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성명'미술계 Y 성희롱 사건' 두번째 입장문 - 바라보는 자리에서 곁에 서는 자리로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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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자리에서 곁에 서는 자리로


지난 두 달은 문화연대 구성원에게 유난히 혹독했던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이십 년 동안 한국 사회 문화운동의 주체로서 그리고 반성폭력운동에 연대해 온 사회운동의 주체로서 Y사건은 큰 충격과 혼돈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책임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뭔가를 저질렀다’가 아니라 ‘뭔가를 하지 않았다’에 대한 것입니다. 죄책감과 동시에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6월 19일 언론을 통해 ‘양철모’ 작가의 성희롱 행위가 공론화된 이후 문화연대는 참담한 심경으로 7월 1일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해 문화연대는 (1) 모든 성폭력 가해자와의 단호한 절연; (2) 문화연대 내부와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폭력을 끊어내기 위한 <문화연대 성평등-반성폭력 행동위원회> 설치; (3) 예술 활동을 빌미로 한 성적 착취, 성폭력 강제에 반대하며 이러한 언행을 용인하고 확산시키며 방조하는 모든 것과의 비타협적 태도와 실천; 그리고 (4)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해 실질적인 제도 마련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과 연대를 약속했습니다. 

이번 2차 입장문에는 ‘미술계 Y 성희롱 사건’에 대한 문화연대의 입장(2020.07.01.) 발표 이후 두 달 동안 진행된 <문화연대 성평등-반성폭력 행동위원회> 활동 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을 담고자 합니다. 문화연대는 1차 입장문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문화연대 성평등-반성폭력 행동위원회>(이하 행동위원회)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내부토론을 진행해왔습니다. 총 네 차례의 위원회 전원회의(6/27, 7/10, 8/22, 9/4), 그리고 여섯 차례의 팀별 회의(7/21, 7/24, 7/28, 7/31, 8/7, 8/13)를 통해 짧은 기간이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회의 진행을 위해 행동위원회를 한시적으로 내부성찰팀과 제도개선팀으로 나눠 문화연대 안팎의 성평등-반성폭력 관련 현황과 대응방안을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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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성찰팀은 집행위원 4인, 활동가 3인으로 구성해 그동안 문화연대의 운영 및 활동에서 남성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요소가 온존하고 있지 않은지 비판적으로 성찰했습니다. Y사건의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문화연대의 현재 위치와 역할을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화연대는 이번 사건에서 ‘성폭력 주변인’이었음을 뼈아프게 인식하였고 더 이상 성폭력 방관자가 아닌 현명한 목격자, 나아가 든든한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가해자의 ‘진지한 반성’은 반성문이 아니라 책임짐을 통해 도달할 수 있고, 이는 가해자가 잘못을 책임지고 합당한 처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문화연대는 지금까지 현실의 성평등-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적 실천이 그러했듯이, 개별 성폭력 사건과 가해자들에 대한 대응이 갈등과 처벌의 한계를 넘어 인권·평등·연대의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적 태도나 가해자 옹호 주체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절연하되 피해자중심주의와 인권 감수성을 바탕으로 성평등-반성폭력 운동을 둘러싼 다양한 고민과 쟁점들에 대해 적극적인 대화와 공론장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커뮤니티 내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후속조치에 대한 쟁점들, 2차 피해에 대한 쟁점들, 가해자 소속 커뮤니티(단체)에 대한 쟁점들 등 성평등과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대화와 연대가 좀 더 개방적으로, 지속적으로 펼쳐지기를 기대합니다. 

피해자가 공론화하지 않은,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회자되고 인지된 사건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에 대해 내부토론이 있었습니다. 문화연대는 지금까지 “직접 제보”를 받거나 “피해자가 공론화한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 인지하고 공식적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의 특성상 피해자가 공론화하지는 않았지만 문화예술계 내에서 회자되는 성폭력 사건과 가해자의 문제가 늘 존재해 왔습니다. 문화연대는 성폭력 사건의 대응 단계를 직접 제보나 피해자 공론화 외에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의혹 제기에 대한 “인지 시점”부터 적용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계 성폭력 대응 체계 운영,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 연계 운영 등 문화연대 성평등-반성폭력 행동위원회와 다양한 반성폭력 운동 주체들의 연대를 통해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 대응 프로세스를 준비하고 운영하고자 합니다.

Y사건과 같이 피해자와 직접 연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연대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자 연대 활동뿐만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성차별적 조직문화에 대한 각성과 변화를 위한 노력에도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 첫 시도로 8월 13일 한국여성민우회 소장을 초대해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소박하게 그러나 끈질기게 우리 안에 있는 성차별적인 문화부터 떼어내겠습니다. 앞으로 구체적인 조직문화 체크리스트를 통해 현재 문화연대의 조직문화가 어떠한지 공통의 감각을 확인하고, 성평등한 문화를 문화연대의 조직적 지향과 가치로 합의하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나온 구체적인 안은 2021년 문화연대의 핵심 사업으로 상정하여 논의와 실천을 이어가겠습니다.

문화연대는 성평등-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화와 공론장을 문화연대 안과 밖에서 함께 모색하고자 합니다.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윤리의식을 검증받는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성평등-반성폭력 운동의 사회적 연대로 확장될 수 있도록 실천하겠습니다. 그동안 바라보는 자의 위치에 머물던 문화연대의 역할을 적극적 성평등-반성폭력의 옹호자로 바꾸기 위해 피해자의 옆에서 좀 더 능동적인 연대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체육계 반성폭력 운동 등 문화연대의 성평등-반성폭력 운동의 흐름 속에서, 지난 두 달 동안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미투 사건으로 고통 받는 피해자와 연결해 민변을 통한 법률지원, 자체적 상담지원 등을 진행했습니다. 서툴지만 진심으로 피해자 곁에서 함께 싸우면서 그동안 문화연대가 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제도개선팀은 집행위원 4명, 활동가 4명으로 구성했습니다. 제도개선팀의 내규 자체 조사결과 Y사건의 가해자는 문화연대가 공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규정상의 회원, 활동가, 또는 집행위원 등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연대의 공식적인 직위를 갖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문화연대 활동의 특성(문화예술 분야의 다양한 예술가, 기획자, 전문가, 연구자, 활동가 등과 활동주제별 연대 및 협력, 참여, 네트워킹 등을 통해 활동하는 방식)상 Y가 문화연대와 함께 활동해 온 점은 사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문화연대는 스스로 공언한 성평등 운동의 의제 및 방향에 역행하는 네트워크 자체의 관행이나 문제점을 변화시키는 데에 적극적인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더구나 문화연대는 피해자연대 입장의 대책위와 달리, 가해자와 연결점이 있는 단체로서 그 의지에 따라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가능합니다. 현재 문화연대의 규정을 성평등-반성폭력의 관점에서 강화하고, 이를 Y사건에서부터 적용하겠습니다. 가해자에 대해 문화연대의 활동규정에 근거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개별 피해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이자 공공기관에서도 할 수 없는 시민단체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제도개선팀은 문화연대의 각종 규정들을 정비하여 보다 성평등적 관점을 강화하고 이를 모든 활동에서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일, 성폭력 행위에 대한 처리 방안을 정립하는 일, 그럼으로써 문화계 네트워크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성차별에 관한 비판과 피해사실에 관한 목소리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그 결과 성폭력 없는 성평등한 문화사회 실현이라는 문화연대의 운동 의제를 활성화하는 일. 이것이 Y 사건 처리에 대한 문화연대의 시각이자 입장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에 Y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가해사실을 인정한 가해 작가에 대해 <문화연대 성차별‧성폭력 예방 및 해결에 관한 규정>이 정하고 있는 조치들의 이행을 요청할 것입니다. 가해자가 문화연대 가까이 있었음을 인식하고 문화연대 구성원에 준하는 조치들을 적용하겠습니다. 이는 가해자를 문화연대 활동에서 배제하는 것과 동시에 가해자의 반성과 재교육을 촉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해사실 인정에서 나아가 재교육프로그램 이수, 진정성 있는 사과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문화연대 위치에서의 책임 있는 자세와 조치를 고민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첫째, 성폭력 전문기관을 통해서 가해자 재교육 프로그램 이수를 명하고, 이수 후 가해 작가에 의한 결과보고서 및 사과문의 작성‧공표를 이행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둘째, 지금까지 공론화된 바에서 알 수 있듯이, 가해자의 활동범위가 광범위하고 알려진 피해사례 또한 복수에 이르는 등 그 심각성을 고려하여, 문화연대와 연관된 모든 활동에서 가해자를 배제하는 활동정지를 공식적으로 결정하고 요구할 것입니다. 셋째, 상기 규정의 ‘공동해결’ 조항(제9조)에 의거하여 가해자의 소속집단에게 가해자에 대한 제반의 조처와 징계를 요청할 것입니다. 이미 여러 입장문을 통해 가해자가 일시적 혹은 장기적으로 ‘직위’를 갖고 활동했던 공공기관들이 입장 및 조처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만, 문화연대는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감시활동을 펴 나가겠습니다.

문화연대 반성차별성폭력 내규개정 이후 제도개선팀의 다음 과업은 <문화연대 회원 및 함께하는 사람들의 성평등을 위한 약속/행동강령>을 제정하는 일입니다. 더불어 (가칭)반성폭력 서약서를 제작해 문화연대와 협력 활동을 하는 외부 인사에게 적용하겠습니다. 

문화연대 내부의 제도개정 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혁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활동과 연대를 모색하겠습니다. 문화연대는 최근에도 (가칭)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운동, 체육계 미투 운동과 제도개혁 활동,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성폭력 사건 대응 등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개혁 활동에 집중해 왔습니다. 문화연대의 성평등-반성폭력 운동이 개별적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연대를 넘어, 문화예술계의 구조화된 성폭력 환경을 제도적으로 개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문화예술계의 구조화된 성폭력은  문화예술 노동의 불안정성, 문화예술 집단(기관, 조직, 단체, 커뮤니티 등) 내 왜곡된 조직문화, 문화예술 공공분야의 위계화된 사업구조 등과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화연대 성평등-반성폭력 행동위원회는 (가칭)문화예술계 반성폭력 문화정책 월례포럼 등을 통해 문화예술계 성폭력 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조사, 제도개선방안 마련, 공론화 등을 실천하겠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문화연대 활동에서의 성주류화 전략을 개발해 공유하고 문화계 공공기관, 기업, 단체, 행사 등의 성평등 모니터링을 위한 조사 및 지표개발도 추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계 공공기관들을 대상으로 제기 되고 있는 성평등-반성폭력 관련 개혁 의제들이 실질적으로 반영되고 제도화될 수 있도록 감시개혁운동과 협력적 거버넌스 활동을 강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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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가 가려고 하는 성평등-반성폭력의 여정은 길고 고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외면하거나 비켜갈 수 없는 길입니다.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피해자의 옆자리로 한 걸음씩 다가가겠습니다. 지금의 고민과 계획들을 토대로 한국 사회의 성평등-반성폭력 운동에 좀 더 깊이 있게 연대해 나가겠습니다. 시간을 들여 신뢰를 쌓겠습니다.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20년 9월 10일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