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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후기블랙리스트 범죄, 왜 직권남용죄로 처벌할까? ― 김기춘∙조윤선 파기환송심 토론회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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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범죄, 왜 직권남용죄로 처벌할까?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 책임자 김기춘∙조윤선 파기환송심에 대한 토론회 -


2020년 1월 30일 대법원은 김기춘·조윤선 등과 피고인 7명에 대해,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배재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실행에 대해 책임을 물어 직권남용죄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한 행위’, ‘공모사업 진행 중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한 행위’에 대해 다시 판단하라는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1) 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년 뒤인 2021년 1월 15일, 파기환송심 공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재판과정과 법적용어들로 인해 이번 재판이 가지는 의미와 재판과정에 대한 주요 쟁점을 검토하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재판에서 직권남용죄가 지니는 법리적 의미와 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우선 이번 재판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는데,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지원배재와 관련한 대부분의 행위들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고, ‘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한 행위’, ‘공모사업 진행 중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한 행위’의 경우 박근혜 정부 시기 이전부터 해오던 일이었다는 일부 직원들의 진술 때문에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이 행위에 대한 파기환송이 결정된 것입니다.


직권남용죄와 블랙리스트 처벌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배재가 이미 유죄로 인정되었는데, 명단을 송부하거나 심의진행을 수시로 보고한 행위가 이전 정부부터 있었는지 여부가 왜 중요한가입니다. 이는 ‘직권남용죄’가 가지는 특성 때문입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적용되는 처벌조항입니다. 즉,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였는가와 함께 ‘의무없는 일’을 하였는가의 여부가 죄의 유무 판결에 중요합니다. 블랙리스트가 본격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한 2014년 이전부터 명단을 송부하고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해왔다면 직권남용죄가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권남용죄는 그 죄를 증명하거나 적용하기 어려운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왜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을 굳이 직권남용죄로 처벌하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현행법상 블랙리스트 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헌법에서도 보장하는 예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까지 받은 블랙리스트 사건이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 있지만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을 직권남용죄를 통해 처벌할 수밖에 없고, 이미 명백한 증거와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일부 행위에 대한 파기환송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직권남용죄를 통해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다행입니다. 하지만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 또한 적지 않습니다. 우선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고위직 공무원들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블랙리스트는 국가 시스템을 총동원한 정책범죄이며 조직적인 범죄입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부터 말단공무원까지 블랙리스트를 실행하는데 가담했고, 크고 작은 역할들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직권남용죄를 적용하게 되면 블랙리스트를 지시받고 수행한 하위직 공무원들은 피해자로 위치 지워지게 됩니다.

또한 직권남용죄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정도의 양형이 충분한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헌법의 정신을 유린하고, 국가가 국민들에게 행한 국가폭력이자 정책범죄였습니다. 실제로 수천명의 예술인들이 명단에 올랐고, 이로 인해 수많은 예술인들이 고통받았고, 지금까지도 고통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직권남용죄를 통한 양형기준은 지나치게 낮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술인권리보장법

결국, 표현의 자유 침해 범죄에 대한 처벌조항과 함께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조사하였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도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법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법이 ‘예술인권리보장법’입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표현의 자유 침해 행위들을 범죄행위로 명시하고 있고, 이를 통해 피해를 받을 예술인에 대한 구제절차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 및 징계 조항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발의 이후 여러차례 논의과정에서 수정되었고, 형사처벌과 같은 규정 등이 빠지게 되면서 반쪽짜리 법안으로 축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재판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정된 이후에 재개정을 통해서 형사처벌과 같은 조항들을 복원시켜는 과정도 꼭 필요합니다.

블랙리스트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많은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인한 상처와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은 여전히 미진하며, 제2의 블랙리스트가 일어날 경우 처벌할 법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리스트는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며 이번 재판과 함께 이후에 진행된 블랙리스트 민사소송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1) 원심판결을 파기한 경우 사건을 다시 심판하도록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내는 것 


토론회 자료집 : https://culturalaction.org/39/?idx=6029266&bmode=view

토론회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channel/UCzoK_BRPIPsrCh713ho3w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