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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미경이의 야옹야옹]밀양 송전탑,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도시로 나른다. (18호)



밀양 송전탑,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도시로 나른다.


최미경(문화연대 시민자치문화센터)

나는 부끄럽게도 효율성과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머리로는 생활쓰레기를 과다하게 배출하고, 대도시를 위해 지역이 희생하고, 거대한 기업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지금의 구조가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머리에서만 맴돌지 않고, 생활습관자체를 바꾸어내고 일상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나의 개인적인 과제이다.

이 얘길 하는 이유는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사회의 흐름들을 보면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어서이다. 대도시의 에너지공급을 위해 지역에 송전탑을 설치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송전탑 때문에 파괴되는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국가는 어떻게 해서 탄생한 것인가. 국가가 하는 일이니 마을에 피해가 있더라도 수긍해야 한다는 논리는 개인은 국가에게 권리를 양도했고 그 권리를 국가가 행사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국가가 개인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것인데, 이 국가권력이 자본과 권력자의 의도에 따라 사용되고 있다. 쌍용자동차 대한문 농성장에서, 경남 밀양에서,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천막농성장 철거현장에서 국가의 폭력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와 개인,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이 관계들에 대한 다른 감수성과 상상력이 필요해 보인다. 대도시중심, 거대기업중심, 대량생산, 대량소비사회가 파괴한 것은 관계에 대한 감수성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은 자연을 파괴한다. 인간은 이윤을 위해 다른 인간을 착취한다. 도시는 경제성장을 위해 지역을 착취한다. 이런 불평등한 관계가 가능해진 건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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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밀양주민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을 님비현상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면 묻고 싶다. 서울에 원전을 건설하고 서울에 송전탑을 짓는 것은 어떤가. 내 집앞이 안 된다면 다른 사람의 공간에도 지어서는 안 되는 것, 내가 아프다면 다른 사람도 아플 것이라는 것, 이런 공감능력, 관계에 대한 감수성이 사라져버렸다.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을 만약 대안적인 정신생태계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문화적 관계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밀양 초고압 송전탑은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나르기 위해 짓는다고 한다. 자꾸 전기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서울의 다리에 켜져 있는 빛들, 나무에 장식되어 있는 전구들의 플러그를 뽑고, 적정크기를 넘어서 도시인들이 쓰고 있는 에너지사용을 줄여보는 것은 어떨까. 24시간 밝고 환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대도시 사람들은 한 순간이라도 전기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어떤가. 서울에서-밀양주민의 송전탑 건설 반대를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1시간 전기끄기 운동을 실천해보는 것. 생태계를 위협하는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없으면 없는대로 전기사용을 줄이고 쓰지 않는 것, 내가 필요하니까 다른 삶과 생태계를 파괴해서라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없으면 쓰지 않고 줄이는 것, 이러한 것들을 실천한다면 어쩌면 현재의 도시중심의 착취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게 일하면서 전기사용을 줄이고, 자원이 허락하는 만큼만 생산하고, 자원사용을 줄인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덜 피곤한,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과 함께 정부의 공급중심 에너지 정책, 원거리 대량수송 중심의 전력정책 역시 도시와 지역과의 관계를 다시 디자인하고 수도권의 전력자립도를 올리고 에너지정의를 실현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서울에서 전기를 조금이라도 덜 쓰면 여기에 송전탑을 안 지어도 되거든요. 안 쓰는 플러그를 빼고 백화점에서도 전기를 아끼면 다 같이 좋게 살 수 있어요."

경남 밀양에서 나고 자란 초등학교 5학년 박경석(12) 군이 한 말이다.("서울서 전기 덜 썼으면 할아버지 안 돌아가셨을 텐데", 프레시안 2012. 3. 19), 이 기사를 읽으면서 ‘자립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던 어떤 이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과소비한 전기 때문에, 도시의 밤을 휘황찬란하게 장식하는 에너지 때문에 어떤 지역의 삶들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 그것이 문화적인 삶과 관계의 출발점이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