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자리
― 10월 7일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후기
글쓴이 | 상민
이태원역 1번 출구. 그곳을 나와 우측으로 돌면, 좁고 경사진 골목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한쪽 벽면에는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이 붙어 있고, 문화연대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에서는 매번 그 현장을 정비하며 포스트잇을 수거해 분류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날, 저도 자원활동가로 참여해 그 작업을 함께했습니다. 연휴를 앞두고 새로 단장한 추모 공간 위에는 오색빛 메시지가 가득했습니다. 또한 중간중간 가만히 발걸음을 멈추던 시민들을 보며 여전히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음을 새삼 되새겼습니다.

사실, 포스트잇에 쓰인 내용을 잘 읽지 못했습니다. 왠지 누군가의 일기장을 들추어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 주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령, 이미 현장이 익숙한 활동가는 편의점부터 방문했습니다. 매번 사장님께서 음료를 챙겨준다며 그전에 먼저 구매하려는 뜻이었는데, 한 수 위인 사장님은 어김없이 거기에 몇 병을 덤으로 얹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포스트잇을 떼는 손은 조심스럽습니다. 자칫 귀퉁이가 조금이라도 찢어지면, ’아‘ 하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그렇게 뗀 포스트잇은 다시 빈 공간으로 옮겨집니다. 그러고 보면, 현장에는 점성이 낮은 테이프가 일부러 비치되어 있고, 시민들의 마음이 훼손되지 않도록 애쓰는 또 다른 마음이 거기 살아있습니다. 고개만 돌려도, 아크릴판에 적힌 혐오를 지우기 위해 물티슈를 박박 문지르는 고생이 바로 보입니다. 빌보드가 설치될 때까지 그런 작업이 계속된다고 합니다.
사무실로 이동해 참사 초기의 포스트잇을 분류했습니다. 유가족 혹은 지인의 메시지, 생존자 혹은 구조자의 메시지, 번역이 필요한 메시지, 그 외 메시지 등의 기준이 있었고, 활동가들은 판단이 어려운 경우 뿐만 아니라 인상 깊은 게 보이면 서로 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걸 잘 읽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하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태원은 나에게 멋쟁이들이 찾아가는 공간으로 기억되는 공간이야. 그곳에서 무엇보다 재밌는 하루를 보냈어야 했는데, 세상은 참 무심하고 한심하고 엉망진창이지? 나에겐 멋쟁이로 기억될 친구들아, 그곳에서 구해주지 못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한편, 저는 용산에서 기록 활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참사 일주기를 앞두고 그 내용을 정리해 기사와 영상으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삼대 째 이태원에 거주하는 주민부터 게이 클럽에서 일하는 드랙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분들을 만나 이태원과 얽힌 경험과 기억을 들었습니다. 녹취록을 읽을 때마다 금세 먹먹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자꾸만 웃음이 났습니다. 이태원에 대해 가진 저마다의 애정이 몹시 따뜻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는 미리 모집한 기록단이 직접 진행했습니다. 독특하게도, 그중 대부분이 길거리 버스 정류장에 붙은 홍보 포스터를 발견해 참여를 신청했습니다. 해방촌에서, 녹사평에서, 이태원에서. 관련 활동을 해 본 적도 없는데 다들 고민에 잠긴 끝에 선뜻 도전에 나섰습니다. 나중에 그 연유를 물으니, 공통적으로 그동안 답답하고 미안했다고 합니다. 내심 참사에 대해 대화하고 싶었고, 그 해결에 기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참사 이후, 세상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토록 커다란 상실을 겪고도 애도할 줄 모르는 사회가 끔찍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민 사회의 움직임에도 마음이 동하기 어려웠습니다. 선명한 구호와 합동 분향소만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아 보였습니다. 아직 무엇을 잃어버린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왠지 다들 벌써 저만치 앞서 나가 있는 듯했습니다. 듣는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록단이 들은 이야기 중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참사 직후 당근마켓 어플 커뮤니티에 무수한 글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슬프다”, “미안하다”,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 “왜 이렇게 된 거냐” 그리고 그 아래 댓글로 다른 주민이 자신의 상담 경험을 공유했다고 합니다. 이 슬프고 아름다운 일화를 통해, 기억 담기 활동을 통해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와 그걸 듣는 자리를 헤아려 봅니다.

듣는 자리
― 10월 7일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후기
글쓴이 | 상민
이태원역 1번 출구. 그곳을 나와 우측으로 돌면, 좁고 경사진 골목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한쪽 벽면에는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이 붙어 있고, 문화연대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에서는 매번 그 현장을 정비하며 포스트잇을 수거해 분류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날, 저도 자원활동가로 참여해 그 작업을 함께했습니다. 연휴를 앞두고 새로 단장한 추모 공간 위에는 오색빛 메시지가 가득했습니다. 또한 중간중간 가만히 발걸음을 멈추던 시민들을 보며 여전히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음을 새삼 되새겼습니다.
사실, 포스트잇에 쓰인 내용을 잘 읽지 못했습니다. 왠지 누군가의 일기장을 들추어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 주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령, 이미 현장이 익숙한 활동가는 편의점부터 방문했습니다. 매번 사장님께서 음료를 챙겨준다며 그전에 먼저 구매하려는 뜻이었는데, 한 수 위인 사장님은 어김없이 거기에 몇 병을 덤으로 얹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포스트잇을 떼는 손은 조심스럽습니다. 자칫 귀퉁이가 조금이라도 찢어지면, ’아‘ 하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그렇게 뗀 포스트잇은 다시 빈 공간으로 옮겨집니다. 그러고 보면, 현장에는 점성이 낮은 테이프가 일부러 비치되어 있고, 시민들의 마음이 훼손되지 않도록 애쓰는 또 다른 마음이 거기 살아있습니다. 고개만 돌려도, 아크릴판에 적힌 혐오를 지우기 위해 물티슈를 박박 문지르는 고생이 바로 보입니다. 빌보드가 설치될 때까지 그런 작업이 계속된다고 합니다.
사무실로 이동해 참사 초기의 포스트잇을 분류했습니다. 유가족 혹은 지인의 메시지, 생존자 혹은 구조자의 메시지, 번역이 필요한 메시지, 그 외 메시지 등의 기준이 있었고, 활동가들은 판단이 어려운 경우 뿐만 아니라 인상 깊은 게 보이면 서로 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걸 잘 읽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하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태원은 나에게 멋쟁이들이 찾아가는 공간으로 기억되는 공간이야. 그곳에서 무엇보다 재밌는 하루를 보냈어야 했는데, 세상은 참 무심하고 한심하고 엉망진창이지? 나에겐 멋쟁이로 기억될 친구들아, 그곳에서 구해주지 못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한편, 저는 용산에서 기록 활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참사 일주기를 앞두고 그 내용을 정리해 기사와 영상으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삼대 째 이태원에 거주하는 주민부터 게이 클럽에서 일하는 드랙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분들을 만나 이태원과 얽힌 경험과 기억을 들었습니다. 녹취록을 읽을 때마다 금세 먹먹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자꾸만 웃음이 났습니다. 이태원에 대해 가진 저마다의 애정이 몹시 따뜻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는 미리 모집한 기록단이 직접 진행했습니다. 독특하게도, 그중 대부분이 길거리 버스 정류장에 붙은 홍보 포스터를 발견해 참여를 신청했습니다. 해방촌에서, 녹사평에서, 이태원에서. 관련 활동을 해 본 적도 없는데 다들 고민에 잠긴 끝에 선뜻 도전에 나섰습니다. 나중에 그 연유를 물으니, 공통적으로 그동안 답답하고 미안했다고 합니다. 내심 참사에 대해 대화하고 싶었고, 그 해결에 기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참사 이후, 세상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토록 커다란 상실을 겪고도 애도할 줄 모르는 사회가 끔찍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민 사회의 움직임에도 마음이 동하기 어려웠습니다. 선명한 구호와 합동 분향소만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아 보였습니다. 아직 무엇을 잃어버린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왠지 다들 벌써 저만치 앞서 나가 있는 듯했습니다. 듣는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록단이 들은 이야기 중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참사 직후 당근마켓 어플 커뮤니티에 무수한 글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슬프다”, “미안하다”,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 “왜 이렇게 된 거냐” 그리고 그 아래 댓글로 다른 주민이 자신의 상담 경험을 공유했다고 합니다. 이 슬프고 아름다운 일화를 통해, 기억 담기 활동을 통해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와 그걸 듣는 자리를 헤아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