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는 고 오요안나 사망의 구조적 원인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일시 : 2025년 9월 15일(월) 오전 10시
○장소 : MBC 유가족 단식농성장(스퀘어M-커뮤니케이션 조형물 앞)
○사회 : 권순택(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 발언
- 여는 말 :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 언론연대 공동대표)
- 연대발언1 :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 연대발언2 : 한석현(YMCA 시민중계실장)
- 연대발언3 : 장혜영(전 정의당 국회의원)
- 연대발언4 : 김재상(문화연대 사무처장)
- 유가족발언 : 어머니 장연미(단식 7일차)
○ 기자회견문 낭독
- 오병일(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진재연(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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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MBC는 오요안나 사망의 구조적 원인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오늘(9월 15일)은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 씨의 1주기입니다. 유가족은 단식으로 이 날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이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제 누군가는 답해야 합니다.
MBC는 고인의 사망 이후, 줄곧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후, MBC의 첫 반응은 “괴롭힘 신고가 없었다”는 선긋기였습니다. 하지만 고인이 남긴 모바일 메신저에는 복수의 MBC 관계자에게 괴롭힘을 상담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MBC는 그제서야 진상조사위를 꾸렸으나, 그 결과는 유가족에게조차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MBC가 책임 있게 대응해줄 거라는 유가족의 믿음은 그때 무너졌습니다. MBC의 소극적인 태도가 사태를 키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는 유가족을 더욱 절망케했습니다. ‘괴롭힘은 있었다. 하지만 고인은 노동자가 아니므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MBC에 면죄부를 준 것입니다.
MBC는 정말 아무 책임이 없는 것입니까. 단지 기상캐스터들 사이 갈등에서 벌어진 일입니까. 한국 사회는 특정 직종에서 벌어지는 ‘태움 문화’를 단순한 사인 간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방송사가 기상캐스터라는 직업과 그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고용구조를 빼놓고는 이 죽음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국회 현안질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제가 MBC 기자였을 때 김동환 캐스터라는 분이 함께 일했고 정규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비인간적 고용구조로 바뀌었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기상캐스터는 언제부터, 왜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는가. 그리고 그 대상은 누구인가. 여기서 구조적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상캐스터는 1990년대 기상 전문 영역과 날씨 예보로 업무가 나뉘면서, 날씨 예보는 여성의 몫이 됐습니다. 그리고 날씨 예보라는 직무는 비정규직, 무늬만 프리랜서로 전환됩니다. 방송사는 이 업무를 ‘전문영역’으로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노동을 수행하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습니다. ‘여성은 젊고 어려야 한다’는 저급한 인식 속에 여성 노동자는 소모품처럼 취급됐습니다. 저임금은 당연한 듯 따라왔습니다. 실제로 기상캐스터의 월급은 약 150만 원 수준이며, 고인 또한 1년간 1,6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고인을 비롯한 기상캐스터들은 구조적으로 본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수입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기상캐스터들이 자유롭게 타 방송 출연이나 개인 영리활동을 해왔으며, 그 수입은 전액 본인에게 귀속된다”며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MBC는 어쩌면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MBC뿐 아니라 방송사 전체적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높을 뿐 아니라, 기상캐스터 직무 역시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방송사들이 비정규직 고용형태와 처우, 인권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습니다. 그때 MBC가 취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방송작가들에게 ‘방송지원직’이라는 새로운, 차별적인 고용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최근 블라인드 MBC 직원 게시판에서 방송작가들을 향해 쏟아진 반인격적·성적 괴롭힘 댓글 사태는 이런 차별 구조 속에서 비롯된 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론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추적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며,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은 스스로 높은 윤리 기준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MBC 기자들이 사회 부조리를 지적할 때마다 듣는 말이 있을 겁니다. “너희는 얼마나 깨끗한데?” 방송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MBC가 고 오요안나 씨 사망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고 오요안나 씨의 사망은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MBC가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사이, 구조적 문제가 곪아 최악의 형태로 터진 결과입니다. MBC는 이제라도 고인의 사망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해야 합니다. 유가족의 요구에 진지하게 응답할 때만이,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9월 15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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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사무처장 김재상 발언문
오늘 이 자리는 추모의 의미를 담는 동시에,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체가 답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지금 정부와 국회는 내란 청산, 검찰개혁 같은 정치 개혁이나 기술 중심의 성장 전략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 현장과 일상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폭력, 비리, 부정부패, 불합리와 비상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국가 비전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함께”라는 범위 안에 과연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포함돼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1차적 책임이 있는 MBC는 더 이상 침묵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와 국회, 행정기관 또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합니다.
지금 이 문제는 결코 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방송·미디어 산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회적 참사입니다. 방송·미디어계의 비정상적인 노동구조 문제는 오늘내일 일이 아닙니다. 작년 7월 국회에서 열린 방송 노동자 고용불안 토론회에서도 방송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 4명 중 1명이 서면계약 없이, 구두계약만으로 일하거나 아예 계약 절차조차 거치지 않는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불안정은 더욱 심각한 수준입니다. 지난 11일 국회 문체위 소속 의원실과 민간 연구단체는 문체부 산하 방송 3사 프리랜서의 72.5%가 여성이며, 평균 계약기간이 8개월 미만이고 임금도 남성보다 낮아 성차별적 구조가 심각하다는 분석을 발표했습니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법적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윤석열 정부 들어 비정규직 처우 개선 제도마저 폐지돼, 제도적 보완과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방송계에서 비정규직, 그 중에서도 여성 비정규직의 노동은 값싼 인력으로, 대체 가능한 존재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여성과 청년들의 삶을 갈아 넣어 방송을 만드는 현실은 방송·미디어 산업 전반에 만연한 비정상적 노동구조의 전형이며 이는 반드시 개혁과 쇄신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K-콘텐츠의 세계적 성공과 K-컬처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는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착취당하고 있는 문화산업 노동자들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허울뿐인 문화강국을 외치며, 방송·미디어·문화산업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과 착취, 차별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방송·미디어·문화산업 전반의 구조적 차별과 불안정 노동 문제를 직시하고 실질적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합니다.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우리의 문제입니다. MBC와 정부, 국회는 이제라도 책임 있는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즉시 취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이 문제를 직시하고, 바꾸기 위해 나설 때만이 제2, 제3의 안타까운 비극를 막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