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바깥으로 꺼낼 수 있는 공간
―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후기
글쓴이 | 기린
<07.29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수거된 포스트잇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왔다. 포스트잇을 몇 가지 분류에 따라 분류하고 아카이빙하는 작업이었다. 슬픔과 애도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장이 다양하면서 다양하지 않아서 슬펐다. '보고 싶어.' '사랑해' '미안합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명복을 빕니다' 'RIP'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 어딘가에 가닿기 위해서 테이프로 포스트잇을 벽에 꾹 붙인 마음들이 느껴졌다. 아직도 그 포스트잇들이 내 마음 안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 같다. |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에 처음 참여했을 때 작성했던 일기입니다.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 은성의 소개로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칠월의 마지막 주, 문화 연대 사무실에서 추모 포스트잇을 처음 분류했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분들과 떠나간 분들을 추모하는 메시지는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무척 많았습니다. 메시지를 분류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반복 노동에 가까웠습니다. 포스트잇에 여러 겹으로 붙여진 테이프는 잘 떨어지지 않았고, 바깥에 오래 노출되어 있던 포스트잇의 테이프에는 이물질과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포스트잇에서 테이프를 잘 떼는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이었습니다. 일손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 저는 메시지를 성실히 읽으며 추모의 마음을 떠올리는 일보다, 오히려 포스트잇에서 테이프를 빠르게 떼는 행위에 몰두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활동을 하며 힘들다는 마음보다 먼저 이태원 참사 이후 갖게 된 오랜 무력감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혼자 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몸을 움직이며, 내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행위에 동참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제게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했던 하루는 이태원 참사를 사람들과 함께 오롯이 기억할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칠월에 처음 활동에 참여한 이후로 한 달에 한 번은 활동에 꼭 참여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활동에 처음 다녀온 후로 이태원 참사를 꾸준히 오랫동안 기억할 힘이 제게 자라났습니다.
11월 11일에 진행되었던 포스트잇 수거 활동에 어제 다녀왔습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의 '기억은 힘이 셉니다' 벽이 곧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 활동에 꼭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주기가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탓에 수많은 조화와 간식이 벽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활동가분들께서 커다란 종량제 봉투 안에 조화와 간식을 담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추모 물품 수거 및 정리 작업을 꾸준히 해 오신 분들 덕분에 새로운 추모 물품과 메시지들이 계속 부착될 수 있었겠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날씨가 무척 추웠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골목 안으로 계속 들어왔습니다. 손이 얼어서 포스트잇을 떼는 일이 어려웠지만, 많은 분과 함께 하니 금방 포스트잇을 수거할 수 있었습니다. 뜨거운 커피 캔, 핫팩, 작은 초콜릿을 자원활동가분들에게 받았습니다. 핫팩은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따뜻했습니다.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하기 전, 저는 억제된 애도와 슬픔 탓에 마치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과 안전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서 많은 이들이 개인 내부에서 억압된 슬픔을 고스란히 감각하고 있지 않을까 하며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슬픔을 바깥으로 꺼낼 수 있는 공간의 존재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 조그만 포스트잇에 눌러쓴 말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렇게 참사가 일어난 그 자리에서 떠나간 분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제게도 절실히 필요했던 공간이었습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벽이 철거된 이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이 자리를 잊지 않고 함께 애도하며 오랫동안 10월 29일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주말에 보았던 포스트잇에 적힌 "더는 리본을 만들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노란 리본, 보라 리본, 그 이후 새로운 색의 리본이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제 가방에 붙여진 보라빛 리본을 만져봅니다.
슬픔을 바깥으로 꺼낼 수 있는 공간
―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후기
글쓴이 | 기린
<07.29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수거된 포스트잇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왔다. 포스트잇을 몇 가지 분류에 따라 분류하고 아카이빙하는 작업이었다. 슬픔과 애도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장이 다양하면서 다양하지 않아서 슬펐다. '보고 싶어.' '사랑해' '미안합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명복을 빕니다' 'RIP'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 어딘가에 가닿기 위해서 테이프로 포스트잇을 벽에 꾹 붙인 마음들이 느껴졌다. 아직도 그 포스트잇들이 내 마음 안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 같다.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에 처음 참여했을 때 작성했던 일기입니다.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 은성의 소개로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칠월의 마지막 주, 문화 연대 사무실에서 추모 포스트잇을 처음 분류했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분들과 떠나간 분들을 추모하는 메시지는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무척 많았습니다. 메시지를 분류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반복 노동에 가까웠습니다. 포스트잇에 여러 겹으로 붙여진 테이프는 잘 떨어지지 않았고, 바깥에 오래 노출되어 있던 포스트잇의 테이프에는 이물질과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포스트잇에서 테이프를 잘 떼는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이었습니다. 일손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 저는 메시지를 성실히 읽으며 추모의 마음을 떠올리는 일보다, 오히려 포스트잇에서 테이프를 빠르게 떼는 행위에 몰두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활동을 하며 힘들다는 마음보다 먼저 이태원 참사 이후 갖게 된 오랜 무력감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혼자 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몸을 움직이며, 내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행위에 동참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제게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했던 하루는 이태원 참사를 사람들과 함께 오롯이 기억할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칠월에 처음 활동에 참여한 이후로 한 달에 한 번은 활동에 꼭 참여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활동에 처음 다녀온 후로 이태원 참사를 꾸준히 오랫동안 기억할 힘이 제게 자라났습니다.
11월 11일에 진행되었던 포스트잇 수거 활동에 어제 다녀왔습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의 '기억은 힘이 셉니다' 벽이 곧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 활동에 꼭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주기가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탓에 수많은 조화와 간식이 벽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활동가분들께서 커다란 종량제 봉투 안에 조화와 간식을 담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추모 물품 수거 및 정리 작업을 꾸준히 해 오신 분들 덕분에 새로운 추모 물품과 메시지들이 계속 부착될 수 있었겠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날씨가 무척 추웠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골목 안으로 계속 들어왔습니다. 손이 얼어서 포스트잇을 떼는 일이 어려웠지만, 많은 분과 함께 하니 금방 포스트잇을 수거할 수 있었습니다. 뜨거운 커피 캔, 핫팩, 작은 초콜릿을 자원활동가분들에게 받았습니다. 핫팩은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따뜻했습니다.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하기 전, 저는 억제된 애도와 슬픔 탓에 마치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과 안전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서 많은 이들이 개인 내부에서 억압된 슬픔을 고스란히 감각하고 있지 않을까 하며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슬픔을 바깥으로 꺼낼 수 있는 공간의 존재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 조그만 포스트잇에 눌러쓴 말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렇게 참사가 일어난 그 자리에서 떠나간 분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제게도 절실히 필요했던 공간이었습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벽이 철거된 이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이 자리를 잊지 않고 함께 애도하며 오랫동안 10월 29일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주말에 보았던 포스트잇에 적힌 "더는 리본을 만들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노란 리본, 보라 리본, 그 이후 새로운 색의 리본이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제 가방에 붙여진 보라빛 리본을 만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