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논평[주간논평] 약탈된 문화재를 빌려온 것이 기뻐할 일인가

2011-04-18
조회수 2505

[주간논평] 


약탈된 문화재를 빌려온 것이 기뻐할 일인가 


지금으로부터 145년 전인 1866년, 천주교를 박해한다는 이유로 강화도에 침범한 프랑스 로즈제독의 군대는 한 달 동안이나 강화도 일대를 유린하며 외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많은 문화재를 약탈하고 불태웠다. 당시 프랑스 군대의 침략에 의해 조선 왕실의 서책과 물품 중 장기보관이 필요한 중요한 물품을 보관해왔던 외규장각은 불에 타 소실되었고, 서책, 지도, 갑옷, 은괴 등 외규장각에 보관하던 많은 문화재가 약탈되었다. 고종 3년에 일어난 병인양요다.

2011년 4월 14일,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 일부가 한국 땅을 밟았다. 145년 만의 일이다. 해외에 나가있던 우리 문화재가 돌아온다는데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많은 국민들이 기뻐했고, 언론 또한 대대적으로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을 기사화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의 반응이 차분하다. 별다른 환영행사도 없이 의궤는 수장고로 직행했고, 정병국 문화부장관의 기자회견이 전부였다.
한국 정부의 차분한 대응(?)에 대해, 반대 여론이 높은 프랑스를 의식해서라는 분석도 있으나 그 보다는 ‘실질적인 환수’라고 두 번 세 번 강조해야할 만큼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번 임대협상의 내용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싶다. 약탈임이 확인된 문화재를 5년 마다 갱신이라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빌려오겠다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문화재 임대협상에 대해 스스로 자격지심이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5년 단위의 임대협상 갱신 조항을 ‘실질적인 환수’라고 강조하면서 이번 임대협상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고 있다. 물론 조항의 내용이 ‘5년 후에는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갱신 가능 여부 이전에 소유권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결과만큼이나 과정과 내용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닐까? 프랑스 정부 소유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 전시되는 외규장각 의궤에 대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 정부는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의궤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등록대장’, ‘유물등록카드’에도 오르지 못하고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로의 등재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또한 합의문에 따르면, “프랑스 국립도서관 전문사서들이 자유롭게 의궤에 접근할 수 있어야”하고 “제3의 기관이 임시 전시 목적으로 대여를 요청할 경우 합의해야 하며, 대중 전시 시에도 합의문을 언급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 사실상 프랑스에서 다른 유물을 빌려온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소유권 문제가 제기되고 임대협상의 문제점이 지적되자 일부 전문가들은 외규장각 의궤 임대의 실익을 강조하며 이제부터 소유권 반환을 위한 노력을 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또한 합의문의 조항을 보면 불가능해 보인다. 즉 “외규장각 의궤 대여는 유일한 성격으로서 선례를 구성하지 아니하며 분쟁의 최종적인 답이 된다”고 합의한 것은, 향후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영구대여나 환수, 소유권 이전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병인양요 당시 약탈되었던 다른 문화재에 대한 반환 요구도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이러한대도, 정병국 문화부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실질적인 환수”이며 “우리 뜻해 반하여 해외로 반출된 많은 문화재 환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무엇이 실질적이며,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인가.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임대협상은 프랑스 소유의 문화재를 최소 5년 동안은 확실히 빌려온 것이며, 약탈임이 확실한 문화재를 빌려온다는 나쁜 선례를 남겨 문화재 환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다.

문화연대는 지난 2007년부터 외규장각 의궤를 포함한 병인양요 당시 약탈된 문화재 전부에 대한 반환소송을 프랑스 정부와 벌이고 있다. 2009년 12월, 소유권을 반환하라는 문화연대의 요구는 1심에서 기각되었으나 곧바로 항소하여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약탈임이 분명하지만, 현재 정부의 재산으로 등록되어 있어 돌려줄 수 없다는 프랑스 정부의 비상식적인 주장에 맞서 시민들이 모금한 성금으로 5년 째 소송을 진행 중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임대협상은 문화연대와 시민들이 진행하고 있던 외규장각 약탈문화재에 대한 환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물론 문화연대의 2심 소송은 계속 진행 중이고, 소유권을 반환받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약탈문화재에 대한 온전한 환수를 주장하지는 못할망정, 민간단체와 시민들이 소유권 반환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앞장 서서 임대를 추진하며 소유권 반환 노력을 포기해버리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번에 한국 땅을 밟은 외규장각 의궤의 가치와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5년 단위 임대형식’에다 여러 가지 굴욕적인 조건이 붙은 이번 임대협상을 보면서 반드시 기뻐할 수만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14만 점에 달하는 해외반출 및 약탈문화재 반환 노력에 ‘임대’라는 선례가 생긴 것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협상의 세부 내용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공개하고, 소유권 반환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11년 4월 18일(월)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