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피로 대신 운동의 즐거움을 2023 솔라시 포럼, 호호체육관 주목하다


노동의 피로 대신

운동의 즐거움을

2023 솔라시 포럼, 호호체육관 주목하다

이두찬 | 문화연대 활동가



지난 9월 21일부터 23일까지 충남 공주의 한국문화연수원에서 ‘2023 솔라시(Solidarity of Labor and Civic society) 포럼’이 열렸다. 솔라시 포럼은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이 손을 맞잡고 연대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취지 아래 전국 약 29개 노동·시민단체가 작년 말부터 개최하고 있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풀뿌리 운동과 각종 사회운동 영역이 전례 없는 위기를 겪는 가운데 열렸기에 더 많은 활동가들이 참여해 한층 다양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 포럼에서 문화연대는 그동안 진행해 온 호호체육관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각계각층의 활동가들과 토론의 장을 열었다. 호호체육관은 작년 하반기부터 서강대학교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진행하는 연대 프로젝트이다. 호호체육관에 함께할 더 많은 동료를 모으고, 전국 곳곳에 더 많은 호호체육관을 열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문화연대의 새로운 시도, 호호체육관

 

문화연대는 그간 대한체육회 등 체육계 내부의 개혁과 대한민국 스포츠가 지향해야 할 미래상, 대안적 패러다임을 이야기했다. 스포츠 혁신위원회의 활동과 성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견고한 체육계 카르텔을 깨기에는 부족했고 반동의 시간은 굉장히 빨리 다가왔다. 이 싸움을 체육계 내부가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으로 넓히기 위한 운동의 확장이 필요했다.

 

스포츠로 세상을 바꿔 보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문화연대는 운동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과 운동을 하면서 사회를 바꾸는 사회운동에 착안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올린 연대의 주체는 몸을 많이 쓰는 사람들, 노동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지만 정작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 바로 청소노동자들이었다. 이들과 일주일에 하루라도 자기 몸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보자는 것.

 

그리하여 서강대학교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나 자신을 위해 노동할 힘’을 키우는 운동 프로그램인 호호체육관이 탄생했다. 체육관은 이들에게 매일 매일 청소를 하고 수없이 정리해야 하는 ‘내 일터’였다. 이곳에서 노동이 주는 피로가 아닌 운동하는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자기 몸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 호호체육관의 목표였다.

 

작년 하반기 호호체육관의 첫 번째 프로그램은 요가 수업이었다. 그동안 어머니, 아줌마, 여사님 등으로 불리던 청소노동자들은 이곳 호호체육관에서 ‘언니’가 되었다.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 약 40분간 진행된 요가 수업에서 활동가들 역시 맨 뒷줄에 자리를 잡고 함께했다.

 

언니들은 매번 수업 시간 전부터 미리 자리를 잡고 복습을 했다. 지난 시간에 배운 자세를 연습하고, 또 스트레칭을 하면서 수업 준비를 했다. 2, 3회차가 되자 벌써 각자 자기 자리가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언니들은 훨씬 진일보한 자세를 보여줬고, 그 하나만으로도 이번 프로젝트가 정말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학기가 끝난 후 식사를 하면서 언니들은 “올라가지 않던 어깨가 올라간다”, “일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몸이 덜 피곤한지 생각하며 일한다”며 소감을 나눴다. 운동이 왜 필요한지 언니들이 몸으로 겪은 지난 한 학기의 경험이 마치 신앙 간증처럼 쏟아졌다.

 

 

 

땅만 보며 일했으니, 운동할 땐 하늘 보자

 

파일럿 프로그램을 평가하면서 우리는 이후에 무엇을 할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가를 진행해 봤으니 좀 더 움직임이 많은 운동을 해 보자, 매일 땅을 보며 일했던 언니들이 하늘을 보면서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규칙이 있는 운동, 그 규칙에 맞는 운동을 함께 배워 보자 등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최종 결정된 종목이 바로 배구였다. 배구야말로 하늘도 보고 몸도 펼 수 있는 운동 아닌가. 운동할 때만이라도 웃으며 하늘을 보자, 몸을 쭉쭉 펴 보자는 것이다.

 

요가와 같은 정적인 운동과 달리, 배구 종목은 참가자 특성상 모집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10명이나 되는 분들이 참여 신청을 해주셨다. 첫 모임에선 먼저 배구란 어떤 스포츠인지 이야기 나누고 경기 규칙을 익히고, 언더토스와 오버토스 등 배구의 기초수업을 진행했다. 손으로 툭툭 공을 쳐보고, 두 손을 모아서 하늘로 쳐보기도 했다.

 

처음 만진 배구공이 익숙하지 않아서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공이 튀기도 했고, 생각보다 공이 아프다는 분들도 있었다. 매일 자신들이 정리하고 청소하던 공간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오히려 학생들이 서서 언니들의 배구를 구경하기도 했다.

 

서강대 인권실천모임인 노고지리 학생들도 함께했다. 함께 배구를 배우며, 노학연대의 새로운 경로 및 경험을 쌓아보기로 했다. 어느새 호호 체육관은 시민단체와 노동자, 학생들이 함께 하는 연대의 장이 되고 있었다.


배구수업을 마무리하는 졸업식에서는 언니들과 활동가들, 서강대 학생들이 편을 나눠 제대로 된 배구 경기도 진행했다. 물론 규칙은 우리가 정했다. 토론을 통해 서브 실수 한번은 넘어가기, 바닥에 한 번 튕겨도 계속하기 등 우리 수준에 맞는 규칙을 짰다.

 

치열한 경기였지만 아무도 승패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배구공을 주고받듯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서로가 서로를 돕는 ‘연대’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스포츠가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포츠를 통해 우리 자신도 이미 바뀌고 있었다.




운동(sports)으로 운동(movement)하자, 웃으면서!

 

이번 솔라시 포럼은 이제까지 진행해 온 호호체육관의 여러 가지 성과와 의미를 되짚고 시민사회와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다.

 

언니들은 여전히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한다. 학생들보다 일찍 출근해 학생들의 공간을 청소한다. 교정을 걸으며 ‘학교가 왜 이렇게 깨끗하지?’ 돌아보기란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노동 때문이다. 호호체육관은 학생들에게 상쾌한 일상을 선물하는 언니들이 자신들이 청소하던 공간을 일주일에 하루 한 시간 남짓이나마 점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매일 바닥을 쓸고 닦으며 하늘을 볼 시간도 없던 언니들에게 하늘을 보고 움츠린 몸을 잠시라도 펼 수 있게 했다. 드라마틱하게 삶이 변화하진 않겠지만, 눈으로 보기만 하던 운동을 직접 해 보고 신체적 변화를 스스로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니들과의 연대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가장 큰 것은 노동자들에게 운동(스포츠)이 큰 활력소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1기 호호체육관 청소노동자들은 요가 수업을 통해 자기 몸의 현실을 자각하고 몸을 잘 사용하는 법을 익혔다. 달라지는 몸을 인식하고 운동의 즐거움과 이 즐거움을 동료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호호체육관은 생활체육, 여성 스포츠, 노동자의 문화 운동과 여가에서 소외되던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을 위해 노동할 힘을 얻는 노동자를 위한 문화충전소였다.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호호체육관의 의미와 가능성’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노동자 문화운동으로서 스포츠에 주목하고 노동자의 기본권이자 보편권으로서 스포츠권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또한, 호호체육관은 스포츠를 통해 대학과 학생, 시민단체, 청소 노동자가 맺은 우호적 관계의 매개물이자 결과물이라는 점을 짚었고, 스포츠가 사회운동 단체들 간의 연대를 구축하고 우호적 사회여론을 조직하는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문화연대와 함께한 참석자들은 우리가 함께하며 웃고 즐겼던 체육관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그동안 엘리트 스포츠 육성 중심의 시스템과 유명 선수들의 극복과 승리의 서사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스포츠권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여기에는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등 스포츠에서 소외되었던 이들도 포함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에게 운동은 더 행복한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더 많이 알리고, 노동자들과 함께 건강권 및 운동할 권리를 외치자고 다짐했다. 언니들의 운동도, 우리의 운동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