간 10분 전부터 오전 업무를 마친 뒤 작업복 차림으로 모였다. 12시 정각이 되면 동그랗게 모여 가벼운 맨손체조로 몸을 풀고, 두 명씩 짝을 지어 공을 주고받으며 토스와 리시브를 연습했다.

 

처음에는 공을 한 번 주고받기도 어려웠다. 빗맞힌 공은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래도 민망함은 없었다. 언니들은 공을 잘못 맞추거나 넘어지면 “아유, 뭐야~” 하면서 다 같이 와르르 웃었고, 재빨리 뛰어서 공을 주워다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다 공을 주고받는 데 성공하면 “잘했다!” “이번에 좋았어!” 서로를 북돋으며 신나게 웃었다.

 

언니들의 손목은 금세 붉어졌지만 팔을 뻗어 공을 쳐내는 동작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걱정하는 내게 되려 언니들은 자신 있게 말했다. “괜찮아요. 공이 딱딱하니 더 잘 나가더라고요.” 그렇게 언니들은 공을 따라 쉬지 않고 코트를 뛰어다녔고, 수업 종료 시간이 되면 오후 업무를 위해 칼같이 퇴장했다. 언니들의 작업복이 점점 공식 선수팀 유니폼으로 보였다.

 

언니들이 공을 두려워하지 않고 배구수업을 즐길 수 있던 이유는 스스로의 몸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몸에 품은 시간과 감각들이었다. 특히 몸이 날랜 향란 언니는 초등학교 때 핸드볼 선수였다. 스포츠댄스를 포함해 여러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배구는 처음이니까 공을 다루는 감각을 맞춰가는 게 어려웠어요. 힘 조절을 잘못하거나 팔을 조금만 틀어도 공이 완전히 반대로 나가니까. 그런데 또 하다보니까 되데요. 예전에 운동할 때 익혔던 요령이나 힘 같은 게 몸에 남아 있더라고요.”

 

해숙 언니도 수영과 요가를 오래 해온 운동 마니아였다. “배구 뛰고 나서 일 시작하면 오히려 훨씬 덜 피곤해서 좋아요. 점심 먹고 누워 있다 나가면 더 피곤해.” 언니의 운동 비결은 ‘꺾이지 않는 출석 정신’이었다.

 

“해도 해도 안 된다 싶을 때 있잖아요? 그럴 때 더 포기를 안 해야 해요. 그 고비만 넘기면 운동이 재밌어요. 그리고 한 번 안 나오면 다음엔 더 나오기 싫거든요. 그러니까 죽 나와야 돼요.” 그 말대로 해숙 언니는 배구수업 개근상을 탔다.

 

수업시간마다 가장 신나게 달리던 조남 언니는 10대 시절 마을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배구를 좀 배웠었다.

 

“그때 생각만 하고 무작정 덤볐는데 힘들긴 했죠. 그런데 잘 안 되다가도 공이 한 번 잘 맞잖아요? 그럼 성취감이랄까 기분이 되게 좋아요. 그리고 땀 흘린 만큼 몸이 가벼워요. 몸이 풀어지는 느낌? 원래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안 돌아갔는데 배구 하다 보니 좀 돌아가더라고요. 그동안 학생 동아리나 노조의 연대 사업으로 여러 가지 수업을 들었었는데, 코로나로 다 중단이 됐거든요. 그런 차에 배구수업이 생겨서 너무 좋았어요.”

 

언니는 이젠 몸이 안 따라주는 거 같다면서도 운동을 하는 거 자체가 그냥 재밌다며 웃었다. 마을 청년회 시절 활동력은 그 때의 기억과 함께 지금도 여전히 언니의 몸에 있었다.

 


 

고정된 몸을 풀어내기

 

언니들의 몸은 각자의 다양한 삶의 시간과 경험들로 이뤄져 있었고, 계속해 움직이고 변화해가는 유기체 같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몸들은 납작하게 규정되곤 한다. 여성노동자는 체력적으로 뒤떨어지거나 덜 중요한 일을 한다고 여겨지며, 청소노동은 ‘눈에 보이는’ 생산력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명목으로 쉽게 폄하된다.

 

사진 윤성희 기자


이러한 규정이 여성노동자의 몸을 자꾸만 고정하고 제약하며 지워버린다. 하지만 몸 쓰는 직군으로서 청소노동자가 여성 군인과 운동인과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성취욕과 자긍심, 직업인으로서의 경력과 능력이란 성별과 직업에 따라 있거나 없는 것일까?


사회적 규정의 힘은 강력하지만 기회만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깨어지기도 한다. 언니들의 몸이 담당구역을 벗어나 학교 체육관을 당당히 점유하고 선 순간, 수그렸던 몸을 죽 뻗어 스파이크를 날리는 순간. 언니들이 일상의 피로를 날리고 몸의 위치와 감각을 전환하는 그 시간이 내게는 고정된 여성노동자의 이미지를 잊고 그들의 몸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회가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써보고 몸의 감각을 전환하는 기회. 몸들이 고정된 위치를 벗어나 새롭게 움직이고 맞닿는 기회. 그러니까 누구나 같이 할 수 있는 운동 같은 것.

 

“누가 뭔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기회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 난 도전해보고 싶은 게 진짜 많거든요. 나이트 댄스도 해보고 싶고 다른 운동들도,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그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배구든 다른 거든, 이런 수업들이 계속 되면 좋겠고요.”

 

해숙 언니의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 역시 언니의 바람과 같다.


사진 윤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