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성명


공동성명자진 퇴거 5개월, 다시 <경의선공유지>를 묻습니다.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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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 퇴거 5개월, 다시 경의선공유지를 묻습니다
- 시민들을 내보낸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1.

2016년부터 경의선공유지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서 활동을 해왔던 우리는, 다시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2019년 11월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에게 강요한 요구에서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이름으로 11월 1일 법원에 접수된 2건의 소송장은 2016년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활동이 허가되지 않은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 소송장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제기한 2개의 질문에 주목합니다. 
1) 채무자(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들은 이 사건 부동산의 개발사업을 지연 또는 방해하고 있어 채권자(대한민국 정부)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상당하다.
2) 채무자(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가 침해하고 있는 부동산 목적물의 가치는 36억 3,525만원이다.


이같은 소송 앞에서 우리가 그동안 말해왔던 ‘시민의 자산이자 공유지인 철도부지를 왜 특정 기업의 수익사업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도시에서 끊임없이 쫒겨 나는 도시 난민을 위한 광장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광장 위의 시민들에 대해 ‘당신은 누구의 허가를 받았는가’라는 질문을 함으로써 정부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존재가 아니라 시민을 허가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해 쫓겨난 시민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공유지를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도 30억원이 넘는 토지의 가치를 침해하는 파렴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앞세운 질문 앞에 우리는 자진 퇴거를 결정했습니다. 우리들 누구도 정부의 허가라는 문턱 앞에 서질 못했고, 정부가 요구하는 가치에 부응하는 비용을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곳에서 완전히 떠난 것이 2020년 4월 말의 일입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우리를 내보내며 대한민국 정부가 했던 질문을 다시 바로 그 대한민국 정부에게 하고자 합니다.
1)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의 방해가 없는 지금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철도시설공단이 하고자 했던 부동산 개발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2) 36억원이 넘는 가치를 지닌 땅을 5개월 동안 펜스를 쳐서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행위를 통해서 과연 36억원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묻습니다. 이 땅에서 시민들을 몰아낸 대한민국 정부, 그러니까 철도시설공단은 이렇게 방치된 땅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2.


우리는 오늘부터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시민의 자산인 철도부지를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는 철도시설공단에게 당신들이 우리에게 던졌던 질문을 다시 돌려주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펜스는 대한민국 정부가 시민보다 무능하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이 공간에서 수많은 시민들의 활동을 지원했고 풍요로운 도시 경험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펜스로 가려놓고 방치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36억이라는 경제적 가치 외에 다양한 문화적, 일상적 가치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 36억에 달한다는 가치를 펜스 안에서 썩히고 있을 뿐입니다. 도대체 대한민국 정부가 그동안 광장으로 이 공간을 운영해왔던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의 시민들보다 유능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책임을 구체적으로 묻기 위해, 2014년부터 사실상 이곳을 방치하고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대한 법적 대응을 진행합니다. 그에 앞서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추진해왔던 역세권 개발사업에 대한 시민감사청구 운동을 진행할 것입니다. 또한 실제로 한국철도시시설공단이 철도부지를 제대로 관리해왔는지를 묻는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 대상에는 일개 기업에게 국유지인 철도부지를 헐값에 넘겨 개발한 공덕역 및 홍대입구역 개발사업을 포함할 것입니다.


과연 철도시설공단이, 마포구청이 역세권개발사업을 통해 어떤 가치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시민들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갔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시민들을 대표해 36억원이나 되는 가치의 땅을 무단으로 방치하고 있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에게 물었던 방식 그대로,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대해 구상권 청구를 검토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어째서 정부기관이 공유지를 방치할 권리는 보장되면서도 시민들이 방치된 공유지를 활용하는 것은 금지되는지를 묻고자 합니다.


3.


우리는 더 많은 이들과 연결하고 또 연결할 것입니다. 우리더러 더럽고 시끄러워 나가라고 했던 인근 아파트 소유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피와 땀으로 쟁취한 투표권을 고작 사유재산의 가치를 높이는데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당당했습니까?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아서 ‘집을 가진’ 이들만 손쉽게 주민이 되고 더 많은 권리를 갖는  ‘소유권 민주주의’를 넘어설 것입니다.  정부가, 공공기관이 시민의 자산을 보호하고 시민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헌법의 기본원칙에 위반해, 스스로의 돈벌이를 위해 사유화하는 것을 넘어 마치 자신의 재산인양 함부로 대하는 태도를 바꿀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하지도 못한 다른 가치가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우리에게 들이댔던 그 기준으로 묻겠습니다.


이 비싼 땅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 방치하고 있는 책임을 어떻게 질 것입니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봅시다. 이제 우리가 답을 들을 시간입니다. 


2020년 9월 21일,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