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19대 대선 특집논평] 문재인 대통령에 바란다

[19대 대선 특집논평]

문재인 대통령에 바란다

원용진 / 문화연대공동대표   “갈 길은 먼데, 몸은 천근만근이고, 사방은 깜깜한데 주위엔 길동무도 인적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처지가 이렇지 않을까 싶다. 취임 후 매일 같이 환호 속에 파묻혀 즐거워 보이지만 속 사정은 그리 밝지 않을 것 같다. 그를 걱정하는 열렬 지지자들이 주위의 어떤 비판도 비난이라며 쳐 내겠다는 결연함을 보이는 것도 그런 탓으로 읽힌다. 반딧불이라도, 소쩍새라도 되어 동행해주지 않으면 안 될 고단한 길을 새 문재인 대통령이 걷고 있다는 안타까움 탓에 팔을 걷어붙인 것으로 이해한다. 환호에 파묻혀 속 살 보기 힘든 새 대통령의 깊은 속사정을 한번 챙겨보자. 높은 기대감 탓에 가야 할 길이 이전 어느 때보다 멀어 보인다. 온통 세상 질서를 헝클어버린 앞선 두 대통령 탓에 목표 달성은 물론이고 설정마저 어려울 지경이다. 한반도의 평화 구축은 당연지사지만 지난 10여 년간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어 있어 장담처럼 쉽지가 않다. 국정 농단으로 생긴 국정 공백, 시스템의 붕괴로 행정 재건은 막막할 따름이다. 경기 불황에다 가계 부채 문제까지 겹쳐 경제 활성화는 말 그대로 멀어만 보인다. 촛불과 태극기로 대변된 다른 집단 간 대화나 통합도 시급하지만 바라는 대로 쉽게 이뤄지진 않을 만만찮은 과제다. 적폐라는 이름을 거부하며 척결에 저항하는 힘을 감안하면 사회의 선진화도 어렵게만 여겨진다. 이런 달성 목표들을 지켜내리라 다짐하고 공약이니 반드시 이루겠다고 말하겠지만 멀게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방은 깜깜하고 몸이 천근만근인 것은 대선을 치르느라 힘이 소진 탓만은 아니다. 승리가 눈 앞에 보이던 선거 기간 중은 오히려 몸이 홀가분한 재미마저 느꼈을 터다. 검표가 끝나 발표가 되고, 서약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 사정 어느 것도 호의적이지 않음을 실감한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여 융통성을 발휘할 가능성은 많이 줄어 있었다. 북한은 한국을 상대치 않겠다고 결기를 보이고 미국에만 신호를 보낸다. IMF통치 경제의 그림자는 아직도 어른거리며 언제든 한반도를 덮칠 준비를 하고 있다. 선거에서 보여준 연령별 갈등 구조도 만만찮다. 청년 실업,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선다고 선언했지만, 기업이 얼마나 부응해줄지 불확실하다. 어떤 조건보다 더 무서운 강적은 강성 보수의 힘이다. 탄핵이라는 조건 속에서도 강성 보수는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언제든 더 강한 결집으로 과거 영화를 누리겠다는 다짐도 공공연히 해낸다. 먼 갈 길, 무거운 몸, 깜깜한 주변, 그럼에도 가야할 길이기에 걸음을 옮겨 보지만 쉽게 절망과 고통이 줄어들진 않는다. 험한 길을 같이 해줄 동행자조차 충분치 않은 탓이다. 여러 개혁을 위해선 입법 과정이 필수지만 여당은 국회의 과반 의석에 미치지 않고 있다. 협치를 내세웠지만 협력을 이유로 아무것이나 야당에 양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론환경의 악화로 인해 개혁을 지지하고 널리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해줄 협력도 기대하긴 어렵다. 10여 년 동안 권력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인사들이 초기엔 개혁의 바람에 떠밀려 가겠지만 스스로 개혁의 대상이 될 행동을 언제든지 저지를 수도 있다. 높아진 기대치 탓에 지지자들도 언제든 환호를 거둘 가능성도 남아있다. 거버넌스 파트너가 되어 주리라 기대했던 시민사회도 지난 10 여년 간의 부진으로 제 한 몸 챙기기도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비교적 진보적 담론을 생산해 미래로 향한 길에 동반해주던 대학도 헐떡이며 숨조차 고르기 힘들 정도다. 동반자 없는 외로운 길, 그래서 길은 더 멀어 보인다. 촛불을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열쇠로 꼽는 이가 많은 것은 깜깜한 주변 사정, 우군이 적은 사정 탓이다. 추운 겨우내 추위를 이기며 버텼던 민주 시민의 힘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으므로 그에 충실하는 것이 먼 길 가는 자세이고, 몸이 무겁더라도 이겨내며 외로워도 참아야 할 이유라 등을 떠미는 이들이 많다. 지당한 격려이긴 하다. 하지만 갈 길의 먼 정도, 깜깜함의 농도, 외로움의 크기를 감안하면 위로의 말로 이겨낼 쉬운 과제가 아님은 누구든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을 파면하고 새 대통령을 초치하는 일을 해낸 촛불 모임이었지만 이제 그 모임은 구체적 통치로 현현되어야 하고, 꼼꼼히 행정과 시민의 일상에 파고들도록 정책화, 행정화되어야 한다. 추상에서 구체로 이어지게 하는 실천의 힘, 그것이야말로 촛불 정신을 승계할 것이며, 먼 행로를 가볍게 해 줄 것이다. 깜깜한 가운데서도 몸을 가벼이 일으키며 걸어가게 할 문제인 정부에 기대해야 할 실천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통치 실천이어야 한다. 심지어 통치자와 그 대상의 구분마저 뛰어넘는 실천이어야 한다. 여야를 뛰어넘음은 물론이고, 중앙-지방 정부의 경계도 지워나가야 한다. 공공영역과 시장 영역의 경계도 재설정하고, 기업과 행정부의 위치 설정도 재고되어야 한다. 시장과 시민사회 간 경계에도 지우개를 대야 한다. 행정부를 넘어 시민의 일상에까지 파고드는 실천이어서 행정의 혜택이 일상을 윤택하게 하고, 일상이 행정 선진화로 이어지게 하는 일을 벌여야 한다. 이는 인위적으로 동반자를 모으는 일과는 차별된다. 동반자와 비동반자로 나누어 모으고, 달리 대접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마음속에 동반 의지와 비동반 의지기 상존함을 인정하고 동반 의지가 비 동반 의지를 넘어서게 만드는 실천이어야 한다. 피아 구분 실천과는 달라야 한다. 언제든 동의할 의지의 씨앗을 더 키우는 의지 경작의 통치 실천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작된 의지가 다시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통치 실천으로 되먹임치고 한층 더 나은 통치 실천이 다시 의지 경작으로 이어져야 한다. 어떤 제안에도 불구하고 갈 길이 먼 것은 어쩔 수 없다. 새로운 통치 실천으로 응원하는 마음들을 더 끌어내 걸음을 가볍게 하고, 주위를 밝혀야 하고 이야기도 조곤조곤 나누며 걷는 덜 고단한 행로를 택해야 한다. 손발이 묶인 채 벌여야 하는 정치적 실천이기에 답답함으로 가득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치인, 정당, 그리고 정치권에 주어진 소명 아닐까 싶다. 먼 길의 끝에 놓인 과실을 시민과 함께 챙기며 박수받는 성공한 대통령, 소명을 다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