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식


지난 연재[책다방]질병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 아서 프랭크, 『몸의 증언』(25호)



질병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
 - 아서 프랭크, 『몸의 증언』(최은경 옮김, 갈무리, 2013) 서평


오김숙이 (<햇빛부엌> 운영자, 서울대 여성학과 박사과정)


아주 어릴 적에 나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보고 죽음이 가까워졌는데도 어찌 저리 즐겁게 사는지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의연하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하였다. 그 의문은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졌지만 그 후로도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비슷한 질문을 떠올렸고 언제 죽느냐와 무관하게 그냥 현재의 삶을 열심히 사는 모습에 진한 여운을 느끼곤 했다. 우리는 생로병사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공통된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심각한 질병과 죽음에 직면해서야 그 의미를 무겁게 마주하게 된다. 특정한 순간에 나에게 찾아오는 심각한 질병은 삶이 지속될 것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믿음을 중단시키는 삶의 위협으로, 고통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심하게 아픈 사람들의 상처는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에도 있다’는 서문을 읽을 즈음 이 책을 계속 읽을까 말까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사실 이것은 책을 펼치고 서문 첫 문장에서 만난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라는 말에서부터 시작된 질문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아픈 사람들과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을 때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마찬가지로 그 때 읽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나는 질병과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다.

이 책이 분석하는 아픈 몸과 그로 인한 중단,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들은 내가 최근에 가장 격렬하게 겪어온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몇 년 전에 질병으로 수술을 하고 회복되어 가다가 작년 말부터 다시 ‘아픈 몸’으로 살고 있다. 지금은 몸의 중단을 ‘받아들이고’ 일을 쉬며 치유와 관리를 우선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받아들임은 결코 완결형이 아니다. 처음에 비하면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 알게 되고 그 과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나는 내 질병과 그 심각성을 (어쩌면 의도적으로?) 잊고 지내다가 지인들과 안부를 나누면서 다시 흔들리고 상처 입기도 한다. 그런 내게 이 책의 부제처럼, 나 스스로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로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수많은 질병 이야기들 중 하나로 저만큼 멀리에 위치시키는 것은 내가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높이뛰기와 같았다.

저자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복원, 혼돈, 탐구의 목소리를 구별하고 그 각각의 이야기가 갖는 맥락과 의미를 짚어낸다. 질병에 의한 중단은 적어도 예전처럼 살 수 없음을, "제가 이전에 길을 찾기 위해 사용했던 목적지와 지도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어요"(38쪽)라고 인정하며 그것을 폐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제 더 이상 내게 위안이 되지 못하므로.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몸이 되어야 하는"(89쪽) 상황을 벗어나 건강을 되찾고 이전의 삶을 복원하고자 하는 기원을 담은 이야기들이 가장 많고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러한 복원을 기원할 수 없다면? 상실된 예측가능성(88쪽)과 삶의 우연성에 휩쓸린 존재(204쪽)로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서 복원이라는 기원을 찾을 수 없을 때 아픈 몸들은 또 다른 이야기들을 필요로 한다.

혼돈의 이야기를 말하는 몸은 통제 없이 삶의 근본적인 우연성에 휩쓸린 존재로 스스로 규정한다. 아픈 몸은 그 너머로 나올 수 있다고 안심하고 싶어하지만 나올 방법은 미지수이다. 그러한 위안을 받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욕망을 거둔다. 아픈 몸은 나의 움직임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어 행위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또 탐구의 이야기는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질병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용하고 존재에 대한 통찰에 다가가며 소통하는 몸을 말한다. 이 탐구의 이야기는 변화와 성장의 근원으로서 위기에 열려있고 우연성을 높게 평가함으로써 아픈 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만들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질병 이야기는 공적 영역에서 아직까지 낯선 주제이다. 수기 형태의 체험담이나 질병극복 체험에 근거한 건강지침서 정도가 고작이다. 그저 질병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불운으로 간주되거나, 몸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외양이 훼손되어 장애와 같이 낙인이 된다. 또한 개인의 모든 것이 경제적 능력이자 경쟁력으로 환산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아픈 몸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무능으로 읽혀진다. 우리사회에서도 만성질환과 퇴행성질환이 점점 증가하고 질병에 대한 검사가 잦아지면서 아픈 사람들 중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환자가 아닌 상태로 많은 시간을 살아간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회복사회가 발달하고 이러한 회복사회의 성원들에게 윤리적 질문은 의료 갈등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 문제는 아픈 동안 어떻게 좋은 삶을 사는가이다. 저자는 질병 이야기를 읽는 것은 고통을 통한 인격의 변화를 목격하는 것으로 고통을 겪는 자가 증언하고 그 증언을 듣는 고통의 서사가 지닌 윤리와 타자로의 열림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 책의 독자이며 아픈 몸들이 하는 이야기의 청자인 우리가 어떤 위안 또는 실천적 윤리에 이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또 탐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들의 통찰처럼, ‘우연성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유일하게 실제적인 확실성’임을, 언젠가 ‘우리는 모두 모두 죽을 것이고 그것은 괜찮은 일’임을 알게 될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몸의 증언』은 아픈 몸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 자신이 겪은 심각한 질병 경험은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구하는 자양분이 되어 세심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보여준다. 또 내가 느꼈던 것들처럼, 이 책은 아픈 몸으로 회복사회에 살아가며 스스로 몸을 돌볼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건넬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계기로 질병과 그 치료로 종종 빼앗겨버리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와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들이 등장하기를, 인간의 공통된 운명으로서 아픔을 공유하는 자들의 열림과 윤리가 두터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