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성명김봉렬 총장, 블랙리스트 실행자 송수근을 비호하는 당신이 문화예술계의 적폐다

지난 4월 28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총장이 학교 공식 페이스북에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희망캠페인 릴레이 참여]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응원하는 릴레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내용이었는데, 글 끝에 김봉렬 총장은 릴레이를 이어갈 다음 주자 중 하나로 계원예술대학교 송수근 총장을 지명했다. 송수근이 누구인가. 송수근은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과 제1차관을 지내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실행을 진두지휘했던 범죄자다. 그럼에도 2019년 8월에 문화예술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에 임명되었다. 


같은 날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가 블랙리스트 실행자 송수근을 지목·지지한 김봉렬 총장과 학교 본부에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다음 날 김봉렬 총장은 사과문을 통해 ‘희망캠페인’ 게시물의 부적절함을 인정하고 해당 게시물을 철회했다. 하지만 사과문에는 릴레이 주자에 "부적절한 인사가 포함"된 것에 대한 사과만 있고, 논란이 되는 대상이 누구이며 그 인물이 왜 부적절한 인물인지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있다.


사과문의 내용만 보면 김봉렬 총장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해당 인물이 자신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받을 것을 걱정하며 최대한 완곡한 표현으로 사과문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논란의 대상자가 국가조직을 동원하여 1만 명이 넘는 문화예술인을 사찰하고 검열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국가범죄를 주도한 송수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송수근은 이미 재판을 통해서 블랙리스트 사건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났으나 법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처벌받지 않았을 뿐이다. 단순히 한 개인의 과거 실수나 허물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게다가 김봉렬 총장은 사과문에서 "그러한 지목 행위가 ... 그분들에 대한 공식적 지지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9년 9월 2일, 송수근의 계원예술대학교 총장 취임식에서 김봉렬 총장은 축사를 통해 학연·지연과 같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추태를 보인 바가 있다. 당시 취임식장에는 부당한 총장취임에 반대하며 피켓을 든 계원에술대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도 있었지만, 김봉렬 총장은 아무렇지 않은 듯 여유롭게 송수근 총장에게 축사를 전했다. 김봉렬 총장은 그날 취임식에서 이미 송수근에 대한 지지를 표했고, 이는 자신도 문화예술계의 권력집단이자 적폐세력의 일원임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사과문의 "간과"했다는 표현은 기만적인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김봉렬 총장의 인식과 이해 수준도 예술대학의 총장이라고 하기에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김봉렬 총장은 글에서 예술로 "일상에 갇혀버린 국민들을 위로하고", 위기의 상황에서 "예술가 스스로 희망을 창조해야 한다"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예술계 전반이 엄청난 피해를 받고 있고, 문화예술인들은 생존을 위협받을 만큼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을 통해 국민을 위로하고 예술가 스스로 희망을 창조해야 한다는 말이 예술인들을 육성하고 문화예술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예술대학 총장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문화예술계와 문화예술인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은 이유는 문화예술인의 노동권과 복지에 대한 제도와 정책적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행정의 무능에는 블랙리스트 사태와 같이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짓밟고 퇴행적 문화행정을 보여준 송수근 같은 이들의 책임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미 끝난 과거라고 말한다. 혹은 블랙리스트라는 과거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도 한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블랙리스트에 가담한 자들이 예술대학 총장이 되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한다. 또는 블랙리스트 가담자를 감싸며 그들만의 권력 카르텔을 만들기도 한다. 반면에 블랙리스트에 엄청난 피해를 받은 문화예술인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생존권을 위협받으며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봉렬은 이번 건으로 상처받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과 블랙리스트로 인해 피해를 받은 문화예술인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 문제의 핵심을 덮으려 하는 의미 없는 사과가 아니라, 블랙리스트 실행자 송수근을 그동안 지지해온 것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말이다. 이번 일로 김봉렬, 송수근과 같은 문화예술계의 썩어빠진 권력집단들이 문화예술계의 혁신과 개혁을 가로막는 적폐세력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김봉렬 총장과 송수근 총장은 문화예술계의 선배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총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2020년 4월 30일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