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식


활동후기사랑을 오래 남기는 방식 ―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후기

2023-11-07
조회수 1361

문화연대 소모임 야호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후기

사랑을 오래 남기는 방식


글쓴이 | 한재훈



지난 10월 22일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에 다녀왔어요. 처음 도착했을 때는 기센벽에 적힌 문장들을 모두 가릴 정도로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있었습니다. 그동안 소식으로만 전해 들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하면서 한참 벽을 지켜봤습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자꾸 흘렀습니다. 지나가던 분들도 걸음을 멈추고 길에 한참 머물다가 포스트잇을 또 한 장 붙이고 가셨습니다. 애도하는 마음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길을 지켜오신 활동가분들에게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손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먼저 벽에 붙어있는 포스트잇들을 정리했어요. 서로 겹쳐서 서로의 글씨를 가리고 있는 포스트잇이나, 오래되고 내용이 지워진 포스트잇들을 먼저 떼어내서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이태원역에 가는 동안 그동안의 기억 담기 활동 후기들을 읽었는데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후기에서 읽었던 문장들에 무척 공감하게 됐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떼어내다가 귀퉁이 부분이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탄식이 나온다는 상민님의 글이었는데요.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점성이 약한 테이프를 떼어내도 비가 와서 젖어있던 포스트잇이나 다른 종류의 테이프가 여러 겹 붙어있던 포스트잇들은 테이프가 잘 떨어지지 않아 억지로 떼어내면 훼손될 것 같아서 커터칼을 이용해 더러워진 테이프만 도려내면서, 본모습 그대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더욱 조심히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때의 조마조마한 마음이 계속 기억에 남아 있네요. 다시 활동에 참여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 처음 하느라 잘 모르는 부분들이 있어서 질문을 종종 드렸는데, 활동가분들이 섬세하게 잘 알려주셔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수거 작업이 끝나고 저희는 문화연대 사무실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어요. 먼저 오늘 떼어낸 포스트잇을 분류하고, 참사 초기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을 분류했습니다. 분류작업 전에 김밥과 음료수를 챙겨주셔서 먼저 먹고 활동을 이어갔는데, 마침 허기질 때 음식을 나눠주시는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다음에 꼭 저도 나눌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포스트잇들을 분류하면서 가장 많이 읽었던 내용이 미안하다는 말과 너희의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이었습니다. 너무 전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포스트잇에 다 담겨 있어서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음이 먹먹해서 다 읽기 힘들었던 메시지들도 꼭 꼭 읽으며 분류하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 마음들이 기억될 수 있다니 너무 값지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참사가 있던 날, 저는 군 복무 중에 외박을 나와 있었습니다. 외박을 나와 동기들과 즐겁게 놀고 있는데 부대에서 여러 통의 전화가 걸려 왔었어요. 제 또래의 분들이 저와 동기들처럼 즐겁게 놀려고 이태원에 갔다가 참사로 희생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복귀하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에게 급하게 연락해서 안부를 물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저도 어쩌면 그날 이태원에 갈 수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직 펼쳐보지 못 한 젊은 사람들의 꿈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에 자주 눈물이 나지만, 지금도 슬픔의 한가운데 있는 분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무언가 할 수 있는 기분입니다. 활동 시간이 다 돼서 아직 분류되지 않은 메시지들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조금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발걸음이 무거웠어요. 그동안 활동을 이어가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하며, 다음 활동에도 언제든 시간을 들여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