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기자회견꿀잠과 마을 사람들의 삶터는 지켜져야 합니다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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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과 마을 사람들의 삶터는 지켜져야 합니다


사단법인 꿀잠은 사회활동가, 비정규노동자들의 쉼터를 마련하여 휴식 및 재충전, 치유, 교육과 문화 활동, 소통과 연대를 통해 시민운동을 활성화하고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 더 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6년 6월 11일 설립되었습니다.


설립목적에 따라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 종교계, 문화예술계, 법조계를 비롯한 전문가, 활동가, 노동자 등 3,000명이 넘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2017년 1월 어렵게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비록 지하1층, 지상 4층, 옥탑방의 낡은 건물이었지만, 연인원 1,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직접 망치와 톱을 들고 새집처럼 꿀잠 쉼터를 다시 지었습니다. 시민운동가, 종교인, 예술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집을 단장했습니다. 아이들의 돼지저금통으로 지은 집이며, 한평생 노동자의 친구로 살아온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두 어른’이 남은 힘을 쥐어짜 일으켜 세운 집입니다. 꿀잠 외벽에는 이 집을 짓기 위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은 소중한 친구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꿀잠이 지어진 과정 자체가 한국사회의 뜻깊은 역사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매우 중대한 사회적 현안으로 사회 양극화의 핵심 주범이기도 합니다. 꿀잠은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형태로 고통받는 비정규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다치지 않고 맘 놓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부당한 해고에 맞서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집입니다.


꿀잠 쉼터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최초로 만들어진 비정규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공간이며, 어느 한 개인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서 공익성과 공공성이 매우 큰 공간입니다. 꿀잠은 힘겹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몸이 아프면 쉬고, 밥도 먹고, 빨래도 하는 등 언제든 쉬고 재충전하면서, 더불어 전시, 공연, 교육 등 다양한 활동도 하는 복합적 공간입니다.


2017년 8월 19일 쉼터 문을 열고 4년 동안 연인원 1만 5천명의 노동자가 이 집에서 씻고, 잠자고, 밥먹고, 빨래하고, 회의하고, 법률상담, 치과 및 한방진료, 몸살림 체조, 공연, 강좌, 영상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꿀잠 쉼터는 휴식의 공간이자 배움터며, 아픈 곳을 치료하는 병원이었습니다. 목숨 건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을 벌이던 파인텍 노동자들에게 날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 올려준 곳이 꿀잠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한겨울 상경 투쟁을 해야만 했던 태안화력발전소 청년비정규직노동자 김용균님과 한국마사회 특수고용노동자 문중원님의 유족이 쓰러질 듯한 몸을 기댄 곳도 꿀잠이었고, 현재 동국제강에서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이동우 비정규노동자의 유가족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동국제강의 사과를 요구하며 상경해 꿀잠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멀리 경주에서, 구미에서 억울하게 해고되어 서울로 상경해 싸울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보금자리입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 문화예술인, 종교인 등 서로 연결되는 허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역사적이고 소중한 공간인 꿀잠 쉼터는 지켜져야 합니다.


사단법인 ‘꿀잠’은 신길 제2구역 주택재개발 조합이 설립된 이후 꿀잠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들어 현재의 건물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꿀잠의 노력과 시민사회와 종교계 등의 관심과 협력이 더해져 그동안 영등포구청과 서울시의 중재로 재개발조합측과 ‘존치에 준하는 이전’ 계획에 의견 접근을 이루었고 이후 세부적 내용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재개발조합에서 제시한 대체부지와 꿀잠의 중단 없는 사업을 위한 신축비용과 이주 및 임시시설 등에 대하여는 서울시 코디네이터가 제출한 조정안을 기초로 협의해 나가는 것을 합의했습니다.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꿀잠대책위와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은 5월18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서울시의 중재로 이루어진 합의가 끝까지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서울시가 역할을 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또한 마을에 살고 싶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방식의 개발이 아니라 함께 살 수 있도록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은 자구 노력과 사회적 연대의 힘으로 이 지역에 남아서 해오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지역 주민들을 생각해봅니다. 누구는 남겠지만, 지금 살고 있는 주민의 대부분은 세입자로 이 지역을 떠나야 합니다. 누가 보기에는 남루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삶의 기반이 되어준 든든하고 정든 곳을 원하지 않지만 떠나야 합니다.


재개발사업은 토지 소유주 75% 이상의 동의 받으면 인가가 납니다. 그러니까 최대 25%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행되는 겁니다. 그리고 4분의 1라는 결코 적지 않은 주민의 반대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재개발의 공익성이라는 명분입니다. 함께 살자고 모인 것이 사회고, 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 재개발사업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재개발사업의 공익성에서 제외해도 좋은 지역 주민의 삶은 없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됩니다. 기왕에 살던 모든 지역 주민의 삶은 재개발사업에서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힘없는 순서대로 존중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재개발지역에서 세입자는 아무런 권리도 보장받지도 주장하지도 못하는 가장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자기의 정당한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기 힘든 상황에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 꿀잠도 이번 재개발사업을 계기로 도시 재개발사업을 뿌리부터 들여다보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고민도 커졌습니다. 재개발사업은 원래 그렇게 해오고 있다지만,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론은 지역 주민의 삶터는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왕에 살고 있던 삶터가 더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든다는 재개발로 아예 없어져 버리는 것은 재개발사업의 목표 실종이고 주민에게는 너무나 부당하고 가혹한 일입니다. 주거권은 생존권이고 기본권입니다. 너무나 분명한 진실입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신길 제2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으로 지역 주민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면밀히 검토하여 마을 사람의 삶터도 존중받을 수 있는 재개발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2022년 5월 16일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꿀잠대책위·사단법인 ‘꿀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