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논평국가대표 배구선수들 학폭 논란에 부쳐 ― 체육계 구조개혁을 위한 과제를 실천하자!

2021-02-17
조회수 1931

[문화연대 주간논평]


비슷비슷하게 반복되었던, 실패했던 대책은 ‘패-쓰’하자!

그리고 체육계 근본 구조개혁을 위한 과제를 실천하자!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소위 ‘강경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먼저 흥국생명 배구단. 학폭 가해사실을 인정한 두 선수에게 ‘무기한’ 출장정지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시즌 잔여 경기는 7경기. “차라리 출장정지 기간을 정하라”는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배구협회도 국가대표 자격의 ‘무기한’ 제외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언론은 “도쿄올림픽 메달 먹구름”과 같은 기사를 생산했고, 그렇게 국가대표 스타 배구선수들의 학폭 논란은 도쿄올림픽으로까지 번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월드스타 김연경 선수와 같은 팀 소속이라는 상황, 추가 학폭 사실의 폭로, 어머니까지 포함된 의혹 제기, 남자배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학폭 폭로로 이어지며 이제 논란은 배구계를 넘어 체육계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어제(2/16)는 한국배구연맹이 비상대책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성범죄 포함) 학교폭력 연루자의 신인선수 드래프트 참여 원천봉쇄’, ‘피해자 신고센터 설치’, ‘징계규정 정비’, ‘학교폭력 근절 및 예방교육’, ‘학교폭력 근절캠페인 전개’ 등이 내용이다. 새로운 내용은 ‘드래프트 참여 원천봉쇄’ 정도. 그 마저도 드래프트 전에 가해사실이 확인되어야 가능한 조치다. 201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로 프로야구 넥센 구단에 지명된 안우진 선수를 기억하는가? 지명 이후 학폭 사실이 알려졌으나 “아마추어 때의 사건으로 프로에서 징계는 어렵다”는 논란 속에 결국 50경기 구단 자체 출전정지에 그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다시 또 불거진 이번 학폭 논란을 보니 마음이 헛헛하다. 기사와 대책이 넘쳐나지만 무언가 빠져 있다. 흥국생명 배구단, 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의 대책을 살펴보자. 대책의 칼끝은 가해자 ‘선수’를 도려내는데 맞춰져 있다. 맞다. “때린 놈이 나쁜 놈이지!” 싶다가도 뭔가 한참이나 부족함을 느낀다. 왜일까? 


대한민국에서 학교운동부 내의 폭력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10%? 20%? 천육백만 명이나 봤다는 영화 <극한직업>의 대사 “대한민국에서 연장 쓰는 운동부가 겁나 슬픈 게, 맷집이 늘어서 나와요”가 영화감독과 작가의 상상력으로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런온>에도 운동부 내 폭력 문제가 묘사되기도 했다. 게다가 1년에 몇 번씩 체육계의 폭력-성폭력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곤 했으니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체육인 중에서 학폭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어느 정도일까? 단언컨대, ‘없다’. 모든 체육인이 ‘이 문제’를 알고 있다. 경험했고, 목격했고, 괴로워하고, 그것 때문에 떠나기도 했고, 또 누구는 아직도 ‘이 문제’를 겪고 있다.


우리는 기억한다. 매번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비슷한 대책이 반복되었다. 가해자 징계, 전수조사, 신고센터 설치, 교육 강화 등. 그리고 또 사건이 일어나고 또 대동소이한 대책이 발표되었다. “가해자를 엄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반복에 반복. 또 반복된 약속과 대책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 ‘대책들’에는 첫째 피해자가 없고, 둘째 폭력을 재생산하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수많은 ‘대책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많은 피해자들이 오히려 운동 현장을 떠나야만 했고, ‘메달, 성적, 입시, 진학’만을 강요하는 학교운동부의 구조적 문제는 반복되었다. 그리고 셋째, 수많은 가해자들이 몇 차례의 재판과 징계위 재심 등을 거치며 어느새 현장에서 같은 권력을 행사하곤 했다. 그곳에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과 반성은 없었다. 가해자 처벌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안전한 운동 환경 조성에서도, 그리고 지긋지긋한 폭력의 대물림 구조 개혁에서도 모두 실패한 그 동안의 역사가 있을 뿐이다.


매년 수천 억 원의 국가 예산을 쓰는 대한체육회는 과연 그 동안 무엇을 했나? 쇼트트랙 코치 조재범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을 때 고개를 숙이며 성폭력과 폭력 근절을 외쳤던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작년 故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을 부른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선수단 내의 폭력과 괴롭힘 문제가 드러났을 때에도 고개를 숙이며 또 같은 약속을 반복했을 뿐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책임을 회피했던 체육계의 수장은 체육인의 투표로 다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선거캠페인을 하면서 스포츠 인권을 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헌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목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다.


반복된 실패를 얘기할 때 문화체육관광부도 빠질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황희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체육계 부조리를 근절할 특단의 노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특단의 대책’이라는 말에 믿음이 가기 이전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조재범 성폭력 사건 당시 “드러난 일뿐 아니라 개연성 있는 범위까지 철저히 조사하고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라는 지시, 故 최숙현 선수의 극단적인 선택이 알려졌을 때 최윤희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게 지시한 ‘스포츠 인권 강화’까지. 대통령의 반복된 말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쯤이면 그냥 대통령 지시를 무시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하나, 모든 체육인들이 문제를 알고 있다. 둘,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도 문제를 알고 있다. 셋, 체육계 수장도 여러 번 다짐했다. 넷,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미 여러 차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도 바뀌지 않는다. 왜일까? 다시 그 동안 반복되었던 수많은 ‘대책들’을 돌이켜보자. ‘가해자 찍어내기’에 급급했던 대책들은 정작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은 끌어내지 못했고, 가해자가 슬그머니 복귀하는 것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몇 번의 기회를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가리켰지만,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 혹은 ‘가리킨 손가락의 저의가 뭐냐’는 식의 반발 속에 변화의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다시 우리는 국가대표 스타 배구선수들의 학폭 논란 앞에 섰다. 이제는 정말 걸러내야 할 것은 걸러내야 한다. 비슷비슷하게 반복되었던, 그리고 실패했던 대책은 ‘패-쓰’하자. 그리고 실천하자.


우선 ‘메달, 성적, 입시, 진학’의 압박 속에 비틀어진 대한민국 스포츠의 뿌리부터 바꾸는 개혁 조치를 실천하자. 심지어 그런 구조개혁의 방향과 내용은 조재범 성폭력사건 이후 논의를 통해, 7개의 권고문으로 발표까지 되지 않았는가! 두 번째로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피해사실이 알려진 이후 오히려 피해자들이 운동 현장을 떠나거나, 심지어 해당 운동부가 없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옭죄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세 번째, 가해자에 대한 엄벌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처벌, 사과, 반성을 위한 기획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몸과 마음이 치유, 회복할 수 있도록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과 사과, 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네 번째, 이번에는 제발 다들 제대로 역할을 하자.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 있게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은 책임지고 대책, 정책을 만들고 실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문화연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끝까지 눈을 부릅뜨고 이 과정을 지켜보고, 또 참여하자. 감시와 참여만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2월 17일(수)

문화연대 대안체육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