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평]
잡(雜)년행진, 우리는 어디든 갈 것 이다.
지난 16일, 과연, 진행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먼저 앞선 한국판 슬럿워크 ‘잡년행진’이 퍼붓는 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유쾌함 속에 진행되었다. 고려대에서 원표공원으로, 그리고 홍대로 이어져 퍼포먼스와 노래, 춤이 가득했던 ‘잡년행진’은 개개인들의 목소리가 모여 만들어낸 즐거운 혁명이었다. 이 행진의 동기가 된 슬럿워크(Slut Walk)는 지난 1월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진행된 안전교육 강연에서 경찰관이 “성폭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자들이 ‘슬럿(Slut, 매춘부)’처럼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 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다. “누가 어떤 옷을 입는가와 상관없이 우리의 몸은 안전해야 한다” 의 기조로 이미 미국, 영국, 호주를 비롯해 20여개 국에서 열린 ‘슬럿워크’ 가 한국에서 열리게 된 것에 대해 문화연대는 반갑게 환영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입느냐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성폭력은 안 된다는 것이다.
잡년 행진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폭력범으로 모는 것 같아 불쾌하다.’ ‘야한 옷차림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행동이다’ 라는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잡년행진의 참가자들은 이번 행진의 의미는 남성들의 폭력적 시선에 대한 문제를 넘어 여성이 성폭력 사건의 원인제공자가 되고, 그에 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저항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은 ‘평소 피해자의 품행이 단정치 못했다’는 것을 자신들의 범죄 면피사유로 내세웠다. 무분별한 철거에 항거하는 명동 마리에서 발생한 용역들의 성추행 사건을 신고하러 온 피해자에게 남대문 경찰서는 ‘평소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냐’ 등의 질문을 했다. 현대 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인 여성노동자는 해고되고 가해자는 고용승계 되는 이런 현실에 ‘잡년들’ 의 행진은 무사히 진행할 수 있을지 하는 걱정도 낳았다. 하지만 성폭력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입느냐와 상관없이, 그리고 성별을 넘어 모두의 인권의 문제에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이다. 성범죄의 책임은 가해자가 져야 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행실이나 상태가 거론될 필요는 없다. 가해자의 변명을 착실히도 들어주는 한국사회에 대해 잡년행진은 정면으로 항의한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입든 너에게 나를 만질 권리는 없다”
개인, 그리고 개인. 연대는 그 경계를 넘는다.
잡년행진 참가자들은 고려대 앞에서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출교를 요구하며 행진을 시작했다. 그들은 다양한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대한문 앞에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성폭력 피해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했다. ‘슬럿복장’의 사람들과 피켓을 든 참가자들, 그저 함께 걷기만 하는 사람들, 성별과 지위와, 나이를 넘나들며 참가자 개인들은 함께 걸었다. 주최자는 없었다. ‘이런 건 어떨까?’ 라는 한 트위터 유저의 제안에서 시작하여 자발적으로 모인 개개인들은 보다 즐겁게, 보다 이롭기 위해 적극적으로 연대했을 뿐이다. 200여명의 참가자들 앞에 깃발은 없었고, 통일된 구호도 없었다. 다만 스스로를 ‘잡년’ 이라 기꺼이 칭하며 서로 연대하는 개개인의 목소리와 열망이 모인 행동이 있었을 뿐이다. 행실이 부정한 여자를 뜻하는 ‘잡년’의 ‘잡’을 ‘여럿’으로 해석하여 본 그들의 연대는 그래서 멋지다. 개인과 개인의 경계를 넘되,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각각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잡년행진은 그래서 즐거운 축제와 같다. 벗어라, 던져라, 잡년은 걷는다. 어디든 우린 함께 걷는다.
2011.07.22
문화연대
[주간논평]
잡(雜)년행진, 우리는 어디든 갈 것 이다.
지난 16일, 과연, 진행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먼저 앞선 한국판 슬럿워크 ‘잡년행진’이 퍼붓는 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유쾌함 속에 진행되었다. 고려대에서 원표공원으로, 그리고 홍대로 이어져 퍼포먼스와 노래, 춤이 가득했던 ‘잡년행진’은 개개인들의 목소리가 모여 만들어낸 즐거운 혁명이었다. 이 행진의 동기가 된 슬럿워크(Slut Walk)는 지난 1월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진행된 안전교육 강연에서 경찰관이 “성폭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자들이 ‘슬럿(Slut, 매춘부)’처럼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 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다. “누가 어떤 옷을 입는가와 상관없이 우리의 몸은 안전해야 한다” 의 기조로 이미 미국, 영국, 호주를 비롯해 20여개 국에서 열린 ‘슬럿워크’ 가 한국에서 열리게 된 것에 대해 문화연대는 반갑게 환영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입느냐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성폭력은 안 된다는 것이다.
잡년 행진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폭력범으로 모는 것 같아 불쾌하다.’ ‘야한 옷차림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행동이다’ 라는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잡년행진의 참가자들은 이번 행진의 의미는 남성들의 폭력적 시선에 대한 문제를 넘어 여성이 성폭력 사건의 원인제공자가 되고, 그에 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저항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은 ‘평소 피해자의 품행이 단정치 못했다’는 것을 자신들의 범죄 면피사유로 내세웠다. 무분별한 철거에 항거하는 명동 마리에서 발생한 용역들의 성추행 사건을 신고하러 온 피해자에게 남대문 경찰서는 ‘평소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냐’ 등의 질문을 했다. 현대 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인 여성노동자는 해고되고 가해자는 고용승계 되는 이런 현실에 ‘잡년들’ 의 행진은 무사히 진행할 수 있을지 하는 걱정도 낳았다. 하지만 성폭력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입느냐와 상관없이, 그리고 성별을 넘어 모두의 인권의 문제에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이다. 성범죄의 책임은 가해자가 져야 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행실이나 상태가 거론될 필요는 없다. 가해자의 변명을 착실히도 들어주는 한국사회에 대해 잡년행진은 정면으로 항의한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입든 너에게 나를 만질 권리는 없다”
개인, 그리고 개인. 연대는 그 경계를 넘는다.
잡년행진 참가자들은 고려대 앞에서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출교를 요구하며 행진을 시작했다. 그들은 다양한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대한문 앞에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성폭력 피해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했다. ‘슬럿복장’의 사람들과 피켓을 든 참가자들, 그저 함께 걷기만 하는 사람들, 성별과 지위와, 나이를 넘나들며 참가자 개인들은 함께 걸었다. 주최자는 없었다. ‘이런 건 어떨까?’ 라는 한 트위터 유저의 제안에서 시작하여 자발적으로 모인 개개인들은 보다 즐겁게, 보다 이롭기 위해 적극적으로 연대했을 뿐이다. 200여명의 참가자들 앞에 깃발은 없었고, 통일된 구호도 없었다. 다만 스스로를 ‘잡년’ 이라 기꺼이 칭하며 서로 연대하는 개개인의 목소리와 열망이 모인 행동이 있었을 뿐이다. 행실이 부정한 여자를 뜻하는 ‘잡년’의 ‘잡’을 ‘여럿’으로 해석하여 본 그들의 연대는 그래서 멋지다. 개인과 개인의 경계를 넘되,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각각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잡년행진은 그래서 즐거운 축제와 같다. 벗어라, 던져라, 잡년은 걷는다. 어디든 우린 함께 걷는다.
2011.07.22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