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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책다방]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에 맞서 자본의 사회화로 (17호)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에 맞서 자본의 사회화로

- 크리스티안 마라찌의『금융자본주의의 폭력』을 읽고  

엄진희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오늘날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금융 경제는 더 이상 실물 경제에 기생하는 것도 아니고 비생산적인 것(p.65)도 아니다. 우리는 슈퍼에서 장을 보고 신용카드를 결제에서부터 (자본주의는 이제 우리의 생명 과정 전체에 파고들어(생명자본주의) 우리의 감정, 느낌까지 파괴(p.97)한다) 자동차 산업에 이르기까지 신용 메커니즘(금융)에 따라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제 소비자는 소비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의 공동생산자(p.146)가 된다.

거의 모든 것은 자동화되거나(지하철표 판매기부터) 소비자에게 떠넘겨 지면서 기업은 그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스웨덴의 한 가구 회사는 가구를 자동차에 싣는 과정까지 고객이 알아서 하게(p.68) 했다. 알게 모르게 고객이 스스로 알아서 생산에 기여,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챙기지만 그 이익은 임금 인상이나 안정적인 고용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말 그대로 사적 이익으로 횡령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모든 일들은 무정부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시장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불안정적이고 불확실하게 움직일 뿐이다. 부동산 가격이 무한히 상승하고 무한히 성장할거라는 기대는 금융 자본주의를 작동시키지만 이러한 기대는 사실이 아니라 그저 허구이며 인간의 헛된 욕망일 뿐이다. 그 거품이 꺼지는 날 시장은 불안정에 빠지지만 국가는 당분간 그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다. 은행의 구제를 책임지고 자본과 고소득에 대규모 감세혜택(p.127)을 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근본적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국민의 혈세는 이렇게 낭비되고 이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내수 시장은 다시 불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는 다시 민간 부채로 일시적인 수요를 창출하지만 이 게임이 걸고 있는 것은 ‘미래’이기 때문에 위기를 유예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한다고 보았던 세이의 법칙은 거짓이라는 게 입증된 셈이다. 언제나 공급의 과잉이 수요의 원인(p.98)이었던 것이다.

공급의 과잉, 포드주의 모델의 위기는 결국 금융화를 가져왔는데 결국 금융화는 실물 경제에 기생하는 비생산적인 일탈이 아니라 그 초기부터 자본 축적의 형태로 발전했던 것이다. 우리 삶의 일상 속에 전 생명의 과정에 거쳐 퍼져 성장한 금융자본주의는 점점 더 많은 공통재를 사유화하면서 식민화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시종일관 자신의 종말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고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가 처녀지를 착취하기 위해 정복하자마자, 그 처녀성을 제거해버리고 결국 자기 자신의 번영 조건을 고갈시켜 버린다(p.150)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이 자본주의는 겉보기에 건재한 것 같다. 부채의 계속적 반복 생산은 공통적인 것을 함께 생산하고 있다. 공통적인 것 즉 지식, 정보, 이미지, 사회적 관계와 같은 모든 우리의 생명 과정 전체는 금융자본주의 아래 종속되어 있다. 천연자원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 새로운 인지적, 비물질적 공통재는 이론적으로 무제한적(p.152)이다. 부채 관계는 이 공통재를 착취하면서 삶의 방식을 통제하고 빈곤을 강제하고 있다. 마치 16세기 인클로저 상황이 토지를 사유화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생산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1985년부터 지금까지 시장의 탈규제화를 통한 신자유주의는 평균 2년 반마다 금융 위기를 반복해서 일으키고 있다(p.104). 방법은 하나다. 납세자들이 쌓아 올린 금융 자본을 사회화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의 코뮤니즘(p.142)이라 부를만한 것이다. 기본소득의 형태로 국민들에게 나누어주던지 교육과 보건, 사회복지와 도시 기반 시설의 유지, 청년 고용 프로그램과 가계에 대한 지원, 문화예술 프로젝트와 과학연구 등의 지원(p.148)으로 돌려야 한다. 이렇게 해서 인간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존엄을 수호해야 한다.

끊임없는 개발과 발전이 능사가 아니라 발전을 저지하고 분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생태계를 보호하고 공통재를 수호해야할 뿐 아니라 그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생태계를 모델로 하는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 생태적 공동체는 협조적이며 참여적으로 위계를 거부하고 경쟁도 부정한다. 또 전체의 일부에게 권력을 몰아주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전체의 이해관계를 우선시(p.153)한다.

생명자본주의가 파괴한 인간 생명의 존엄과 권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자본의 사유화가 아니라 자본의 사회화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만성적인 신자유주의가 초래하는 불황과 실업, 비정규직으로 인한 인간의 기본권 침해는 결국 인간 사회를 병들게 하고 파괴시킬 것이다. 자본의 사회화로 인간 사회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새롭게 구성하지 않는 한 여러 사회 문제, 범죄를 비롯, 자살, 노동 시간 초과로 인한 삶의 질의 저하 등의 사회적 문제들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