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성명한국문화관광연구원 <직장 내 성희롱 및 2차 피해 사건>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을 촉구한다.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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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관광연구원 <직장 내 성희롱 및 2차 피해 사건>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을 촉구한다.



사건의 경과

최근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하, 문광연)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보도되었다. 문광연에서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했던 ㄷ씨와 ㄹ씨가 정규직 연구원 ㄱ씨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며 지난 7월 1일 강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며, 상급기관인 문체부는 기획조정실 미래문화전략팀, 양성평등정책담당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전문상담원으로 조사반을 구성해 진상조사를 벌였다.

고소장에 따르면, 피해자 ㄹ씨는 2017년 8월 ‘직장 내 성희롱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본인의 피해사실을 처음 알렸다.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후속조치가 없는 가운데, 9월 8일과 22일 ㄷ씨와 ㄹ씨는 ㄱ씨로부터 추가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 9월 25일 피해자 ㄷ씨는 부서 책임자 ㄴ씨를 찾아가 본인과 피해자 ㄹ씨의 피해사실을 고발했고, ㄴ씨는 ㄹ씨를 불러 진위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 이후 직장 내 성희롱 조치에 관한 문광연의 공적 절차는 정당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알리오의 기관 공시자료에 따르면, ㄷ씨와 ㄹ씨가 성희롱을 겪고 있던 시기인 2017년 9월 6일, 문광연은 또 다른 ‘직장 내 성희롱 행위’에 대해 ‘파면’이라는 강도 높은 징계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ㄷ씨의 피해 고충에 관한 제보에 대해서는 문광연의 「성희롱·성매매 예방지침」(2009년 제정, 2016년 개정)에 따른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다. 

이 지침에 따르면, 연구원장은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 천명’의 책무를 지며, 성희롱 발생 시 필요한 조치를 적절하고 신속하게 이행하여야 한다(제4조). 또한 성희롱 관련 고충에 대한 상담·처리를 위한 성희롱 고충전담창구를 두고, 인사 또는 복무 담당자를 포함한 2인 이상의 고충상담원을 지정해 운영하도록 정하고 있다(제5조). 성희롱 고충의 신청은 피해자 또는 그 대리인이 할 수 있으며(제7조), 원장(위임권자 포함)은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는 자 등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되고, 직무상 성희롱 고충 사안을 알게 된 자는 피해자의 신원이나 피해내용 등에 관한 비밀유지 의무를 갖는다(제9조). “원장은 성희롱의 재발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부서전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징계사유에 해당된다고 인정되는 성희롱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행위자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징계 등 제재절차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성희롱 사건을 은폐하거나 피해자에게 추가 피해가 발생한 경우 관련자를 엄중 징계”해야 한다(제14조). 

지침에서 정한 상담 이후의 의무조치 사항들은 이행되지 않았다. 부서 책임자 ㄴ씨는 피해내용을 상담한 후 피해자 보호 및 비밀유지의 의무를 위반하고 가해자 ㄱ씨에게 당시 피해자 ㄷ씨와 ㄹ씨의 신원과 상담내용을 전달하였고, 이 내용을 전달받자마자 가해자 ㄱ씨는 ㄷ씨와 ㄹ씨를 따로 불러 상담내용과 관련해 사적으로 면담했다. 부서전환 등을 통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격리도 없었다. 무관용의 원칙에 따른 가해자 징계 등의 제재절차 의무도 실행되지 않았다.

그 한 달 후 피해자 ㄹ씨는 근로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퇴사했고, 피해자이자 ㄹ씨의 피해를 알린 대리인이었던 ㄷ씨는 여전히 같은 부서에서 가해자 ㄱ씨와 매일 대면하며 올해 초까지 근무했다. ㄷ씨는 업무배제, 따돌림 등 추가 피해를 겪었으나, 이 추가 피해와 관련된 자들에 대한 엄중 징계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 ㄷ씨는 성희롱 관련 고소장 접수 외에도,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계약해지를 당했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접수하고 심문회의를 앞두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직장 갑질 및 괴롭힘’으로 진정을 넣었다. 그리고 직장 내 성희롱과 2차 피해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문화연대를 찾아온 것은 7월 초였다.



실효성 없는 공공부문 성희롱 대책, 이대로 좋은가

2017년 11월 21일,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적절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는 조직 내부 시스템과 문화 정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는 2차 피해 등으로 오히려 피해자가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점검 등을 실시하여 공공부문부터 선도적으로 성희롱 방지와 인식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7년 11월 28일, 여성가족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인사혁신처가 합동으로 ‘공공부문 성희롱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이것은 “공공부문이 선도해 성희롱 없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대책이었다. 또한 “조직의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성희롱 피해를 방관하거나 신고사실을 은폐하는 일이 없도록 관리감독 시스템을 개선하고, 피해자와 신고자(조력자) 등의 2차 피해를 막는 데 중점을 뒀”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문광연 사건은 이 범정부 대책 역시 실효성 있게 이행되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 성희롱 발생 시 주무부처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재발방지대책(사건처리결과 포함)을 여가부 및 주무부처에 동시 제출하도록 의무화했으나 지켜졌는가?
● 직장 내 성희롱 피해신고 활성화를 위한 기관 내 사이버 신고센터 설치, 예방 및 대응 매뉴얼 상시 게시 의무화는 지켜졌는가?
● 상담, 조사 시 외부 전문가 활용이 이루어졌는가?
● 성희롱 피해자와 가해자의 즉시 분리 조치, 소문 유포자에 대한 제재 등 2차 피해 방지가 이루어졌는가?
● 성희롱 행위자에 대한 엄중조치로서 징계조치 등의 상향 적용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가?


2017년 7월 4일, 문광연은 「복무규정」을 개정해 직장 내 성희롱 금지(제33조),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제34조)을 의무화했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조치로는 아래와 같이 공정한 처리절차를 통한 해결 노력,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부서전환, 징계 등의 조치 의무화, 피해 직원에 대한 고용상의 불이익 금지 등을 정했다.

제36조(직장 내 성희롱 발생시 조치)
① 원장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직원으로부터 고충의 신고를 받은 때에는 공정한 처리절차를 마련하여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직장 내 성희롱을 한 자에 대해서는 부서의 전환, 징계, 기타 이에 준하는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② 원장은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그 피해 직원에게 고용상의 불이익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2019년 7월 24일, 문광연은 「인사규정」을 개정해 징계사유에 성 범죄를 포함시켰고(제44조), 같은 해 12월 27일에는 성 범죄의 경우는 징계의 감경 대상에서도 제외하는 조항을 신설했다(제45조의2). 또한 「성 관련 위법행위자 징계규칙」 제5조(징계기준)에 따라 성희롱에 대한 징계수준을 그 정도에 따라 견책에서 파면까지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광연의 성희롱 관련 어떤 내부규정도 작동하지 않은 채, 피해자들은 직장을 떠나고 가해자는 이전과 다름없이 기관 내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임을 묻는다.

직장 내 성희롱은 가해자 개인의 우발적 범죄가 아니다. 일자리의 위계구조가 작동한 권력형 성폭력이며, 조직 내 성희롱을 예방하고 해결하려는 조직문화의 부재, 사문화되다시피 한 성희롱 관련 내부규정, 정부가 스스로 발표한 성희롱 대책에 대한 실행 의지와 책임 박약, 그리고 성희롱 취약계층(단기계약 일자리의 젊은 여성)을 상수로 간주하고 그에 의존해 운영되는 공공기관 인력구조 등이 결합한 결과다.

이 사건에서도 가해자는 피해자들에게 고용 상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광연은 오래 전부터 ‘위촉연구원’라고 일컫는 불안정한 단기 계약직 연구원 일자리를 양산해왔다. 개별 연구/사업 프로젝트별 인건비로 채용되는 이 위촉연구원들의 고용여부나 고용환경은 각 연구/사업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정규직 연구원에 의해 좌우되었다. 성희롱 피해가 발생한 2017년 당시 피해자들은 위촉연구원에 대한 1~2개월 쪼개기 계약을 감수하고 있었다. 이미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 등을 통해서 밝혀진 것처럼, 프로젝트 책임자인 정규직 연구원과 프로젝트별 인건비로 채용되는 단기계약 위촉연구원이라는 명확한 고용상의 차별적 지위는 직장 내 성희롱이 근절되지 못하는 강력한 조건이며, 동시에 성희롱 피해사실이 은폐, 방조될 수밖에 없는 토양이다.

성희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공적 시스템에서 핵심은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의 의지다. 이것에 따라 시스템은 실효성을 입증하기도,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의지가 없는 이 시스템은 2차 피해의 경로가 되고, 집단에게는 묵인의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가해자는 성희롱 피해신고·상담이 있었던 당일 피해자들을 옥상으로 불러내 만나서, 사과와 변명, 항의를 섞어 성희롱 사건의 무마를 시도했다. 결국 피해자 ㄹ씨는 한 달 후 그만두었고, 일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피해자 ㄷ씨는 그 날 이후 직장 내에서 ‘투명인간’이 되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노동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다. 게다가 문광연은 성평등 문화정책의 조사, 연구, 계획 수립 등을 담당해온 공공기관 중 하나다. 그러한 기관 내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가 발생하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 대신 은폐와 방조가 벌어진 점에 대해 문광연은 철저히 반성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물론, 더 이상의 2차 피해 발생을 차단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문광연의 주무부처인 문체부 또한 ‘공공부문 성희롱 방지 대책’에서 명시한 산하기관 관리감독 기능의 소홀에 책임을 지고 적극적인 조치를 마련, 이행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또한 문체부는 7월 15~16일에 문광연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희롱, 성폭력 사건 처리에 관한 제도 및 운영실태 점검’ 결과를 공개하고, 실질적인 후속조치를 마련해 책임 있게 이행해야 한다. 문체부는 공공기관 내 성희롱 취약계층의 불안정 고용을 해결하기 위한 산하기관 단기계약직 일자리 및 성희롱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위법한 성희롱 대처에 대한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고, 피해자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 무관용 원칙에 따른 가해자 징계, 재발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후속대책을 공개적으로 이행하라.

● 문화체육관광부는 주무부처로서 책임을 지고 산하기관의 성희롱 사건에 대한 적극적 감사와 그 결과의 공개, 문제 기관에 대한 엄정한 사후조치를 조속히 이행하라. 또한 성희롱 취약계층의 불안정 고용을 해결을 위한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




우리는 피해자와 굳게 연대할 것이다.

피해자들 앞에 힘겨운 싸움이 예고되어 있다. 많은 미투운동 사례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가해자와 가해자가 속한 집단은 거세게 저항할 것이다. 오랜 기간 직장 내 위력과 불평등한 사회적 압력을 경험했던 피해자들은 지금 이 사실을 누구보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의 뚜렷한 전형성을 보여준다. 2017년 당시 많은 주변인이 가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긴 시간 동조했다. 그래서 가해자는 지금까지 생존했다. 피해자는 평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곁에서 힘이 되어주거나 일에 있어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이 줄어갔다. 주변으로부터 작은 일에도 날을 세우는 삐딱한 사람으로 가둬지고 크고 작은 불이익이 합리화됐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생존하지 못했다. 피해자 ㄷ씨는 계약해지를 당하고 직장 밖에서 싸움을 결심한 뒤에도 깊은 절망을 지속적으로 경험했다. 수차례 SNS에 글을 쓰고 주변인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 바닥 좁으니 참는 게 현명하다’, ‘좀 더 사실관계가 분명해지면 돕겠다’, ‘바뀌지 않을거야’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개인의 분투가 이어지면서 관전자는 늘어났지만, 선뜻 나서는 조력자는 없었다. 피해자들의 지금 싸움이 힘겨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우리는 피해자 옆에 서서 굳게 연대할 것을 밝힌다.
더불어 많은 이들에게 연대를 요청한다.




2020년 7월 23일,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