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기자회견근시안적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

2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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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근시안적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


서울시는 9월28일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광화문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인 서쪽 차도로 확장하고, 확장된 광장은 나무를 심어 공원 형태로 조성하며, 광장의 동쪽 차도는 현재 5차로에서 7~9차로로 넓히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을 이번 10월 말 착공해 2021년 하반기까지 완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광장 조성 계획은 2019년 9월, 고 박원순 시장의 광화문광장 사업 전면 재논의 선언 이후 진행된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 결과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이다. 특히 광화문광장의 형태나 교통 대책, 역사 복원, 이용 방식과 관련해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하였음에도 애초 서울시의 계획과 거의 달라지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현재 추진 중인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을 당장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첫째, 이 사업을 추진한 고 박 시장은 공식적, 공개적으로 이 사업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서울시 행정 관료들은 사실상 재논의 선언 이전 안으로 ‘계속 추진’을 결정했다. 고 박원순 시장은 지난 5월23일 시장 공관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만나 “광화문광장 추진과정에서 시민단체 등의 이견이 있고,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광화문광장 사업 추진은 타당하지 않은 듯해서 중단하려고 한다”며 우리의 의견을 구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이렇다 할 공식적, 공개적 결정이나 발표가 없었는데도 대행 체제의 서울시 공무원들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결정하고 빠르게 집행하려고 한다. 이는 서울시장 대행 체제의 권한 행사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광화문광장 조성이 대한민국 서울의 백년대계와 같은 사업인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에 대한 의사 결정과 집행은 내년 초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새 시장에게 넘기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화문광장을 조성하는 서쪽 편측안은 2019년 9월 고 박 시장이 광화문광장 추진 중단 및 전면 재논의 선언을 하게 만든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였으며, 우리는 서쪽 편측 광장 형태가 적절치 않다고 숱하게 지적해왔다. 서쪽 편측안은 대한민국 서울의 상징 광장에 어울리지 않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광화문광장 동쪽엔 교보문고, 한국통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시민 이용 시설이 많으며, 동쪽의 보행자가 서쪽의 2배에 이르고, 동쪽의 종로와 사직로, 남쪽의 세종대로와 연결도 자연스럽지 못한 점 등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그동안 우리와의 재논의 과정에서 고 박 시장의 임기 안에 새로운 광장을 조성해야 하고, 동쪽에는 (곧 용산으로 옮길) 미국 대사관이 있어서 광장 조성이 쉽지 않다는 궁색한 이유로 우리가 제시한 양측안이나 동측안을 채택하기 어렵다고 변명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박 시장이 고인이 됐기 때문에 이번 임기 안에 반드시 추진해야 할 이유는 사라졌다. 또 몇 년 뒤 미국 대사관이 용산으로 이전할 때까지만을 고려한 근시안적인 광장이라면 현재 상황에서 추진하지 않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셋째, 우리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서울 4대문안과 서울 전체의 교통 패러다임을 혁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함을 지속해서 요구해왔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4대문안은 ‘혼잡통행료’를 부과하여 차량통행을 줄이고, 정체된 대중교통 이용율을 높이기 위해 대중교통 체계를 개혁하며, 보행자와 자전거 등 지속가능한 교통수단의 획기적인 확대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번 방안에서 4대문안 혼잡통행료 부과와 같은 차량 수요 억제 정책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혼잡통행료는 차량 수요 억제뿐 아니라 미세먼지 줄이기와 시민 건강 개선을 위해 필수적인 정책임에도 “논의를 해보자”라는 원론적 수준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중교통 체계 개혁이나 다른 선진국에서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교통수단의 확대방안도 포함되지 않았다. 특히 이러한 정책들의 성공을 위해 충분한 사전실험과 검증에 대한 계획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계획이 서울의 교통 체계를 혁신하는 계기가 되지 못한다면, 새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은 그저 서울의 얼굴화장만 고치는, 전시성 사업에 그치고 말 것이다.


넷째, 서울시는 역사성 회복 차원에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경복궁 월대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광화문광장 사업은 2020년 말 착공해서 2021년 말까지 완공하고, 이어서 경복궁 월대 복원은 2021년 말 착공해서 2023년 완공하게 된다. 지난 7월 서둘러 착공한 세종대로 사람숲길 조성사업도 2020년 말까지 진행된다. 이것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무려 4년 동안 광화문광장 일대를 공사장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광화문광장의 역사성 회복과 관련한 논란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그러나 애초 서울시가 역사 광장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경복궁 월대 복원 사업과 시민 광장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현재의 광화문광장 사업을 시기적으로 분리해서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 광장과 역사 광장의 공간적 조화나 교통 영향, 공사 기간, 시민 불편 등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경복궁 월대 복원 사업과 광화문광장 사업, 세종대로 사람숲길 사업은 공사 시기를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


다섯째, 서울시는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세종문화회관 쪽에 신설되는 광장을 나무가 있는 공원형 광장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요구를 광장 조성에 반영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공원형 광장이 자칫 시민들의 자유로운 광장 이용이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나무심기는 이미 삼성 종로타워 등지에서 시민들의 자유로운 집회와 시위를 방해하는 방법으로 악용된 바 있다.


앞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내 집회와 시위를 이유로 중앙정부에 야간 집회를 금지하는 ‘집회시위법 개정안’도 건의했다. 야간 집회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과 주민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제한은 필요하다. 그러나 포괄적인 야간 집회시위 금지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화 시위를 막기 위해 악용한 수단이기도 했다.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시민의 기본권이 원칙적으로 보장되는 한에서 다른 시민과 주민들의 피해를 덜어주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서울시는 그동안 경찰청의 교통 심의 등 절차를 밟아왔다며, 10월 말부터 광화문광장 동쪽 차로를 넓히는 등 이 사업을 착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울시의 일정에 따르면,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2021년 하반기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렇게 성급하게 착공, 완공한다면 지난 2016년부터 추진해왔고, 2019년부터 전면 재논의해온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은 돌고 돌아 제자리걸음을 하는, 초라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졸속으로 추진되는 광화문광장은 형태나 교통, 역사성, 시민 이용 등 기존광장의 문제점을 제대로 개선하지 못한 것이며, 새로운 광장에 대해 시민과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계획대로 광장이 완성된다면 기존광장처럼 다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과 비판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고 박 시장의 핵심 사업이 오세훈 전 시장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으로 마무리돼서는 안 될 것이다.


대행 체제의 서울시는 고 박 시장도 사업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 공식적, 공개적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국가 광장으로서의 상징성이나 친환경적인 교통 대책, 역사광장과 시민광장의 조화, 시민의 자유로운 이용 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조성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깊게 인식해야 한다.


이처럼 본질적 가치를 담지 못한 상태에서 1천억원 규모의 광화문광장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광화문광장의 본질이 토건 세력을 위한 사업임을 입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광화문광장 사업은 시장의 임기와 성과, 서울이라는 지역성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공간, 역사, 문화를 상징하는 거대한 작업임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서울시가 졸속으로 추진하는 광화문광장 사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2019년 재논의 선언 이후 진행된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의 결과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내용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내년 4월 시민들이 선출할 새 서울시장이 의사 결정과 집행을 행사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시기를 늦춰야 한다. 그것이 백년 뒤에도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광화문광장을 만들 수 있는, 사려 깊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다.


다음과 같이 우리의 의견을 밝힌다.


1. 광화문광장 사업의 결정과 집행을 당장 중단하고 새 시장에게 넘겨라.

2. 현재 추진되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의 내용은 토건 사업에 불과하다.

3. 새 광화문광장 계획은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의 결과를 포함해야 한다

4. 광장의 형태, 교통, 역사 복원, 시민 이용은 지속가능한 방식이어야 한다.

5. 시민단체와 대행 체제 서울시 부시장단과의 긴급 간담회를 요구한다.


2020년 10월 5일


경실련, 도시연대, 문화도시연구소, 문화연대, 서울시민연대,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서울YMCA,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행정개혁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