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논평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자율운영 보장 공동선언’에 부쳐

2021-03-24
조회수 393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자율운영 보장 공동선언’에 부쳐
‘자율성 보장’을 넘어 ‘협력적 거버넌스’를 위한 문체부의 자기 혁신이 필요한 때

  

지난 3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자율운영 보장’을 공동으로 선언했다. 문체부와 예술위는 이번 공동선언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겪으며 예술현장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 것에 대한 잘못을 반성하며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가 예술정책의 실체이자 기본 원칙이며 독임제 진흥원을 합의제 위원회로 전환한 기본 정신임을 되새기면서, 문화예술지원에서 자율성과 책임을 보장하고, 현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공동선언은 5개의 항목을 통해 ‘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문화예술 정책과 재원에 대한 자율과 책임’, ‘예술위의 사업계획 수립과 기금 운용에 대한 자율성 그리고 지원심의 과정에 대한 공정성’, ‘예술표현의 자유 등 헌법 정신 준수와 예술 현장과의 소통’, ‘문체부와 예술위의 소통과 협력’ 등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번 문체부-예술위의 ‘자율운영 보장 공동선언’을 적극 환영한다.

지난 2018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사태의 재발방지와 예술위의 자율성‧전문성 보장을 위해 (가칭)‘자율 운영 협약서 체결’을 문체부와 예술위에 권고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지난 3년 동안 정당한 사유 없이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와 이행협치단의 권고를 회피하며 문체부-예술위 사이의 자율 운영 협약서 체결을 미루어 왔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구조적 원인으로 확인되었던 기존 중앙 정부의 권위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를 최근까지 반복한 것이다.

이번 공동선언은 황희 문체부 장관의 부임과 더불어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반성이 다시 한 번 환기되고, 예술위를 비롯하여 예술정책 전반에 대해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문체부의 의지가 공개적으로 선언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특히 우리는 “본 선언문의 효력은 양 기관의 기관장이 임기만료, 그 밖의 사유로 중도 퇴임하는 경우에도 유지되며 언제든 본 선언문의 기조는 후퇴될 수 없다”는 태도를 높이 평가하며, 예술 현장과 국민들에 대한 문체부-예술위의 공개적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이번 문체부-예술위의 공동선언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문체부의 진심어린 반성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의 결실이자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지난 2018년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사태의 구조적 원인이었던 문체부의 권위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행정 체계의 재발방지와 개혁을 위해 문화행정 제도개선안을 권고 했다. 하지만 이 중에 다수의 핵심적인 권고 사안들은 지금까지도 전혀 이행되지 않았으며, 최소한의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정운영 차원의 문화정책 정체성 확립’((가칭)문화국가의 원칙 확립 및 문화예술의 가치 확산을 위한 중장기 종합계획 수립, 문체부의 역할 재조정 및 정체성 확립 외), ▲‘문체부 조직 개혁을 통한 소속기관 자율성 및 전문성 확보’((가칭)국가예술위원회 설립 추진 및 예술정책 조직 개편, 성과협약 체결 및 성과체계 마련, (가칭)문화예술지원기관협의회 구성 및 운영 외), ▲‘문화행정 협치 기반 조성 및 제도화’(문화행정 협치 기반 마련을 위한 중장기 및 이행계획 수립, 문화기본법에 협치 원칙과 정보공개 의무 등 명시 외) 등 문화행정의 중요한 개혁과제이자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를 위한 권고 사안들이 문체부의 무책임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문체부는 이번 공동선언을 계기로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의 제도개선 권고안들에 대한 적극적인 집행계획을 검토하고 재수립해야 한다. 이는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관료집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예술 현장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정부 부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동선언이 하나의 이벤트나 전시 행정이 되지 않고 문화행정의 혁신을 위한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문체부와 소속 기관들 사이의 협력적 거버넌스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과 혁신이 필요하다.

문체부는 예술위 외에도 다양한 문화‧예술 전문기관들에 대한 행정적, 정책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문체부 공무원들이 ‘산하 기관’이라 호명하고 있는 다수의 문화‧예술 전문기관들은 문체부의 갑질행정, 전시행정, 노동차별(열악한 노동환경) 등으로 심각하게 고통 받고 있다.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문체부와 소속 기관들 사이의 위계적이고 일방적이며 비합리적인 행정체계는 블랙리스트 사태의 본질적인 원인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화행정을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이다. 지금처럼 행정편의주의, 성과주의, 과다노동 등이 일상적으로 강요되는 문화‧예술 공공기관에서 어떻게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다양성을 포용하며, 창조적인 예술을 지원하고, K-컬처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겠는가.

문체부는 예술위와 진행한 이번 공동선언의 취지와 가치를 타 문화‧예술 전문기관까지 적극적으로 확장 시켜야 한다. 문체부 스스로 문체부 소속의 문화‧예술 전문기관들에 대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협력적 거버넌스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책 환경, 노동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혁하고 제도화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그리고 문재인 정부 초기 문체부 스스로가 선언했던 “사람이 있는 문화”에 대한 약속을 실행해야 할 때다. 이번 공동선언이 확인해 주었듯이, 그 시작점은 바로 문체부다. 문체부 스스로 자신들의 일하는 방법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문화행정은 블랙리스트라는 어두운 암흑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021년 3월 24일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