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식


연대활동김용균 추모 2주기 전시《꽃이지네 눈물같이》

20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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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추모2주기 전시

꽃이지네 눈물같이


일시   2020. 12. 8. 화. ~ 12. 토. 11:00 ~ 18:00   

장소  인권중심 사람, 2층 전시실



청년비정규직 김용균이라는 꽃이 피었다가 산업재해로 시들어버렸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획전시를 진행한다. 
김용균으로 대표되는 여러 김용균들의 사고와 죽음을 함께 기록하고, 
이를 통해 청년-비정규직-노동자들의 안전할 권리가 필요함을 말한다.


글 _ 정혜윤 CBS PD  |  사진 _ 정택용 이희훈  |  기획 _ 신유아 문화연대 

주최 _ 김용균2주기추모위원회



늦가을, 은행이 노랗게 물들 때 초등학생 김용균은 어린 손으로 은행알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걸 들고 엄마에게 달려갔다. 용균이는 엄마가 은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은행알을 한톨도 버리지 않았다. 길거리에 은행냄새가 진동할 때 엄마는 그 일을 떠올린다. 추억은 고통이다.    

1994년에 태어난 김용균은 돌잔치 때 색동한복을 입고 연필을 집었다. 사람들은 연필을 잡으면 공부를 잘할거라고 축복해줬다. 갓난아기에서 소년으로 자라는 동안 용균이는 환절기마다 감기를 달고 살았다. 부모는 용균이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는 건강한 아이로, 부모 곁에 오래오래 있는 아이로 자라기를 더 바라게 되었다. 부모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용균이는 고등학교 내내 키가 자랐고 다 자라자 176센터미터, 75킬로그램이 되었다. 


“우리 용균이는 애어른이예요”
엄마가 늘 하던 소리였다. 용균이는 퇴근 후 돌아온 엄마의 피로를 풀어주려고 아양을 잘 떨었다. 용균이의 ‘아양떨기!’ 그것이야말로 엄마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용균이는 애교가 많았고 엄마 품에 잘 파고들었고 잘 웃었다. 그 아이의 미소는 수줍었다. 둘 사이엔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다. 행복은 그뿐이 아니었다. “엄마 배고파!” 문을 열고 들어온 아들에게 “용균아, 밥 먹자” 라고 부르던 시간도 행복했다. 용균이는 갈비를 좋아했다. 많이 해주지는 못했다. 용균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곤했다.

“엄마, 엄마가 내 롤모델이예요.” 


용균이는 엄마처럼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삶을 사는 것이 멋져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그 말을 자부심 속에 기쁘게 받아들였다. 엄마는 아들이 큰 슬픔을 겪을 일이 없기를, 세상이 주는 기쁨을 누리길, 한해한해 잘 나이 먹어가기를 바랬다. 아들과 함께 있을 때 엄마는 세상은 힘들어도 견딜만한 곳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정말 세상은 힘들어도 견딜만한 곳인가? 엄마는 훗날 자신은 세상을 모르고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는 채로 아들을 끼고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스무다섯해동안 그랬다. 

  

용균이는 태안 화력발전소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하고 살이 많이 빠졌다. 아빠가 같이 목욕탕에 가보자고 했다. 용균이는 거절했다. 엄마는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안되겠니?” 라고 물었다. 용균이는 조금만 더 참아보겠다고 했다. ‘애어른’ 용균이는 집안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엄마가 고생하는 것을 알고 어서 빨리 부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날이 용균이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고 훗날 엄마는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 붙잡지 못한 아쉬움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까? 하긴 그날만 아쉽겠는가? 만약 4년제 대학을 보냈더라면. 만약 조금 더 부자였더라면... 만약. 만약... 모든 날이 아쉽다. 


사고가 나자 아침 여섯시에 태안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아드님이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대체 뭘 확인해 달라는거예요?” 아들이 어떤 상태인지 몇 번을 물어도 경찰은 그냥 확인해달라고만 했다. 차가 없는 부모는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타고 여섯시간 넘게 걸려 태안의료원에 도착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엄마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애는 기절해서 깨어나지 않는 것뿐이야!’ 의료원에 도착하자 부모는 중환자실로 뛰어갔다. 그러나 용균이 같은 아이는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남은 곳은 한군데 뿐이었다. 영안실이었다. 경찰이 서랍장을 열었다. 얼굴이 먼저 나왔다. 얼굴이 까맸다. 석탄가루 범벅이었다. 그 순간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부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땅을 치고 통곡했다. 그 통곡소리를 무엇과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 ‘용균이는 알까? 우리가 여기 와있다는 것을. 혼자 죽은 내 아들. 나의 모든 것.’     


영안실 바깥에는 하청회사의 이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균이 참 착실하고 일 잘하는데 고집이 쎄서 하지 말란 일 하고 가지 말란데 가서...” 그러나 엄마는 아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직장 동료들에게 몰래 묻기 시작했다. 

“우리 용균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줘.”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달라니 참 이상한 질문이다. 자식이 부모보다 오래 사는게 순리 아닌가. 엄마에게는 이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엄마는 가끔 용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를. 지상에 꿈처럼 짧게 머물다 간 청년의 미소는 어린아이 같은데가 있다. 그 청년은 화력발전소의 밤에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적곤 했었다. 

“김용균에게. 용균아. 힘내!” 

김용균의 앳된 얼굴은 우리를 향해 수줍게 웃는다. 마치. 생을, 살아있기를, 일하다가 죽지 않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쑥스러운 일 이라는 듯. 마치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을 말한다는 듯. 



그 앳된 얼굴은 아직 세상을 믿고 있었다.
사랑과 생을 말하면 세상은 그것을 들어줄 것이라고.
그에게도 힘껏 살아볼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 미소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의 실패한 꿈에 뜨겁게 상처받고 그의 실패한 꿈을 우리의 꿈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