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공동성명김경수 경상남도 도지사는 양경학 경남문예진흥원장 후보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202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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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경상남도 도지사는
양경학 경남문예진흥원장 후보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경상남도(김경수 지사)가 지난 12월 9일 경남문예진흥원장 후보자로 양경학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을 경남문예진흥원장 후보자로 추천하였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양경학 후보자는 포털 검색만 해보아도 박근혜 정부 시기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련된 가해자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구자환 영화감독이 1인 시위를 하겠다거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경남민예총⦁민미협⦁작가회의 같은 문화예술단체들이 공식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밝힌 것은 당연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예술계의 거부 반응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후에도 경상남도가 양경학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였다거나 양경학 후보자 스스로 사퇴를 하였다거나 하는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도리어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방관하지 않았다는 양경학 후보자의 변명이 들려온다. 그는 "당시 문예위원장과 예술위원들에게 블랙리스트에 대한 소신 발언과 도움을 요청했고 이후 기관장에게 찍혀 평직원으로 강등돼 1년 반 동안 3개 부서를 전전했다"며 "이후 문예위 사무처장 시절에 블랙리스트가 작동하지 않도록 심의위 제도에 공정성을 가하고 공정심의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양경학 후보자의 이러한 말이 사실 그대로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가벼운 처분을 받고, 사무처장 직까지 지낸 것으로 이미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보아야 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보상조차도 피해 예술인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라는 사실을 알아두기 바란다.

양경학 후보자는 블랙리스트 사건이 이제는 끝났다고 착각하는가.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고, 이제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블랙리스트 사건의 주범인 김기춘과 조윤선에 대한 형사재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피해 예술인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은 대부분 형사재판이 끝나길 기다리느라 4년이 되도록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도 나오지 않았다. 피해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가해자로 확인된 사람이 경남문예진흥원장 직을 맡아서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하는가.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해 7월 1일에 있었던 국장급 인사에서 블랙리스트 가해자가 포함되어 논란이 되었을 당시 관련 인사를 철회하면서 재발방지 및 신뢰받는 정부 부처로 거듭나기 위한 인사원칙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 내용은 ▲ 블랙리스트 관련자는 당시 담당 업무와 관련이 없는 직위로 배치하여 당시 담당 분야와는 다른 업무를 수행하고 ▲ 블랙리스트 사태 수습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신규자를 포함하여,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교육 계획을 수립해 지속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이행협치추진단과 함께 피해자 명예회복과 사회적 기억사업을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분야별 제도 과제 이행을 위하여 문화예술현장과 함께 더 긴밀한 소통을 해나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경상남도 김경수 지사와 경상남도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적폐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제시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경상남도가 블랙리스트 실행 사실이 언론을 통해 이미 다수 공개되어 있는 양경학 후보자를 경남문예진흥원장 후보로 지명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깊은 실망감을 느끼며, 인사 검증을 담당하였던 추천위원회와 이사회에도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들에게 사죄할 것을 요구한다.

경남문예진흥원은 광역문화재단이다. 경남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은 물론 관계 기관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문화예술정책을 협의해야 하는 자리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자리에 블랙리스트 가해 사실이 명백히 확인된 사람이 책임자로 있으면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가는 곳마다 구설수에 오르고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공무원 개인의 일탈 범죄가 아니라, 청와대-문화체육관광부-공공기관 등 국가조직이 총동원된 조직적인 국가범죄였다. 개인의 반성으로 회복될 사건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재발방지를 위해서 노력해야하는 문화적 제노사이드 범죄였다. 김경수 경남 지사와 경상남도 의회는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독일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나치에 부역하였던 범죄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하였던 까닭을 복기하여 주기 바란다. 수용소에서 요리사로 근무하며 살인에 대하여 보지도 못하고 그저 듣기만 하였던 사람까지 살인방조 혐의로 처벌하고자 하였던 까닭을 기억하기 바란다.

양경학 후보자도 자신의 행동이 블랙리스트 사건의 트라우마적 기억에서 벗어나서 문화예술인들과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길을 어렵게 모색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불신을 가중하는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하기 바란다.

경상남도가 끝내 양경학 후보자를 경남문예진흥원장으로 임명한다면 우리는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것임을 분명히 한다.


2020. 12. 18.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블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