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식


기고2024~2025 ‘탄핵위키’를 통해 그려보는 문화예술의 내일

2025-05-19
조회수 1083

6c309a0b8818f.png


2024~2025 ‘탄핵위키’를 통해 그려보는 문화예술의 내일

 

정원옥(문화연대 집행위원)

 

 

2016~2017년 박근혜를 퇴진시켰던 촛불광장 이후 8년 만에 전국적 규모의 광장이 열렸다. 2024~2025년 윤석열 퇴진광장은 초기부터 시민들의 기발하고 창의적인 문화적 실천이 광장을 압도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천정환에 따르면, “집회‧시위는 응축된 한 시대의 문화(언어, 미디어, 음악, 의례, 시각문화, 패션 등)가 폭발하고 또 전파‧진화하는 장이다.”천정환, 「계승, 접속, 비약: 2024 촛불/응원봉 시위, 누가 어떻게 싸우고 있나」, 『계엄, 저항, 그리고 응원봉의 문화정치 토론회』, 2025.1.6.22쪽. 윤석열 퇴진광장 역시 문화적 실천이 폭발하고 전파‧진화한 장이었다.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노동자, 농민, 이주자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주체에 의한 새로운 문화적 실천이 폭발하면서 그 이전의 집회‧시위에서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연대의 풍경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나아가 광장에서의 다양한 실천을 수집‧기록하려는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문화연대도 지난 1월부터 이러한 활동에 착수하였는데, 광장의 문화적 실천을 수집‧기록하려는 문화연대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연합연속포럼을 개최한 것이었다. 문화연대는 성균관대학교 BK21 한국어문학 교육연구단을 비롯하여 마포구 일대 인문학 관련 학문공동체들과 공동 주최로 <‘내란 이후’, 저항과 연대의 문화정치>라는 제목의 포럼을 두 차례에 걸쳐 개최했다. 포럼에서는 응원봉과 깃발, 휀걸과 말벌, 시민 발언과 키세스 전사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정치의 양상에서부터 극우 대중운동의 부상,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 모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졌다. 1차 포럼에는 680여 명이 온라인 신청을 하고, 100여 명이 포럼 현장을 찾았을 정도로 사회적 관심과 열기가 뜨거웠다.


두 번째는 공동연구팀을 조직하여 광장의 문화적 실천을 수집‧기록‧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12‧3 내란 이후의 문화정치’라는 주제로 지난 1월부터 공동작업을 수행해왔다. 관련 주제의 논문을 모으는 한편, 시민 발언을 수집‧녹취‧분석하여 사회적 기억으로 재구성하였다. 광장을 꾸리는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광장 이후의 과제를 전망하였는가 하면, 새롭고 다양한 광장의 문화적 실천을 수집‧기록했다. 이 모든 결과는 6월 중 단행본으로 발간될 예정인데, 오늘 이 지면에서는 공동연구팀이 선정한 광장의 새로운 문화적 실천 1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른바 2024~2025 ‘탄핵위키’로서,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문화적 실천을 되짚어보고, 문화예술의 과제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1. 선결제 릴레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집회 장소 인근 카페와 식당 등 여러 매장에서 메뉴를 선결제하여 현장에 있는 시민들을 응원하는 간접적인 집회 참여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선결제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생겼을 정도로 선결제 릴레이는 2024년 12월 한 달 동안 크게 확산하였다.
  2. 2024 첫 집회 참가자 가이드: 집회가 낯선, 처음 참여하는 시민들을 위한 <2024 첫 집회 참가자 가이드>가 SNS에 등장하였고 이 안내문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집회 참여 시 필요한 준비물과 적당한 옷차림, 추운 날씨에 핫팩을 붙이는 팁부터 위기 상황 발생 시 대응 지침까지 집회 참가자들이 사전에 확인하면 유용한 팁들이 담겨있다.
    92bf889efcdb2.png
  3. 응원봉: 응원봉은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물질적인 상징 중 하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는 점은 응원봉에 연결감과 소속감을 부여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된다.
    d9fd50255d603.png
  4. 깃발들: 응원봉과 함께 깃발은 자기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이자,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이라는 유대감을 공유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광장에 모인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깃발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바람에 나부끼는 광경은 그 자체로 감동적인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fb590a41b41dd.png
  5.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만들어 배포했다. “민주적 집회는 집회 참여자가 서로를 평등하게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라며, 집회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과 행동을 제안했다.
    4b6f54c1fd7ed.png
  6. 나눔 문화: 집회 현장에는 집회 참가자들을 독려하고 지원하기 위한 수많은 푸드트럭이 등장했다. ‘화장실 위치정보 공유’와 같은 유용한 정보들이 SNS를 중심으로 공유되고 확산했으며, 여자 화장실에는 누구든 가져갈 수 있도록 생수, 초코바, 여성용품, 핫팩 등이 비치되기도 했다. “윤석열 탄핵 촛불에 참가한 영유아와 보호자를 위한 키즈버스” 운행도 나눔 문화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7. 시민 발언: 집회에서 소수가 발언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민이 발언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도입하였다. 발언 시간은 3분 내외이며, 시민들은 대개 자기소개로 발언을 시작해 집회에 참여한 이유, 요구하고 싶은 주장, 자신의 경험과 생각 등을 이야기하고, 구호와 제창으로 마무리된다. 12‧3 내란 이후 집회에서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는 성 소수자를 가시화하고 연대를 끌어내는 효과를 확산하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e5ea3d303d3b7.png
  8. 다시 만난 세계: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에서 즐겨 불렸던 <다시 만난 세계>는 2016년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 다시 등장했다. 12‧3 내란 이후 광장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포함한 몇몇 케이팝 노래는 ‘민중가요화’ 되었고,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다.
  9. 은박담요: ‘노동자 시민 윤석열 체포 대회’ 사흘째(1월 5일),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새벽부터 내린 눈 속에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대로의 시민들은 보온용 ‘은박 담요(space blanket)’까지 동원해 가며 밤을 새웠다. 그 모습이 흡사 은박지로 포장된 초콜릿 ‘키세스’의 모습을 빼 박아서 사람들은 이에 ‘키세스단’, ‘키세스 시위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키세스단은 민주주의의 겨울을 이기는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복사열’과 의지를 상징한다.
    21cd57f67f154.png
  10. 난방버스‧난방성당: 남태령, 한남동 시위에 등장한 이래, 난방버스는 이제 겨울철 집회의 필수품이 되었다. 집회 후원자들은 후원금과 핫팩, 간식 등 각종 현물에 성이 차지 않았는지 버스까지 후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편, ‘난방성당’으로 불리는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는 남자 화장실을 ‘성중립 화장실’로 명명했다. 화장실을 안내하고자 밤길에 응원봉을 든 사제(수사)와 그 뒤를 따라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화장실 가는 행위마저 성스럽게 만들어주었다.
    1f6b0dd4b0495.png
  11. 말벌 동지: 말벌 동지는 하청노동자와 해고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 말벌 아저씨처럼 순식간에 뛰어가 연대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말벌 동지는 전국장애인철페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 동덕여자대학교 공학 전환 반대 투쟁,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복직투쟁, 거통고지회 조선소 하청노동자 투쟁, 구로구 환경지회 파업 출범식, 구미 옵티칼 고용승계 고공농성 등 다양한 투쟁사업장에 깃발을 들고 함께한다.
    0d0c8a9596aa7.png
  12. 디자인행동: 2024년 12월 4일부터 2025년 4월까지 디자인을 행동 도구로 시각적 스펙터클을 보여준 사례로는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13개 단체 참여)가 있다. “이게 바로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는 끝났다” 등의 구호가 담긴 피켓을 만들고 홈페이지를 통해 피켓 이미지를 오픈소스로 제공했다. 또 다른 사례로 ‘일상의 실천’이 기획한 ‘시대정신’ 프로젝트가 있다.
    3c56177ab1c08.png
  13. 아카이브: 12‧3 내란 이후의 광장은 다양한 주체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기록과정보·문화연구모임이 만든 ‘12.03 계엄사태와 민주주의 위기’, ②남태령 기록보관소, ③ 남태령 트위터 아카이브 프로젝트, ④ 시국의 여자들, ⑤ ‘윤석열 물어가는 범청년행동’이 분석한 「언급되지 않는 청년 100인의 목소리」, ⑥ 『극우 리포트: 성소수자 혐오부터 내란 옹호까지』, ⑦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CGSI)-성명 및 자보 아카이빙 ‘2024년 12월의 목소리들’, ⑧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시민발언 분석팀’의 시민발언 아카이브 등이 있다.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문화/과학』 편집위원회의 공동연구도 12‧3 내란 이후의 광장을 기록하려는 아카이브 활동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fdc0e38db7e4e.png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돌린 불법적 비상계엄과 내란 획책에 맞서는 시민들의 저항은 평등과 민주, 안전과 돌봄,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연대의 정치, 문화적 실천으로 표출되었다. 2024~2025 윤석열 퇴진광장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문화적 실천은 그 어느 집회‧시위 문화보다 평화롭고 끈질겼으며, 성숙하고 따뜻했다. 윤석열의 파면 선고와 함께 광장은 닫혔지만, 문화예술의 역할이 더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한다. 광장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들, 그리고 광장 이후 ‘만들어갈 세계’를 기록하고 재현하는 일이 문화예술의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