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공동논평체육계 폭력·성폭력, 피해자를 가해자로 내모는 구조를 개혁하라 - 선언이 아닌, 실질적인 제도 개혁이 답이다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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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논평]

체육계 폭력·성폭력, 

피해자를 가해자로 내모는 구조를 개혁하라

- 선언이 아닌, 실질적인 제도 개혁이 답이다


체육계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약 10년 전 성폭력 문제가 부메랑이 되어, 지난 16일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고교 시절 국가대표 출신 코치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당시 가해자가 받은 약식 처분과 경징계, 그리고 체육계와 사법기관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외면당한 채 쌓인 분노와 좌절로 인해 결국 흉기를 휘두르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 제도의 실패와 방치가 피해자를 또 다른 가해자로 내모는 참혹한 현실을 낳은 셈이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체육계의 오랜 병폐, 즉 폭력과 성폭력이 반복되고도 근본적 제도적 해결이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체육계는 ‘스포츠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차례 폭력·성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았지만,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장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내부 고발자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피해자는 2차 가해와 낙인을 견뎌야 한다. 반면 가해자는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며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다. 이 구조 속에서 피해자가 오히려 범죄자로 내몰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체육계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달 31일까지 3년 8개월간 전국에서 발생한 운동부 지도자 비위 건수는 총 216건이며, 이 중 약 70%가 경징계에 그치고 다시 학교 현장으로 복귀했다.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고도 ‘경고’나 ‘견책’ 같은 솜방망이 처분을 받은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온 것이다.

보도된 실제 사례도 심각하다. 경기의 한 고등학교 지도자는 훈련 성과를 이유로 학생들의 몸을 밟는 폭력을 가했지만 ‘경고’만 받고 복귀했다. 경북의 한 중학교 지도자는 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폭행했지만 ‘견책’으로 끝났다. 교육청 징계 기준은 모호하고 권고 수준에 머물러 실질적 강제력이 없다. 피해자 의사나 학부모 입김에 따라 징계 수위가 좌우되기도 하며, 학생 선수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린다.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이 체육계 폭력의 민낯을 드러낸 지 5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욱이 문체부가 지난 8월 말 ‘체육계 폭력·비리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문체부는 개정 「국민체육진흥법」을 근거로 스포츠윤리센터의 권한을 강화하고 재징계 요구권을 도입했다고 강조했지만, 현장의 구조적 문제와 제도의 미비 앞에서 선언은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다. 말로는 무관용을 외치면서 현실에서는 피해자가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이처럼 체육계와 정부의 구조적 방치와 무능이 피해자 보호는커녕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그 결과 피해자는 고립되고, 분노와 좌절 끝에 또 다른 범죄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체육계가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이라는 기본 원칙조차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더 이상 미봉책이나 보여주기식 제도로는 버틸 수 없다. 정부와 체육계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 독립적인 스포츠인권 기구의 역할과 권한 강화 및 확실한 제재 장치 도입 필요 – 체육단체와 분리된 기구에서 피해자 보호, 조사, 지원을 전담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의 시스템이 효과가 없음을 인정하고, 재발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제재 장치 도입이 필수이다.

○ 피해자 보호·회복 프로그램 강화 – 심리치료, 법률지원, 생계보장까지 포함하는 전방위적 보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 가해자 처벌과 지도자 자격 박탈제도 실효성 강화 – 솜방망이 처벌을 중단하고, 재발을 막는 확실한 제재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 2차 가해 차단을 위한 강력한 조치 – 피해자에 대한 낙인과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 관련 체육계와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동 책임 강화 – 지도자 징계 기준을 구체화하고, 의무적용 및 감독 책임을 명문화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의 실패와 구조적 방치가 낳은 비극적이고 참혹한 결과로 직시해야 한다.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오히려 가해자로 내모는 체육계의 현실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정부와 체육계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근본적인 제도 개혁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 조치에 즉각 나서야 한다.


9월 18일

문화연대, 스포츠인권연구소, 체육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