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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활동김진숙과 함께 넘은 추풍령 _ 박래군 · 인권재단사람 소장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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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과 함께 넘은 추풍령

박래군 · 인권재단사람 소장


사람들은 그가 나선 길이 외롭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김진숙씨가 걷는 <만인의 행진>에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걷고 있습니다. 누가 오라고 해서도 아니고, 가라고 해서도 아닙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그 행진에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1월 16일, 이른 아침에 차를 몰아서 김천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기온은 급강하해서 영하 9도,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 떨어져 영하 15도 이하의 강추위가 몰아친 날이었지요. 가는 중간 중간에 졸음이 몰려와 잠시 쉬기를 반복하다 보니 행진 출발 직전에야 출발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매고 마스크까지 하고 가니 서로를 몰라보다가 반갑게 인사를 한 뒤에 오전 11시에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에서 출발한 행진은 한 시간 뒤에는 추풍령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추풍령역에 이르니 ‘십시일반 음식연대’의 밥차가 와 있었습니다. 역전 마당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먹었던 황태국밥은 환상적이었지요. 코로나 방역을 위해서 옹기종기 둘러앉지는 못하고 드문드문 앉아서 먹기는 했지만, 배고팠던 때라서인지 어떤 맛집의 음식보다도 더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황간역까지의 8킬로미터 행진. 그런데 이게 무슨 '뚜벅이'입니까? 8킬로미터를 쉬지도 않고 1시간 반에 주파하는 거, 이건 스포츠 '경보'경기였습니다.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에서 출발해서 추풍령역까지, 그리고 추풍령역에서 다시 황간역까지 약 15킬로미터를 경보선수처럼 걷는 김진숙씨. 그의 빠른 발걸음에 맞추느라 진짜 힘들었습니다. 영하의 날씨, 세찬 바람에도 등에는 땀이 솟을 지경...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도 같은 마음으로 투덜거렸지요. 


뚜벅이가 아니라 경보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는 사람들 보고 싶어서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빨라진다.”고 도착지인 황간역에 도착한 뒤에 너스레를 떠는 김진숙 씨. 그는 암 환자, 재발한 암으로 11월말에 수술을 받고 몸을 추스른 뒤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기로 한 사람이었지만, 청와대 앞에서 자신의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가자 부산에서부터 청와대까지 행진에 나섰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전국에서 달려와 준 사람들을 반갑게 맞고 사진도 같이 찍지만 그는 육신의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입 밖으로 그의 병을 말하지는 않지만 그가 항암치료를 뒤로 미룬 채 절박한 심정으로 걷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김진숙 씨는 1986년 7월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되었습니다. 회사의 비인간적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의 유인물을 복사해서 나눠준 뒤 그는 대공분실에 세 차례나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감금당했습니다. 이것을 ‘무단결근’이라면서 해고한 것. 이후 몇 차례나 자신의 온몸을 던져서 회사의 구조조정을 막아내서 다른 사람들은 복직을 시키고도 정작 자신은 복직을 하지 못했습니다. 경총이나 전경련 같은 경영계가 나서서 ‘김진숙 만은 안 된다’고 뻗댔기 때문입니다. 그는 경영계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던 것이죠.

복직하지 못한 35년 동안 그는 고통을 당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달려가 자신의 일처럼 헌신적으로 싸워왔습니다. 한진중공업에서 같이 노조 활동을 했던 박창수, 그리고 김주익, 곽재규를 잃었고, 나중에는 후배인 최강서까지 앞세워야 했습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의 죽음의 방식이 같은 나라.” 울먹이면서 읽어 내려갔던 고 김주익 씨 추모사는 지금 들어도 절절합니다. 

그는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를 바꾸는 그 과정에서, 그리고 민주노동 운동이 뿌리를 내리는 그 과정에서 가족보다 더 끈끈했던 동지들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1년에는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을 버티면서 다시 한진중공업에 몰아친 구조조정을 막아냈습니다. 우리는 다섯차례의 희망버스의 그 감격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김진숙을 응원하러 갔던 그는 김주익이 죽었던 그 크레인에서 사람들 곁으로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가 성인이 되어 만 61세인 올해까지 살아낸 인생에는 이 나라의 아프디 아픈 노동운동사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순한 한 개인이 아닙니다. 한진중공업의 최초의 여성 용접공, 그리고 한진중공업의 마지막 해고자는 그대로 이 나라의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루는 같이 걷기를

그래서 그가 가는 길에는 전국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새겨 넣은 조끼들을 입고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의 노동자들이 나와서 대오를 환영해줍니다. 김진숙 씨의 그 걸음에 노예노동을 거부하는 의지를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합합니다. 그래서 체감온도를 사정없이 끌어내리는 세찬 겨울바람 속에도 행진대오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걱정입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로 청와대에서 김진숙 씨의 복직을 요구하면서 노상단식농성이 한 달을 넘겼습니다. 암 환자 김진숙 씨와 함께 걷는 <만인의 행진>도 20일을 넘겼습니다. 더 길어지면 안 되겠기에 백방으로 노력을 하지만 아직은 길이 잘 보이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김진숙 씨의 행진에 함께 한다면, 그래서 만 명의 행진이 되고, 10만의 행진이 된다면, 그의 복직도, 그가 바라는 해고 없는 세상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김진숙, 그가 명예롭게 복직하고 암 투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마음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만 행진에 참여할 때는 발바닥에 땀나게 걸을 건 각오하고 말입니다. 오늘도 영하의 날씨에 청와대를 향해 걸어 올라오는 <만인의 행진>이 10년 전의 희망버스처럼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으로 귀결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