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성명‘미술계 Y 성희롱 사건’에 대한 문화연대의 입장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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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Y 성희롱 사건’에 대한 문화연대의 입장을 밝힙니다. 문화연대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함께 활동해온 Y의 성폭력 사건을 마주하면서 참담함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문화연대의 이번 입장은 해당 사건에 대한 입장인 동시에, 지난 20년 동안 활동해왔던 문화연대 운동의 현재성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입니다. 문화연대는 이번 입장을 계기로 우리 사회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위한 주체로서 더욱 더 책임 있게 행동하겠습니다.

문화연대는 ‘미술계 Y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의 입장에 공감하고 이 사건을 공론화한 피해자의 용기와 행동을 지지하며, 본 사건의 해결과 향후 재발방지를 위해 적극 연대할 것입니다.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 최근 몇 년간의 적극적인 미투와 반성폭력 운동은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이 ‘구조적 폭력’이자 ‘공동체 내 성폭력’임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습니다. 문화연대는 남성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예술계의 구조의 변화 없이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근절도, 가해자에 대한 문책과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2019년에 앞으로의 20년을 약속하는 자리에서 성폭력 근절 및 성평등을 주요 활동의제로 공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연대의 운영 및 활동 과정에서 남성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구조가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철저하게 성찰하고 점검하지 못했습니다. 문화연대의 연대활동에 동료이자 협력자로서 참여했던 이들이 성희롱·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음 또한 이번 사건을 통해 뒤늦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문화연대가 남성중심적·성차별적 구조의 재생산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성희롱·성폭력을 방관하고 조력해왔음을, 성희롱 행위에 대한 일말의 문제의식도 갖지 못하고 다양한 공적 활동을 벌여온 가해자의 든든한 네트워크이자 권력의 일부로 역할해왔음을, 뼈아프게 인정하고 깊이 반성합니다.  

문화연대는 본 사건으로 고통 받은 피해자의 입장에 다시금 깊이 공감하고 ‘구조적 폭력’에 의한 피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에 문화연대 내부에서부터 적극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 해결과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책임 있는 실천과 노력을 전개하겠습니다.

첫째, 문화연대는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사회 실현을 위한 과거와 현재의 공과를 엄밀하게 성찰·점검하고, 모든 성폭력 가해자와 단호하게 절연할 것임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00계_내_성폭력’ 이후 가해자의 처벌과 제도개선을 위한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와 노력은 문화예술계(예술대학 포함)의 반성폭력운동으로 확산·확장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문화민주주의와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표방하고 실천해온 이들마저 위계적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드러나는 사례를 반복적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예비 예술가들과 여성 예술가들, 그리고 문화예술계의 여성 종사자들이 성적 대상화되고 그들의 꿈과 활동이 위협받아온 오래된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예술의 미래와 문화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문화연대는 문화예술계의 구성원으로서 성폭력 사건이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책임을 통감합니다. 문화연대가 성폭력 가해자들이 권력과 위계를 축적하는 명분이나 자원이 되지 않도록 성폭력 가해자 네트워크에 대한 단호하고 적극적인 절연을 실천하겠습니다. 또한 문화연대 스스로의 조직문화와 활동 과정에 있어 더 많은 성평등 가치를 내재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둘째, 문화연대 내부와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폭력’을 끊어내기 위한 <(가칭)문화연대 성평등·반성폭력 행동위원회>를 설치하여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책임 있게 실천하겠습니다.
문화연대는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문제가 가진 ‘구조적 폭력’의 문제를 우리 안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고민하지 않았음을 재차 반성합니다. 그 반성 위에서 문화연대 내부와 네트워크를 점검하고 나아가 문화예술계의 뿌리 깊은 성차별적 구조로 인한 ‘구조적 폭력’을 끊어내고자, 이를 위한 구체적 활동계획을 수립하고 책임 있게 실천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고자 합니다.
문화연대 내의 반성폭력 내규와 각 분야에서 제정된 행동강령을 토대로 ‘(가칭)문화연대 성폭력 행동강령’을 제정하고, 이를 통해 성폭력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고 발생한 사건에 대한 대응 및 처리 지침을 마련하겠습니다. 이 행동강령과 지침은 문화연대 내부 구성원뿐 아니라 문화연대와 연대하거나 함께 활동하는 이들도 실천하도록 할 것이며, 문화연대 구성원 및 네트워크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였을 시에는 이를 고발하고 지침에 따라 논의·처리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할 것입니다. 그리고 설치 기구의 논의 과정과 활동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이와 관련하여 개방적인 공론장을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셋째, 문화연대는 예술 활동을 빌미로 한 성적 착취, 성폭력 강제에 반대하며 이러한 언행을 용인하고 확산시키며 방조하는 모든 것과 타협 없이 맞서겠습니다.
이번 사건의 대책위 성명문 및 언론보도를 통해서 밝혀진 사건의 전말은 ‘#미술계_내_성폭력’ 운동에서 드러났던 성폭력 가해자들과 유사한 가해행위의 전형성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해자의 빠른 시인에도 불구하고 피해사실의 세부에 대한 진실공방을 암시하고 일방적인 활동 중단을 선언한 것은 피해자에게 여전히 위협적일뿐더러 피해자를 원인 제공자로 전치시키는 ‘나쁜’ 대처방식이었습니다.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피해사실을 입증하게 만들고, 피해자를 ‘유망한 남성 예술가’의 활동중단을 초래한 원인 제공자인 것처럼 역전시킬 소지가 큰 가해자의 언행에 문화연대는 단호히 반대합니다. 가해자는 일시적인 반성과 사과가 아니라 지속적인 반성과 실천을 통해 성폭력 문제의 재발방지, 성폭력 구조의 해결을 위한 성찰적 실천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문화연대는 이번 사건뿐만이 아니라 예비 예술가들이나 여성 예술가들, 그리고 문화계 여성 종사자들을 성적 대상화하고, 예술활동을 빌미로 한 성적 착취와 성폭력 강제를 예술적 자유분방함이나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는 행위로 정당화하는 일체의 언행에 대해 반대합니다. 

넷째, 문화연대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 마련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연대하겠습니다. 
성폭력의 문제는 가해자 개인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만으로 종료될 수 없으며, 피해자 당사자에게만 기대어서는 반성폭력운동이 전개될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은 문화예술계의 성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제도개선 노력과 요구가 좌절되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이자 책임이기도 합니다. 문화연대는 정부 및 국회 그리고 각 기관이 제도개선 요구사항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이러한 제도개선 활동이 충실히 이루어지고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개인 차원의 활동을 넘어 보다 조직적인 활동을 벌여나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와 관련하여 좀 더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고, 가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질 수 있도록 제도개혁 활동을 구체화하겠습니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존 문화연대의 제도개혁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성찰은 물론, 문화연대의 다방면에 걸친 활동의제들 및 영역들 속에서 발생하는 성차별과 성폭력, 다양한 소수자들의 성비주류화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이를 위한 제도개선과 사회적 변화를 위해 연대할 것입니다.


문화연대는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더 깊게, 지속적으로 이어가겠습니다. 이번 입장에 담긴 내용들과 관련하여 좀 더 깊은 성찰과 논의를 통해 두 달 내에 구체적인 논의의 결과물과 향후 실천계획(액션플랜)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7월 1일
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