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논평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 인수위 문화정책에 대해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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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 인수위 문화정책에 대해

김상철 / 문화연대 집행위원


문화예술정책만 놓고 보자면 우리는 분명 역설적인 경험을 해왔다. 문화적 주권의 상징이었던 스크린쿼터 제도가 사라진 것은 한미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의 일이었고, 현재 예술인복지제도의 근간이 된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진 것은 4대강 사업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 때의 일이다. 문화적 국가 비전으로서 ‘문화융성’을 강조했던 정부와 예술에 대한 검열로서 블랙리스트를 시행한 정부는 동일한 정부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정부의 속성이 가진 특징 이전에, 한국이라는 국가가 문화국가를 표방하면서 내세우는 가치의 대립 혹은 갈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통상 문화국가의 원리는 헌법 제9조를 근거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전통문화의 발전 계승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에 의해 대상화되고 진흥되어야 할 무엇이다. 반면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 제21조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근거가 된다. 앞의 것은 현재 한국문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법률적 근거가 되는 ‘문화예술진흥법’이라는 진흥체계를 정당화한다. 어떻게 보면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정부는 모두 진흥법 체계 내에서의 문화라는 관점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리고 후자의 표현의 자유는 어느 정부에서건 소극적이었고 특히 블랙리스트 후속조치에 소홀했던 문재인 정부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내세우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다소 억지스럽게 단순화하자면, 한국의 문화예술정책은 계승과 창달로서 진흥정책과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것 사이에서 좌표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하나의 축을 추가하자면 예술인의 권리 보장이라는 맥락에서 ‘예술인 정책’을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런 좌표 하에서 보자면 윤석열 당선인의 문화정책은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정책 내용을 보인다. 선거 당시의 공약을 보여주는 ‘윤석열위키’ 중 문화예술 공약을 보면(https://www.wikiyoon.com/a022ff11-6bbc-43c2-b38a-7f6912ea7b81), 총 7가지의 공약에 지역문화, 국민의 문화향유 보장, 예술인 복지 및 참여, 컨텐츠 지원, 전통문화유산 보존 및 장애예술인 지원 등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에서 확대 추진했던 문화도시 지정 및 육성 사업을 확대한다는 내용과 여기에 문화특구/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더했다. 바우처 사업인 문화누리카드의 지원금을 단계별로 인상하겠다는 것과 동시 국민과 문화예술인들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개방형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예술인고용보험 가입자 대상 확대와 공정보상 제도의 강화, 각종 위원회에 청년 예술가 참여 보장이 제시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지만 끝내 시도조차 되지 못한 문예진흥기금에 대한 내용도 다시 포함되었고 K-콘텐츠에 대한 지원도 지속된다. 문화재 경관관리를 위해 문화재영향평가를 새롭게 도입하고 지정문화재 위주의 관리 정책에서 벗어나 미래 문화유산을 발굴 관리하는 포괄적 보존체계를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공공기관이 예술작품을 구매할 때 장애예술인의 작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장려해 작품 유통기회를 확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공약이 말하지 않은 것들


따라서 하겠다는 내용을 가지고는 평가가 어렵다. 왜냐하면 내세우는 내용이 충분히 균형잡혀 있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떤 것을 내세웠냐보다는 실제로 그것을 했는가가 중요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 반면교사로서 문재인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을 경험했다. 하지만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면 오히려 언급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무엇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구체적인 법률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리고 주요한 문화예술기구의 자율성에 대한 내용이 없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에는 이런 저런 세부적인 정책의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화의 경로를 거쳐서 달성될 것인지에 대한 상이 없다. 그러다 보니 공약에서 제시하는 많은 것들이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시책사업 방식으로 추진될 공산이 크다. 알다시피 그렇게 추진되는 사업에는 편향된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가 많다. 짐작컨데 윤석열 정부는 예의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제도적 합리성과 투명성을 우회할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문화예술정책의 전달체계로서 기능하고 있는 문화예술기구에 대한 내용인데, 공약집에는 현행 문화예술 진흥체계를 문화복지 기능과 예술지원 기능으로 이원화하여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명시적으로 기관 통폐합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기능을 통합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기구의 통합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전혀 방향성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부처 관료들에 의해 주먹구구식 기관 통합이나 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블랙리스트의 후속조치로 그나마 부분적으로 달성한 문화예술기구들은 다시 문화체육관광부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변화한 예술창작 환경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다. 이 부분은 정말 놀라운 부분인데 코로나19 이후 기존의 관행적인 문화시설 공급정책과 예술지원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윤석열 당선인 측이 예술인들의 창작환경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덧붙이자면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제도적 성과 중 하나인 예술인 권리보장법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 역시 중요한 맥락을 가진다. 


73년 체제의 장기지속


유신체제의 출범과 함께 등장한 문화예술진흥법은 국가 권력에 의해 육성되는 예술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문화부처 없는 미국과 문화산업과 예술지원이 분리된 영국, 예술인의 특수한 신분에 주목하는 프랑스와 다른 정책 조건을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자유와 관련한 내용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겨져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하나의 정부가 새롭게 출범하는 상황에서 요구할 만한 것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이번 대선과정에서 생산된 문화예술 공약이라는 것은 비슷한 내용의 변주였을 뿐 대동소이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새 정부로 향하는 의문은 질문을 던지는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여전히 헌법 제9조의 문화국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민주적이고 개방적이고 독립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이상은 다시 구성될 필요가 있다. 출발점은 ‘문화예술진흥법이 없는 문화예술정책’이 될 것이다. 


2022년 4월 27일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