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논평원칙도 절차도 없는, '이건희 기증관' 건립 결정을 반대한다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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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논평]

원칙도 절차도 없는, '이건희 기증관' 건립 결정을 반대한다


지난 11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많은 국민적 관심과 논란을 불러왔던 (가칭)‘이건희 기증관’의 건립터로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문화부는 같은 날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7년 개관을 목표로 올해 11월부터 예비타당성 조사 절차에 들어가 내년 하반기에는 국제설계 공모절차를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건희 기증관’ 건립은 엄청난 국가 예산과 송현동이라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공간이 활용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추진 속도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고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본인들이 소유한 미술품과 문화재에 대한 기증의사를 밝힌 것이 올해 4월임을 생각하면 기증관 건립 부지 결정까지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연면적 30,000m³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공공 미술관 건립에 대한 구상과 추진계획, 관계부처 협의, 부지 결정 과정을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끝내 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최근 문화부는 ‘이건희 기증관’ 건립이라는 이미 정해진 목표를 향해 장애요소를 제거하고 미션을 수행하듯이 일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론화나 사회적 합의는 애초에 고려대상도 되지 못했다. 


문화부는 7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이하 위원회)’를 구성하고, 10여 차례의 논의 과정을 통해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러한 중요한 국책사업을 단 7명의 전문가와 공무원들의 논의만으로 결정하는 게 적절한가이다. 전문가 7인의 구성 또한 특정 직군과 분야에 몰려있어, 다양한 관점에서의 폭넓은 논의가 가능했는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문화연대는 위원회의 회의록을 문화부 측에 정보공개 청구한바 있다. 하지만, 문화부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 5조, 6조에 해당하는 비공개 사안이다’는 성의 없는 답변만 한 채 공개를 거부했다. 법조항을 살펴보면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ㆍ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5조)하거나, “개인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6조)가 있을 경우 정보공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문체부의 보도자료를 통해서 해당 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되었음을 명시했고, 해당 위원회의 위원 명단 또한 이미 공개했다. 또한 공공 위원회의 참여자는 개인정보 보호를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문화부의 정보공개 거부 결정은 법적 근거가 없으며, 스스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송현동 부지 결정 과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부는 ‘기증품 특별관 건립 기본계획 연구용역’을 통해서 건립 후보지인 서울 용산과 송현동 부지에 대한 입지를 비교 분석한 결과, 송현동을 최종 부지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해당 연구는 장소성, 연계성, 접근성, 부지활용성, 경관 및 조망성과 같은 기증관 입지 조건만 따지고 있을 뿐이다. 공공 문화예술정책과의 연계, 국민과 지역주민의 기대와 요구, 공유지로서 송현동 부지의 가치와 의미 등은 전혀 고려되지 못했다. 오로지 기증관 건립을 통한 경제적 기대효과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별도의 평가나 조사 또한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고, 삼성가의 비자금 조성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공공문화시설에 ‘이건희’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한 논의부터, 문화예술시설의 수도편 편중 심화로 인한 문화균형발전이라는 국정 기조와의 충돌문제까지 사실상 논란을 덮고 갈뿐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비공개로 진행되는 논의과정과 공론화 과정의 부재로 인해 의혹만 키워가고 있다. 


‘이건희 기증관’에 대한 국민의 관심사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과 입장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당연히 이러한 차이를 조율하고 좁혀가는 과정들이 필요하며, 더욱이 ‘이건희 기증관’과 같은 국가적 사업이라면 더더욱 피해서는 안된다. 지금과 같이 원칙과 절차도 없이 막무가내식으로 진행되는 ‘이건희 기증관’ 건립과정은 민주주의의 질서와 시민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다. 문화부는 지금이라도 속도전을 중단하고, 다양한 토론과 논의가 있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이 문제를 풀어가길 바란다.


2021년 11월 17일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