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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주간논평] KBS 드라마 <스파이명월> 결방사태를 통해 본 문화예술인들의 노동권

201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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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논평] 


KBS 드라마 <스파이명월> 결방사태를 통해 본 문화예술인들의 노동권


지난 15일, 배우 한예슬은 출연중인 KBS 드라마 <스파이명월>의 열악한 제작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촬영을 거부한 채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11회 차 <스파이명월>은 결방되었으며, KBS 제작진은 이 사태에 대해, 한예슬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법적인 조치를 포함해 강경한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촬영거부와 출국사유에 대해 각종 추측성 보도들이 이어졌고, 많은 논란 속에 한예슬은 이틀 뒤인 17일, 귀국했다. 그녀는 입국장에서 ‘옳은 일을 했다고 믿고 싶다’고 했지만 전 스텝들과 KBS제작진들에게 사과를 하고 나서야 촬영장에 복귀 할 수 있었다.

밥상을 차리는 것도, 그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것도 힘들다

한국 드라마의 열악한 촬영환경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많은 배우들이 살인적인 제작 일정에 대한 고통을 호소해 왔다. 한예슬 역시 촬영 거부를 하기 전, 제작진에게 주 5일 촬영 보장, 대본의 출연 분량 조절, 밤 12시 이전 촬영 종료를 요청했으나 제작진은 촬영 일정이 촉박하다는 이유 등으로 거절했다. <스파이명월>은 사전 극본 공모로 이미 완성된 대본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쪽 대본 드라마와 같이 생방송 제작 드라마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결국, 주연배우의 촬영중단은 바로 드라마 결방으로 이어졌다. 단, 이틀을 비워서 결방되는 일정이라면 얼마나 비상식적 촬영 인지 짐작 되지만 언론은 ‘시청자와의 신성한 약속’을 저버린 배우에 대한 비난을 쏟아 냈다. KBS와 제작진 역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본때라도 보여주듯 배우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한 주연배우의 책임감이 아니라, 드라마 제작현장의 비상식적인 노동환경의 개선이다. 방송 3사의 피 튀기는 시청률 경쟁 속에서 드라마 제작현장은 그동안 수많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심지어 그러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들은 촬영 일정이 길어짐으로써 커지는 제작비 부담과 간접광고(PPL)를 받기 어려운 상황 등의 이유로 드라마 사전제작을 기피한다. 교통사고 후에도, 가족의 상중에도 촬영장을 지키는 것은 투혼과 열정이 아니라 열악한 제작 시스템의 반증이다. 몰아치는 살인적 일정과, 출퇴근도 없이 촬영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배우가 모든 상황을 감내하고 노동권에서 배제될 이유는 없다. 제작 스텝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역시 그들의 열정노동으로 버티는 것이 아닌 최소한의 기본적 대비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문화예술인이라고 해서 노동권의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6월 15일 故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발의된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예술인들의 범위를 규정짓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보류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법적으로 노동자로 규정되지 못한 연기자들과 스텝들의 밤샘 촬영 및 고된 일정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많은 현장에서 이와 같은 일들을 목격해 왔다. 노동현실은 언제든 대체할 인력이 있다는 협박과 함께 노동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치라고 다그친다. 새로운 드라마가 편성될 때마다, 현장에서 배우들이 과로로 쓰러지고, 스텝들의 비정상적인 노동강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번 <스파이명월> 결방사태 뻔히 문제를 알고도 개선하지 않은 방송사와 돈 벌기에 급급한 외주제작사의 책임이 크다. 더 이상, 그들을 죽음의 길로, 포기와 좌절을 길로 몰아서는 안 된다. 삶을, 예술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저항하고, 더 싸워야 할 것이다.

2011.08.23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